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일상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05-21 10: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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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일기

오렌지 하나 깔 시간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찢고 싶다. 24시간이 모자란다. 수련을 시작하면서 바빠졌다. 수련 생활에 적응해가는 만큼 업무도 늘고 있다. 다섯 시가 넘어가면 애들 생각에 심박수가 오른다. 마치고 부랴부랴 애들을 데리러 간다. 학교 건물에 학생은 우리 애 한 명이고 어린이집도 남은 신발은 한 켤레다. 나는 주중에 한두 번이지만 매일 일하는 엄마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아침 아홉시엔 큰애에게 EBS를 틀어준다. 수업 두 개 듣고 학교에서 준 학습꾸러미를 세 개 한다. 이렇게 오전이 후딱 지나가고 점심 먹고 내 공부 좀 하다 보면 작은애 하원 시간이다. 


대학원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고 있다. 목요일은 화상 수업이 있는 날이다. 저녁 여섯 시부터 시작이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섯 시에 저녁을 먹는다. 처음엔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 애들한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한 주씩 지나면서 애들이 점점 방에서 나와 논다. 조용히 할 테니 엄마 옆에 있고 싶단다. 카메라에 자기 얼굴이 나오나 까치발을 들고 보기도 한다. 한 시간 반 동안 애들이 잘 놀면 다행인데 싸워서 우는 날도 있다. 당장 달래줄 수도 없는데 안아달라고 더 운다. 내가 수업을 듣다가 종종 화면에서 사라지는 이유다. 음소거 기능이 있어서 울음소리가 들리진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내가 수업 흐름을 놓친다. 이럴 때 화가 치솟는다. 질문이 있어도 울음소리 때문에 음소거 해제를 누를 수가 없다. 애들은 갈수록 엄마 화상 수업시간을 싫어하고 나도 대면수업이 그립다.


‘확찐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옷에 가려졌지만 군살이 붙었다. 특히 배가 옆으로 불룩한 항아리처럼 보인다. 마른 몸으로 살아온 내게 낯선 경험이다. 근육이 빠져서 팔다리가 물렁물렁하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몸이 무겁다. 내 안에 독소가 쌓이는 느낌이 든다. 여러모로 운동의 필요성을 팍팍 느낀다. 코로나19로 운동을 쉬었는데 다시 문을 연 곳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책을 읽고 나누는 자리에서 관계의 높낮이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사람과는 요만큼, 저 사람과는 이만큼 관계를 맺는 감이 있느냐로 이해했다. 내가 이걸 몰라서 여태 처세술이 어려웠구나 싶었다. 주양육자와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돼 가정 안에서 대인관계 실험을 충분히 하다 보면 알게 된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 내게 안전기지 역할을 해준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말이다. 나를 돌아보면, 엄마는 자기 인생 살기에도 힘겨워 보여서 기댈 생각을 못 했다. 아빠는 어른이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본으로 삼았다. 물론 부모님이 나를 굶기거나 학대한 적은 없다. 두 분의 상황에서는 갑절의 노력으로 나를 키우셨음을 안다. 내게도 어버이 은혜가 있다. 그건 그거고, 철이 들면서 ‘부모가 된다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일찌감치 해왔다. 나는 잘 자라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내가 안정감을 누리는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과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 나는 지구를 위해 가끔 씻는다. 내 한 몸 씻음으로써 수질오염이 되는 건 싫다. 남편이 신혼 초에 안 씻느냐고 물었다. 담담한 어조로 환경보호를 위해 씻는 주기를 길게 둔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이다. 이제는 내가 머리를 감고 나오면 도리어 “요즘 자주 감는 것 같다”고 한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도 이제 안다. 내가 얼마나 씻기를 후순위로 미루는 사람인지 말이다. 환경보호 반 귀찮음 반인데 솔직히 씻는 행위의 필요를 잘 모르겠다. 머리 감겨주는 모자가 발명되면 좋겠다는 말에 남편은 덧없이 웃어넘긴다. 이거 말고도 내 부족한 모습을 몸소 체험하고 있음에도 남편의 콩깍지는 그대로다. 잊지 않고 예쁘다 말해주고 눈빛이 분홍으로 물들어 있다. 며칠 전 남편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내 든든한 안전기지가 돼주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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