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19-06-12 10: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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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내 아내는 유월이면 유독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생일이 유월이라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도 유월이면 장인 장모님 생각을 많이 한다. 장인 장모님의 고향이 이북이라 친척 한 명 없는 외로운 삶을 아내의 가족은 견뎌왔다. 항상 북쪽을 바라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평생 환한 웃음 한 번 크게 웃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장인 장모님, 초기에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많이 했지만 경쟁률이 높아 가족 상봉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상봉 신청도 하지 않은 장인 장모님, 남한에는 형제가 없는 장인 장모님 때문에 사촌과 이모, 고모 등 친척 개념을 잘 모르는 아내. 아마도 이산가족의 슬픔과 설움은 아내보다 내가 더 모를 것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함께해야 하니 슬픔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키면서 자자손손 뻗어 나간다.


요즘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로 온갖 매체가 뜨겁다. 역사학을 공부한 내 아들은 ‘약산 김원봉은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독립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걸었던 애국자였다’고 평가했다. 좌우 편향된 이념이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도 약산 김원봉을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로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왜 우리들 중 일부는 아직도 북한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앞뒤 맥락 자르고 날뛰면서 때려죽여야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 현실이 걱정이다. 우리는 이념논쟁에 너무나 깊이 빠져있다. 지금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로 알게 해야 한다.


약산은 친일 고문 경찰로 악명 높았던 울산 출신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을 맞는 등 치욕을 당했고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월북했다. 약산이 월북한 후 남은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멸문에 가까운 참화를 당했다. 한국전쟁 초기 김원봉의 형제·사촌 9명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군경에 총살당했다. 약산의 부친은 외딴곳에 유폐됐다가 굶어 죽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가족들이 고문과 연좌제의 사슬로 얼마나 처참하게 깨지고 짓밟혔을지 소름이 돋는다.


약산에 대한 서훈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는 이념 프레임에 갇혀서 역사를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념대립 때문에 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그로 인해 고통도 계속된다. 울산에도 학암 이관술 독립운동가가 있다. 아직까지 서훈도 없다. 비석마저 땅속에 묻혀있고 가족들의 슬픔과 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하는 일에 딴지 걸고 방해하는 세력들을 마주하곤 한다. 아마도 그들은 통일을 반대함으로써 얻는 개인적 이익을 취하고 민족의 이익을 회피하리라. 마치 일제강점기 개인적 이익을 위한 일제에 부역한 친일분자와 같은 맥락이다. 아직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무리들의 목소리는 크고 그들의 생각은 무섭도록 멈춰있다.


우리는 모두가 누구의 가족이다.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고,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과 책임은 피할 길이 없다. 목숨을 바쳐서 만인을 위해 옳은 일을 했음에도 어떤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로 인해서 지금까지 죄인 취급을 받는다면 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니 이보다 더 억울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보잘것없는 나에게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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