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용왕제와 동백나무 자생지 제례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기사승인 : 2020-02-07 10: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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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백

용왕제는 용왕에게 뱃길과 어민의 무사, 풍어를 비는 집단 제의다. 다른 이름은 둑제(纛祭), 갯제, 용신제(龍神祭), 사해, 사해제, 풍어제, 별신굿, 배신굿, 배연신굿, 대동굿, 서낭굿, 용왕맞이 등으로도 부른다. 시골에서는 용왕미기라 해 공동체 집단이 아닌 한 가족이 강가나 우물에서 소원을 비는 제의 형태도 있다. 필자도 어머님이 용왕미기를 갈 때 등불을 잡고 따라간 추억이 있다. 


신라 시대에는 사해제, 고려 시대에는 사해 사독제, 조선 시대에는 용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 바다와 물을 관장하는 신에게 비는 제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어로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어촌에서는 용왕굿이나 용왕제를 지내면서 배의 무사고와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갯가 마을에서는 정초 당제 날 상당제를 지낸 뒤 집단으로 용왕제를 지내는 곳이 많았다. 용왕제는 집단 제의로 각호의 주부들이 제물을 설상해 갯가로 가지고 나와 제사를 지낸다. 지역에 따라서는 대보름에 또는 4~5월과 11월의 길일을 잡아 제를 올리기도 하며, 규모가 큰 풍어제는 격년제로 또는 삼 년마다 올리는 곳도 있다. 울산지역의 거의 모든 갯마을에서도 용왕제를 지냈다. 그중에 규모가 컸고 현재도 지내고 있는 용왕제가 일산 동해안별신굿과 진하 풍어제다. 다음은 동백나무 숲에서 이뤄진 또는 동백나무와 관련이 있는 제례를 조사해 소개한 것이다.

울산 동백섬 용왕제

동백섬에서 지내던 용왕제는 다른 지역에서 주민들이 직접 지내거나 무당이 지내는 용왕제와 달리 반야암에서 불교식으로 지냈다. 반야암이 지어진 것은 1938년이다. 주변 마을 불교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주민들이 쌀과 금품을 시주해 암자가 세워졌다고 한다. 암자가 세워진 뒤 주민들이 믿고 있던 민간 신앙과 결합돼 암자에서 불교 행사뿐만 아니라 민간신앙 행사도 같이하게 됐던 것 같다. 바닷가 주민들에 있어 바다는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풍어제를 지내며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풍어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안녕(무탈)과 바다에서의 안전도 빌었다. 


동해안의 풍어제는 세습무들이 맡아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동백섬 인근의 달포마을, 당월 등의 풍어제인 동해안 별신굿도 김석출 등 세습무들이 맡아 지냈다. 그런데 목도, 사방 등 방도리의 용왕제는 반야암에서 스님이 불교식으로 지냈다. 


동백섬 용왕제는 주민들의 풍어와 바다에서의 안전을 비는 제사였다. 음력 3월 16일에 제를 올렸다. 이때는 목도, 방도, 사방마을은 물론 인근의 달포, 당월, 처용마을 등 주변 마을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물의 신(바다의 신) 용왕신에게 제를 올리면서 엄숙하게 소원과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고래를 잡을 때는 장생포 고래잡이 선주가 이곳에 와서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고래잡이는 가까운 바다에서도 이뤄지지만 일반 연안에서 이뤄지는 어업보다는 먼바다까지 나가서 고래를 잡아야 하는 만큼 위험성도 높았을 것이고 바다에서의 안전을 비는 마음도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포경선 선주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니 일반 주민들만 모여 지내는 것보다 훨씬 제사의 규모도 컸을 것이다. 선주와 선원은 물론 주민들도 제사에 참여해 가족의 안녕과 소원을 빌고, 바다에서 하는 포경과 어로 과정의 안전을 빌었을 것이다.


용왕제는 우리나라의 일반 동제나 별신굿이 그렇듯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놀이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민간 축제였다. 동백섬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날은 음력 3월 16일로 이때는 하늘은 높고, 바닷물은 맑고, 왕벚꽃은 무대 배경이, 동백나무의 꽃은 무대 장식이 됐다. 동백섬 용왕제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사람이 하나가 돼 신명 나게 벌이는 종합 예술 잔치였다. 이날은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다. 


동백섬 용왕제 제례는 반야암 스님이 제관을 맡이 불교식으로 지냈다. 불교식 제의는 제관을 맡은 승려가 용왕경을 독송하면서 용왕대신을 비롯한 여러 신을 모신다. 다음은 불교식 용왕제 축문의 예다.


