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08-19 10: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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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재앙이 이어지는 가운데 장마가 유례없이 길어지고, 폭우가 동반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 하여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습니다. 폭염 속에서 수해복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해복구가 이뤄지는 곁에서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합니다. 시선이 따갑습니다. 여름휴가를 가기로 예정된 지역이 홍수가 발생한 곳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을 예상해 책꽂이를 훑어보다 사 놓은 지 오래된 책을 골랐습니다. <개미와 공작>(사이언스북스, 2016)이라는 진화생물학 책이랍니다. 몇 년 전 잠시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고, 그 즈음에 구입해 책장에 꽂아놓고는 잊어버렸던 책입니다.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아주 두꺼운 책인데도 말입니다. 


헬레나 크로닌이라는 진화생물학자의 박사학위논문이 기초가 된 것이라군요. 그녀는 생물의 종은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려는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생존경쟁을 거치며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자연선택설에 동의합니다. 그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선택설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은 왜 자신을 희생시키는가? 왜 공작 수컷은 자신의 생존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깃털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으로 진화했을까? 


개미와 공작은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요? 자신의 종을 남기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선택을 그들은 왜 했을까요? 진화생물학에 대한 이해도 낮고, 책을 다 읽지 못한 탓에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한 상태지만, 개미와 공작이 이타주의와 화려한 외형이라는 생존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선택이라면 설명은 쉬워집니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자신의 짝을 고르는 암컷 공작의 선택이 전제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컷 공작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깃털을 키운 것이지요(<개미와 공작>의 글 순서는 공작이 먼저이고 개미가 나중이랍니다). 선택은 이렇게 이뤄졌고, 한번 결정된 선택은 이후 점차 강화됐겠지요. 


생물 종들의 과거 선택이 변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라는 결과를 낳았듯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매시간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오늘일 테니까요.


올해는 광복 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절 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지요. 진정되어 가는 듯 보였던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게 전개되는 가운데 벌어진 집회지요. 집단감염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특정한 사람들의 신앙을 실천하려는 선택적 행위가 국민 다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치권에서는 광복회장의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친일 잔재 청산을 이야기했는데,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고,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을 독일정부로부터 받았는데, 민족반역자가 만든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며, 또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자”가 현충원에 묻혀있다는 등의 내용이 문제가 됐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념사를 깊이 새기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75년 전의 갈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국민을 편 가르기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75년 전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분단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승전국들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모였지요. 그리고 그들은 결정안을 내놓았습니다. 곧 한반도 남쪽은 결정안에 대한 반대와 찬성으로 의견이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갈등은 계속됐고, 결국 갈등에 따른 대립은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오랫동안 한국인들은 매순간 선택을 강요받는 시간들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강요된 선택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힘으로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었습니다. 


75년 전의 선택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덮였던 역사적 과제가 이제야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경쟁하며 더 나은 선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과장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친 우리의 선택이 매순간 최선의 것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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