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탑의 날개를 닮은 역, 나원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20-09-02 1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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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우리나라는 탑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찰의 석탑·부도탑, 서낭당의 돌탑, 근대에 생기기 시작한 교회의 첨탑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탑이 삼천리 금수강산에 즐비하다. 액을 막아 주고 복을 부르는 존재, 인간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길 바라는 기도의 장소, 때문일까? 우리는 등산길에서 잠시 앉아 쉴 때도 적잖은 사람들이 작은 돌이라도 주워 층층이 탑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콘크리트 지붕이 신라 석탑의 비상하는 날개를 흉내 낸 듯한 기차역이 나원역이다. 이 역에서 국보 제39호인 나원리 5층 석탑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탑은 간이역 앞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 나원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20여 분 걸으면 산자락에 호젓이 서있다.

 

▲ 나원역 구내 전경.


탑의 뒤쪽 산은 신라 왕실이 태를 묻었다는 안태봉이다. 앞쪽은 형산강과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더 멀리는 소금강 금강지구가 흐르고 있어 탑이 앉은 자리가 그냥 봐도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 주 형산강 철교 전경. 마침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백탑이 앉은 경주시 현곡면은 왕릉급 무덤과 도자기를 구웠던 가마 터 등 신라시대의 유적이 많다. 또,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선생의 생가터, 그가 도를 닦았던 곳으로 알려진 용담정도 현곡에 있다.

 

▲ 현곡면 용담정에 있는 최제우 선생 동상.
▲ 최제우 선생 유허비. 경주 현곡면 가정리에 있다.

여름 끝에서 마주 선 탑은 1300년의 세월에도 아랑곳 않고 최근에 세운 듯 하얀 빛깔로 필자를 전율케 했다. 그야말로 서라벌의 여덟 가지 기이한 풍경 즉, 신라 팔괴라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마침 필자가 탑을 찾은 날은 부산에서 왔다는 답사팀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나원리 “5층 석탑 재질은 흰 화강석으로 변색 없이 오늘에 이어져오는 그 가치만으로도 탑 답사팀들이 놓치지 않는 곳”이라며 마치 자신이 백탑을 깎은 석공인 양 자랑스러운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탑은 경내가 아니라 금당이 있었을 법한 평지 구릉 위에 세워 절로 위엄을 느끼게 했다. 높이가 9.76m로 경주 지역에서는 감은사터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 다음으로 크다. 1996년 탑에서 금동사리함이 출토됐는데 정교한 3층 금동탑, 9층 금동탑, 불상 1구와 부식된 나무탑 등이 나왔다.

 

▲ 국보 제39호 나원리 5층 석탑.


3층 일색의 신라탑 양식을 벗어난 것으로 목탑 형태보다 넓어진 2층 기단부, 모서리 기둥만 남겨 놓고 단순화시켰다. 몸돌, 귀퉁이만 살짝 올라간 머릿돌, 상승감과 안정감이 함께 느껴지는 비례 등이 신라 석탑이 완성돼 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걸작이다. 


답사팀이 떠나고 홀로 합장하고 탑돌이를 했다. 더운 날이라 10여 바퀴 돌고는 그늘에 앉아 탑을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탑의 날개마다 작은 구멍이 보였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다. 여럿이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더만 혼자 와 가만히 보니 내어 주는 속. 탑이든 사람이든 꽃이든 찬찬히 살펴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침 가늘게 바람이 불어왔고 가만히 눈을 감자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땡그랑 땡그랑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천 년 전으로 나를 이끄는 듯한 바람이 내게 물어 왔다. “온갖 욕망에 찌든 너는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 탑의 날개에 난 구멍.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다.


부처님은 사후 자신의 신성화를 금기시했다. 형상이 아니라 정신을 따르라 하셨다. 한동안 이 계율이 잘 지켜졌으나 불자들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흔적을 찾으려 애를 썼다. 때문에 유일하게 남은 부처님의 형상 ‘사리’를 모시는 탑을 만들고 부처님이 그리우면 존경을 담아 기도를 올렸다. 이때의 탑은 우상이 아니라 부처님이요 신앙심을 키우는 하나의 매개였다. 


만남보다 사람 간의 거리 두기를 미덕으로 만든 코로나19 시대, 종교가 인간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요즘,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앙의 힘으로 한 자리를 변치 않고 지키고 서있는 백탑을 보고 있자니 죽비 같은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 나원역 >


▲ 나원역 전경. 봄에 벚나무 진입로가 일품이다.


▲ 중앙선과 동해선의 분기점. 나원역과 서경주역 사이에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나원길 58-6에 위치한다. 1919년 6월 25일 옛 경동선 금장역으로 개업했다. 1935년 이후 정식으로 역무원 배치, 1945년 바로 일제 해방 한 달 전 7월 10일 나원역으로 역명을 변경하면서 표준궤로 변경됐다. 1969년에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1980년에 다시 역무원이 배치돼 화물취급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중앙선 경주 구간의 이설로 인해 중앙선과 동해선 포항역 구간을 잇기 위한 삼각선이 설치됐다. 이 역은 순식간에 두 노선의 분기역으로 탈바꿈했다.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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