“기지시 용왕지신(機池市龍王之神) 수종동해 원발기지(水宗東海源發機池) 기세호탕 기기징청(其勢浩蕩其氣澄淸) 용거호탕 해룡서상(龍居浩蕩海龍瑞祥) 신종등청 원신령험(神從登淸源神靈驗) 화심화성 용용기원(畵心畵誠湧湧其源) 복축복원 양양기류(伏祝伏願洋洋其流) 음정물왕 농상폐창(飮精物旺農商□昌) 흡액실념 옥백장시(吸液實念玉帛漲市) 영현계세 막비룡조(英賢繼世莫非龍助) 보앵만문 기불신휴(普櫻滿門豈不神休) 작수만구 복유존령(酌羞萬具伏惟尊靈) 용계존헌 서흠상향(用戒尊獻庶歆尙饗)”


동백섬 용왕제는 불교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민간 신앙적 용왕제와 제례의 주관, 진행, 절차, 제문, 제사 음식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주민들과 무당, 또는 마을을 대표하는 제관이 용왕신에게 전통 무(巫)나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공통의 소원을 빌고 난 뒤 참석자들이 각각 개인적 소원을 빌었다. 이와 달리 동백섬 용왕제는 제사의 절차와 제문도 불교식이었고 음식도 고기를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 제사 음식은 쌀밥, 떡, 지짐(부침개), 여러 종류의 나물을 올렸다고 한다. 


동백섬의 용왕제는 고유의 용신으로 대표되는 물 숭배 신앙과 외래 신앙인 불교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로 융합한 신앙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사라져 버렸지만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동백섬 용왕제의 절차, 제물, 축문 등 자료의 수집과 정리가 필요하다. 

 

▲ 울산 동백섬(전에 사진에서) ⓒ이동고 기자

서천 동백나무 숲 마량당집과 용왕제

서천 동백나무숲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에 속한 바닷가에 있고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약 500년 전 마량 수군첨사가 꿈을 꿨는데 바닷가에 있는 동백나무 꽃 뭉치를 많이 심어 가꾸면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가꾼 게 지금의 동백나무 숲이 됐다고 한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이곳에 모여 고기가 많이 잡히고, 바다에서 무사하게 해달라고 비는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5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는데 바다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앞바다에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용왕을 잘 위해야 화를 면하리라 생각하게 됐다. 이 노파의 현몽으로 해안사장에서 널에 들어있는 선황 다섯 분과 동백나무 씨앗을 얻어 선황은 신당에 모시고 동백나무 씨앗을 주변에 심었다. 동백나무 숲에는 지금도 큰 나무 85주가 무성하다. 


제사가 시작되기 수일 전에 경비로 호당 쌀 한 되씩 거둬들이고 신당 부근에 풍어, 만선을 기리는 수십 개의 어선 깃발을 꽂고, 화주, 화장(선주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 당굴(대 잡는 사람) 두세 명의 의상 준비 등 제반 준비를 끝낸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 당에 올라 초사흘날까지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선창제, 독경, 대잡이, 마당제, 용왕제, 거리제로 이어진다. 용왕제를 지낸 뒤부터 고기잡이에서 화를 입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서천군

외연도 전횡 장군 전설과 400년 전통 풍어당제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상록수림이 있다. 이 숲에 중국 제나라 전횡 장군의 사당이 있고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섬 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외연도 풍어당제’가 열린다. 


풍어당제는 노구제(산신께 밥 제사), 기미제(산신께 떡 제사), 전횡 장군제(치마, 저고리 세 벌을 제단에 올리고 황소를 잡아 제를 올림), 제사터 제사(복지회관 앞, 팽나무와 바위 등 4개소에서 지냄), 용왕제, 길지분배(20척), 모형배(띠배) 퇴송 등으로 진행된다. 


당제는 기원전 200년경 진에 반기를 들고 제를 다시 일으켰던 전횡 장군을 당신으로 숭배하는 풍습으로 약 400년 전부터 전횡 장군 사당에서 풍어와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며 황소(지태)를 잡아 제물을 마련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면서 서해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당제의 제물 중 특이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한복 세 벌을 위패에 걸치는 것이다. 남자 한복 한 벌은 전횡 장군에게, 여자한복 두 벌은 그의 아내와 딸을 위한 것이라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제물은 ‘지태’라 불리는 소다. 소는 육지에서 장배로 섬으로 데려와 사당까지 끌고 간 뒤 제사 직전에 도살해서 올린다. 제물 중 가장 귀한 것이다. 소가 쓰러지면 소의 생피부터 받는데 이 피는 바다에서 지낼 용왕제와 마을 안 땅 고사에 제물로 쓰인다. 


풍악이 신명 나게 울리는 가운데 당주와 마을 유지들이 배를 타고 나가 제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린 뒤에는 제사에 사용한 길지에 제물을 싸서 바다에 던지며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어 마을의 재액과 뜬 귀신들을 바다 멀리 내쫓기 위해 퇴송배(띠배)에 음식(잡귀들의 먹거리)을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낸다. 


당제는 1960년대 말까지 어장이 열리는 음력 4월과 햇곡식이 나오는 음력 8월, 어장이 폐쇄되는 음력 11월, 1년에 세 차례 당제를 지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오다가 지난 2008년부터 나가 있던 주민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일기가 좋은 음력 2월 보름을 기준으로 지내고 있다. 


