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10-31 10: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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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성혈이 새겨진 바위는 마을사람은 용의 꼬리라고 했지만 따개비가 이리저리 붙은 귀신고래 등짝 같았다. 귀신고래 등짝에 앉아 쉬며 멀리 누런 들을 본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이왕 걷기를 하려면 유적이 많은 경주를 택한다. 오늘은 불국사역에서 시작해 남산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불국사역에서 내려 불국사 방향 철길 건너편은 논이 발달한 평야지역이다.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아 황금색 들판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태풍에 누운 벼들이 아침이슬을 달아 더 무거워 보인다.

 

얼마 걷지 않아 큰 저수지를 만나고는 놀랐다. 경주여성정보화고등학교 옆에 ‘대재지’라는 호수가 있는데, 강태공들에겐 이미 널리 알려진 곳으로 그 날도 텐트를 치고 한 사람이 10기가 넘는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진작가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인 듯 토함산을 넘어 뜨는 해의 붉은 기운이 넘칠 때 사진들이 검색창에 뜬다. 중간 물속에 큰 왕버드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으로 보아 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연들도 이제 연밥을 다 키워내고 잎들이 푸석 말라가고 있었다.


마을 풍경에 담긴 집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예전 오래된 집이거나 새로이 단장을 한 집이거나 새로 지은 전원주택이다. 낡은 집이나마 노인네가 살고 있으면 그런대로 생기가 돌지만 이제 방치된 집도 많다. 사람 보기 드문 풍경인데 감나무를 끼고 있는 집 앞 밭에 할머니 두 분이 일하신다. “마늘을 넣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비닐이 똑바로 묻혔는지”를 봐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수술을 하고 요양하러 왔다며 마늘농사가 올해 처음이라고 한다.


묵은 마을 골목길은 아주 좁다. 차가 한 대 들어갈 정도 길이 이제는 사람만 겨우 다닐 길로 바뀐다. 스마트폰 네비에는 차량길만 있지 사람 길은 없다. 차로 지나지 못하는 오랜 길들이 더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이제는 만나기 쉽지 않은 탱자나무 울타리길이다. 탱자 색은 바래져 가는 데 길 끝은 원형 터널처럼 환하게 뚫려 나를 끈다.


거쳐 가려고 잡은 심원사는 유서가 깊은 절은 아니었지만 오른 편에는 솔매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에 소나무들이 볼 만했다. 산록에 붙어 자란 방아풀(배초향)잎을 하나 따 입에 무는 순간 침이 확 돈다.


너른 들이 보이는 마을 중간에 눈에 확 들어오는 잘 생긴 바위가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이가 5미터 정도는 돼 보이는, 지의류가 귀신고래 등짝 같은 얼룩덜룩한 무늬를 지닌 큰 바위다. 들판을 내려다보는 위치라 잠시 쉬려고 올랐는데 울주군 방기리 알바위 같다. 곳곳에 크고 작은 성혈이 20개가량 파여 있다. 알바위 유적은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곡식이 풍성하길, 또 자손 많기를 기원했다거나, 해양으로부터 들어온 뱃사람들이 길을 찾았던 별자리라는 주장도 있으니 性穴(성혈)이거나 星穴(성혈)이다.

 
가야시대 유적으로 알려진 함안 말이산 고분 내부에서도 별자리 구멍(星穴)이 발견됐다. 가야인들이 무덤에 새겨 넣었던 이 별자리 구멍과 가야인들 배 모양 토기는 ‘가야인의 항해술’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뱃길을 나아가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별자리였을 것이다. 길을 헤쳐 나가는 방향타가 되어주는 별을 동경하는 마음은 가슴 속 원시 유전자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문 정부 이후 관심을 가지는 가야 고분군 발굴지역 바깥이지만 경주지역을 가야-신라 문화접경지역으로 보자면 설명이 안 될 것도 없다.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역사에서 해양문명사는 아직 깜깜이니 가야사 발굴로 새로운 장이 열리길 바라 본다. 밭에 있는 마을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의 꼬리’로 여겼고 예전에 제를 올렸다고 했다.


불국사 근처에서 내려오는 남천은 원동천과 만나고 평동마을 사이로 사행천을 이루며 흘러간다. 하천변에 누가 심었는지도 모를 호박들이 군데군데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거둘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경주의 산들로부터 내려온 마사토는 냇가의 바닥 밑그림을 멋지게 만들고 역동적인 물무늬도 만든다. 바로 앞 작봉 뒤로는 경주 남산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남산 통일전 좌편으로는 으리으리한 한옥들이 들어서 큰 간판을 자랑하고 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산 아래는 명당인 모양이다. 이제 해설사를 끼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유적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만난다.


서출지는 이미 알지만 풍천임씨 산수당(山水堂)이란 정자 옆에 ‘양피지’라는 한적한 저수지를 처음 만났다. 허물어져가는 연잎들을 몇 장 찍는데 숨어 있던 오리 떼들이 후드득 날아올랐다. 소박한 벤치에 누워 하늘을 편하게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저수지를 나서다 바로 앞 명선다연(茗禪茶硏)이라는 곳에 천재시인 김시습이 쓴 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내렸다가 도로 개이니/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는구나/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지 않으니/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 주소/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먼 길 걸어와서 만난 글귀기에 더욱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명선(茗禪)은 차선(茶禪)과 같은 말로 결국은 ‘차’와 ‘선’은 같다는 뜻이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호로 써준 글귀다. 15세기 사람이 지금의 사람에게 ‘세상살이가 원래 그렇다’, ‘차나 한 잔 드시게나’하고 속삭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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