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는 산사에서 하룻밤을-안동 봉정사, 영산암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0-07-29 1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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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훨훨’

처마에 매달린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았다. 똑똑 또옥똑. 두 다리에 의지해 스스로 왔지만 이런 단절이라니. 사람이 손님이 되어 머무는 천등산 자락에 가만히 앉은 천년고찰 봉정사에는 지금 새소리, 빗소리, 잎새 부딪는 소리 말고는 인기척이라곤 없다. 피어오르는 운무 사이로 잠들었던 천 년의 정령들이 깨어날 것만 같아 흙 마당을 천천히 깊게 디뎌 발자국 소리를 낮춘다. 간간이 지나가는 스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두 손을 모으고 눈인사를 한다. 요즘 세상에 이토록 고요한 곳이 있다니, 살자고 쉬는 내 숨소리마저 소음이다.

 

▲ 봉정사 대웅전을 들어오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중문 누각 만세루의 전경. 좌우로 보물로 지정된 화엄강당과 고금당이 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혼자 하는 등산이나 번잡하지 않은 자연 속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밖으로 향하던 모든 시선과 관심이 안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살피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지고, 서로의 간격은 이제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라 배려로 자리를 잡는다.


그런 비대면의 각광과 단절된 일상의 위로, 힐링을 위해 얼마 전 문체부와 관광공사의 특별여행주간을 맞아 저렴한 가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명 사찰을 비롯해 전국의 100여 개의 절이 참여하는데, 두루 호젓한 산사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한 번도 묵어보지 못해 그 첫 날밤을 보내고 싶어 행선지를 선택하는 데 몇 날을 고민했다. 


석양이 아름답다는 미황사가 좋을까, 선재길을 걸을 수 있는 월정사에 머물까, 마음은 전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달렸다. 고민 끝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지 승원 사찰 7곳 중 하나인 안동의 천년고찰 봉정사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있고, 여러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영산암, 그리고 산꼭대기를 20여 분 올라가면 봉정사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유서 깊은 개목사(開目寺)까지, 이틀 동안 여유로움으로 걸을 산사의 풍경들을 그려보며 떠나기 전 마음 먼저 보냈다. 

 

▲ 영산암 송암당과 돌 위에 심은 오래된 반송 한 그루. 영산암은 한국 10대 아름다운 정원의 사찰이다.

세시쯤 도착한 봉정사에는 관광객 차량 두 대를 제외하고 외부 사람이 없었다. 오늘 묵어가는 이도 혼자란다. 자그마한 방 하나에는 화장실이 달려있고 두 명 정도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아 보이는 방이었지만 지내다 보니 좁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였다. 적당한 것의 기준은 살면서 왜 자꾸 커져버린 것인지. 문을 닫고 가만히 누워보니 완벽한 세상과의 차단이다. 종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몸 마음이 고달플 때면 이런 고요와 적막의 단절 속으로 하루쯤은 몸을 밀어 넣어보고 싶은 것이다. 


혼자의 여인이 호젓한 절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공양간 보살님부터 절 사무를 보는 직원들,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새벽 기상이나 예불 등 따로 의무 없이 자율적으로 머물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머무는 동안 아침 점심 저녁 공양시간은 칼같이 맞췄다. 마침 하안거 선방에 든 공부하는 스님들이 계서서, 공으로 먹기가 민망할 정도로 반찬이 정갈하고 가짓수도 많았다. 다른 때엔 반찬 세 가지에 먹어야한다며 보살님은 시간을 잘 맞춰 왔다 하신다. 


사무를 보는 팀장님이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셔서 경내를 함께 둘러봤다. 봉황이 내려앉은 봉정사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과 대웅전이 국보이고 화엄강당을 비롯한 6개의 건물이 보물로 지정됐다. 만세루에서 바라보는 극락전과 삼층석탑의 어우러짐은 이틀 머무는 동안 여러 차례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저녁 예불 시간 모든 만물의 생명들이 집을 찾아 깃들고 까만 적막 속에 흘러나오는 독경소리, 스님의 등 굽은 뒷모습은 그대로 무형의 보물이다. 봉정사의 국보 2개를 비교해 보면 따로 가지는 멋이 대단한데 맞배지붕으로 기둥 위에 공포를 한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의 극락전과 팔작지붕으로 지붕의 무게를 이기도록 다포양식을 한 조선시대 대웅전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가 봉정사의 극락암으로 최고를 넘겨준 것은 1972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에 의해서다. 중수가 보통 100년에서 150년 사이에 이뤄지니 1368년이라는 숫자는 최고를 추측할 수 있었다. 

 

▲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봉정사 극락전과 삼층석탑. 주심포 양식의 고려 시대 건물로 신라시대의 양식이 이어져있다.