전횡 장군에 대한 기록은 안대진이 98년에 세운 유격장군 계공청덕비, 1619년 한여현이 지은 <호산록>(서산읍지), 1936년에 세워진 전공사당기에 기록이 있다.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보령시

안마도 당산봉의 전설과 당제

이 전설은 이흥규 시인이 정리한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당산제를 참고했다. 아주 오랜 옛날 안마도 골몰(동촌)에 신씨(申氏)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밭에서 일한 뒤 밭가에서 쉬다가 졸았는데 꿈에 무장을 한 장군이 나타나 “나는 당나라 장군인데 한 번도 전쟁에 출전을 못 하고 죽었다. 영혼이 떠돌다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이 섬이 내가 탄 말을 닮아 북쪽 산 너머 선창가에 와 있으니 나를 이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이면 농악으로 풍악을 울리고 제사를 지내주오. 그리하면 이 섬에 닥쳐오는 모든 재앙을 막아주겠소”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방금 꾼 꿈이 생시처럼 떠올라. “참! 요상스런 꿈을 다 꾸었네?”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줬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산 너머 바닷가로 가보니 갯가에 이상한 궤짝 하나가 떠밀려와 있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 어른 한 발쯤 됨직한 긴 머리털 묶음과 큰 주머니, 철마 두 필이 들어 들어있었다. 큰 주머니에는 중국돈이 가득 들어있고 철마는 크기가 어른 주먹의 두 배쯤 됐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 끝에 꿈에 장군이 일러준 대로 산꼭대기 땅을 깊이 파고 큰 항아리 속에 이 물건들을 넣어 묻었다. 주변에는 동백나무를 심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당산봉이라 부르며 해마다 설날이면 이 봉우리에 모여 풍악을 울리고 제사를 지냈다. 이 섬 주민들은 안마도의 동쪽에 있는 동촌마을을 장군의 큰아들, 신기마을을 둘째 아들, 월촌마을을 막내딸로 삼아 차례로 잔을 올리고 장군의 자식인 이 세 마을의 액운을 막고 재앙을 물리쳐달라고 지성으로 빌었다고 한다.


이 제사는 일반 당산제와는 달리 특이한 방법으로 지낸다. 즉 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으로 길이 50㎝, 지름 6㎝의 대통 두 개에 동백나무 가지를 꽂은 다음 흰 광목천으로 대통 전체를 감고 천 끝에는 긴 머리털과 큰 주머니를 단다. 이 대통을 모시는 사람은 대통 하나에 두 명씩 모두 네 명이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주관한다. 제물로는 깨끗한 집의 수소를 잡아 올리며 끼니마다 새 밥을 지어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제를 지낸다. 제물을 바친 후에는 동촌마을에서 농악을 치며 당산 봉우리에서 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인 대통(신주)을 모시고 내려와 동촌마을에서 초하루 밤을 새운다. 초이튿날은 둘째 아들인 신기마을에서 신주를 모시고 와서 농악을 울리며 밤을 새우고, 초사흗날은 막내딸인 월촌마을로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지낸 뒤, 초나흗날은 세 마을 농악대가 합세해 큰집인 동촌마을로 다시 모시고 와서 함께 축제를 벌이며 밤을 새운다. 초닷새 날은 당산봉에 올라가 당 항아리에 신주를 모신 후 대통 두 개만 갖고 내려와 동촌마을에서 정중히 모신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당산봉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당산봉 쪽을 향해 소변을 보면 성기가 붓고 침을 뱉으면 입술이 부어서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이 제례는 1968년 당산봉에 해군기지가 설치되면서 제를 지낼 수 없게 됐으나 장소를 바꿔 정월과 6월 연 2회 동촌, 신촌, 월촌 세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산신제와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영광군


홍도 동백나무 당산 숲

신안군 홍도 죽항마을의 동백나무 당산숲(보호수)을 죽항당산이라고 한다. 이 숲은 홍도 주민들이 안녕과 무사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제를 올렸던 곳이다. 약 150년 전인 1847년(현종 13)에 감찰 벼슬을 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기와 당집을 세웠다. 1970년대 중반까지 산신제를 올렸다가 갑자기 중단되고 당집이 허물어졌다. 2003년 터를 복원했고 2007년에 당집과 제당을 다시 건립해 당제를 다시 지내고 있다. 특히 희귀한 흰동백도 있고, 지역 특산종인 홍도선달취와 홍도까치수염이 자라고 있다. 양산봉 방면으로 들어서면 300년이 넘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석촌마을에도 당산이 있고 용왕당과 총각당이 있다. 용왕과 총각의 만남이라 1970년대까지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당제가 진행됐다고 한다. 이후 중지됐다가 2003년부터 다시 당제를 지내고 있다.

 

▲ 전남 신안군 홍도 ⓒ신안군


동백숲 마을 제례

바닷가 동백숲 마을 제의들은 섬에서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영험한 신께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빌며 고달픈 삶에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는 행사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제사를 지냄으로써 형제처럼 의좋게 살며 단합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한 신을 믿는 정신적 교감으로 여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동백나무의 숲과 꽃, 잎, 열매는 남녀 간의 사랑, 정열, 믿음(신의), 자손의 번성과 장수를 느끼고 소원하게 한다. 동백나무는 상록서상(常綠瑞祥)의 생명나무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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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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