긴 장마가 지난 뒤 여름과 가을 사이의 토함산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0-08-26 10: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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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행

봄 이후 잠잠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다. 요즘은 산을 찾기도 조심스럽다. 편하게 실내공간을 이용할 수 없어 야외에 행락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년과는 다르게 산에도 사람이 많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가 힘들어졌다. 지난 주말, 물길 따라 걷고 싶은 마음에 가지산 쇠점골을 찾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솔길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깨진 소주병,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불판을 계곡물에 씻는 행태를 보며, 산행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편안하게 자연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고심했다.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거리두기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을 떠올려봤다. 토함산이 문득 생각났다. 불국사에서 정상까지 향하는 길, 어디에도 물길을 찾을 수 없으니 여름 산행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분명 한산할 것이라 가늠했다. 


토함산 아래, 불국사 앞에서 목공방을 하는 산벗에게 연락했다. 요즘은 코로나19의 재유행으로 체험객이나 수강생들의 문의가 줄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그녀는 쉼의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하다고 했다. 

 

▲ 한산한 석굴암 입구
평일 아침 토함산 산행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30℃가 넘었다. 더위가 평소 같았으면 반갑지 않았겠지만, 한적한 산행이 목적인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됐다. 더위가 심할수록 산행객이 적을 것이다. 이 더위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올라온다. 

 

▲ 토함산 정상
이례적으로 긴 장마가 50일 넘게 여름 동안 지속됐고, 시베리아와 캘리포니아의 이상고온은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됐다. 녹고 있는 만년설과 빙하 등 세계 이곳저곳에서 이상기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가 이 모든 걱정을 다시 상기하게 했다.

 

▲ 나무 그늘이 감사한 숲길

석굴암을 지나 걷는 길, 그녀는 등산화와 양말을 훌훌 벗어버린다. 호쾌한 걸음으로 바닥을 느끼며 걷는다. 자유로운 벗을 보며 걱정이 잠시 날아간다. 바라보는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그제야 그늘진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전히 느낀다.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일렁거리는 빛이 반짝반짝 곱다. 

 

▲ 토함산 정상 이정표

 

▲ 호쾌하게 맨발로 땅을 느끼며 걷는 산우

우리의 가늠이 적중해 오르는 길에 마주친 산객들은 여남은 명이 전부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리 행복하다. 코로나19는 이렇게 평소에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감사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 겹겹이 보이는 산등성이와 파란 하늘

정상인근 조망이 터진 곳에서 겹겹이 보이는 산등성이와 파란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지나가는 조그만 구름 한 조각이 귀엽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산 아래서 간헐적으로 불어온다. 그곳에 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오르며 흘린 땀을 바람이 휘익 날려준다. 

 

▲ 정상인근 조망이 트인 곳에서

걸음을 돌리기 아쉽지만, 아쉬움을 남겨둬야 또 찾을 터다. 발걸음을 돌린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와 달리 더욱 짧게 느껴진다. 하산 후 동네 사랑방 같은 그녀의 목공방으로 간다. 찬물을 끼얹고 젖은 등산복을 갈아입는다. 식탁에 앉아 냉장고에 미리 잘라 넣어둔 깍뚝썰기한 수박을 꺼내 각자의 그릇에 나눠 먹는다. 선풍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젖은 머리를 말려준다. 

 

▲ 목공방 우드 인 스토리

 

▲ 그녀의 경주 목공방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문득 함께 수박을 포크로 푹푹 찍어 먹던 그 예전 어느 날이 생각난다. 먹을 때 어디에도 긴장이 없었다. 항상 도처에 행복이 있었는데,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흘러가고 난 뒤, 마스크를 끼지 않고도 낯선 이에게 경계를 가지지 않을 수 있기를. 마음 편히 함께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기를. 이상한 더위와 장마가 그만 멈춰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시원한 콩국수를 점심식사로 떠올리며 차를 타고 인근 식당으로 가려 했던 것을 계획에 옮기지 않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고기 없는 밥상을 차린다. 소소한 실천이나마 우리의 바람이 어딘가에 닿기를 바란다. 이 소소한 실천이 이 사람 저 사람 모여 거대한 실천이 되고 다시 마스크를 벗고 기후변화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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