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08-29 10: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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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당신은 차별주의자입니까?” 이 질문에 “네. 저는 차별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또는 대답할 용기를 가진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이 질문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불쾌해 하거나 모욕당한 기분을 느낄 듯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자신의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에 구구절절 부가 설명을 가져다 붙이는 것만 보아도 차별이 영 께름칙하긴 한가 보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차별주의자로 정체화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데, 차별주의자는 넘쳐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례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성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라 소개한 어떤 사람이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며 열심히 진로교육을 하는 많은 교사들이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및 정규직화에 대해 드러내는 노골적인 반감에는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 공간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에 급식조리노동자, 청소노동자 분들에게 “(감히) 선생님이라니? (개나 소나) 아무나 다 선생님이네”라며 비아냥거리거나 혹은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선의를 베풀자는 말들이 교육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자신이 공정하며 차별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에 관한 일상의 부조리를 분석하고 있다. 책 뒤편에 두껍게 차지하고 있는 주석과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이 책이 단순한 교양서가 아닌 사회학 서적임을 알 수 있다. 국내외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연구는 한국 사회의 장애인, 이주민, 난민,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한 인권과 차별의 문제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예컨대, 어빙 고프먼의 낙인이론, 패싱(passing) 개념은 성소수자에게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요?”라는 질문에 담긴 함의와 권력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이 된다. 탄탄한 학문적 토대는 저자의 주장에 신뢰를 갖게 만들고 권위를 느끼게 하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글은 쉽고 재미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 즉 우리가 무심코 하는 좋은 의도가 담긴 말과 행동들이 차별이라니 억울하다는 사람들은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주민에게 칭찬으로 “한국인 다 됐네요”라고, 장애인에게 격려의 의미로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이 두 문장이 가지는 차별과 모욕의 요소를 찾지 못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만약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그저 예민하고 불평이 많으며 특권을 누리려고만 하는 이로 여긴다면 당신은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적고 시야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마시길,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것을! 세상이 정말 평등한지, 내 삶은 차별과 상관없는지 성찰하지 못한다면 선한 마음에도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생산된 차별은 언제, 어디에서 나의 삶을 흔들어 놓을지 모를 일이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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