나는 대웅전이 더 마음에 끌렸는데 일반적인 불전과 달리 정면에 툇마루를 두고 있고 자연석 허튼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조화롭게 세워져 있다. 그 시선은 절 마당을 두고 일자로 만세루와 이어져 간결한 선의 아름다움이 군더더기 없이 자연을 끌어들인다. 요즘 이렇게 많이 손대지 않고 단아한 멋을 유지하고 있는 사찰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다. 대웅전을 벗어나 가파른 돌계단이 있는 쪽으로 길을 들어섰다. 돌계단 끝으로 보이는 누마루의 지붕이 눈에 익은 영산암이다. 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인지, 화양연화의 불꽃같은 시절을 지나 사그러 들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누마루 앞에는 보랏빛 꽃송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국과 눈이 마주쳤다.

 

▲ 봉정사 대웅전, 정면에 툇마루를 두고 있고 자연석 허튼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조화롭게 세워져 있다.

영산암의 문루에 ‘우화루(雨花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뜻에서 유래된 우화루, 초서로 쓴 글씨체가 화관을 이고 피어난 나리꽃 같다. 하심, 고개를 숙이고 들어선다. 지형의 고저를 이용해 만든 상단, 중단, 하단, 3단으로 안정감을 주는 절 마당 정원에 여름꽃들이 먼저 반긴다. 절이라기보다 정갈하고 품위 있는 고택의 느낌이다. ㅁ자 형태로 안정감 있게 자리 잡은 상단의 응진전, 서쪽으로 삼성각, 그리고 아래로 송암당과 관심당이 마주 보고 있다. 특이한 것은 독립된 각자의 건물들이 회랑처럼 마루로 이어져 통일감을 주는 것이다. 자그마한 정원에는 돌무더기에서 자라 지붕의 키를 넘는 반송과 소박한 석등 하나가 처음부터 그곳이었던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응진전의 나한을 보고 나와 마루에 앉았다. 단아하고 고졸한 멋이 있는 영산암의 정원이 한동안 눈에 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한참을 앉았다. 멀리서 들리는 나무 부딪는 소리에 깨어 다시 만세루로 향한다.

 

▲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을 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뜻에서 지어진 우화루(雨花樓).

크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이 살아있다는 것, 깨어있다 것을 알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리는 빗소리, 피어나는 나리, 목탁을 두드리듯 나무를 두들겨대는 딱따구리, 말없이 고요한 사물과 생명의 말은 더 깊이 마음을 깨우기도 한다. 물에 사는 생명을 깨우는 목어 소리, 네 발 달린 짐승을 위한 법고, 날아다니는 새들을 위한 운판, 스님들의 중생을 위한 서른세 번의 타종이 끝났다.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의 보금자리로 안온하게 깃들었으리라. 나도 길고 깊은 하룻밤을 건넌다. 

 

▲ 모든 사물을 깨우고 잠재우는 법전 사물이 있는 봉정사 만세루에서 법고를 치는 스님.

새벽에 아침 공양을 하고 반나절을 더 머무른 뒤 돌아갈 시간이 됐다. 짐을 챙기고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내 앞을 지나던 할아버지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마주 앉았다. 절 안팎을 이리저리 돌며 소일하고 계신 듯. 눈인사를 나누고 툇마루에 걸터앉은 할아버지가 혼자 왔냐고 먼저 말을 거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절 앞 태장리에 살면서 봉정사가 삶의 터전이었다는 할아버지는 문서화되지 않은 봉정사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귀한 서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적는 내가 신기한 지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왔을 때 얘기를 들려준다. 분명 화장실을 간 여왕이 나오기를 한참을 기다렸는데 어디로 사라진지 알 수가 없었다며, 정말 신기한 일도 다 있었네, 하며 어르신의 지난날 회상 여행에 웃음으로 동행해드렸다. 


“저기 지조암에는 올라가 봤어? 거기도 좋은데.”


“아니요, 어르신. 스님들 하안거 공부하신다고 방해될까 봐 안 갔어요.”


“아이고 공부는 뭔 공부, 이름 석 자만 알면 다 잘 살 수 있다. 공기가 좋아야지, 자연이 좋아야지. 이번에 봐, 코로나 병에 걸리면 다 죽잖아. 공부 아무 필요 없다.”


팔십 년을 이름만 알고 잘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위대한 존함은 이만용, 이만용 할아버지가 몸으로 쓴 자신만의 삶의 경전은 어느 주지스님의 설법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부슬거리던 비도 그치고 하늘이 파랗게 갠다. 있고 싶을 만큼 있다가 가라는 말씀에 며칠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한없이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일, 이틀의 호사조차 왠지 속세의 진흙더미에서 뒹굴고 있는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안할 뿐, 혼자는 늘 곁이라는 단어를 사무치게 한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진과 문자가 전송돼 왔다. 덩그러니, 라고 적힌 사진에는 내 흰 린넨 자켓이 머물렀던 방 옷걸이에 말 그대로 덩그러니 걸려있었다. 놓고 왔나 보다, 여행지에 무언가를 두고 오는 적이 잘 없는데 그 작은방에 걸어둔 옷이 왜 보이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 위, 가까운 언제쯤 다시 꼭 와야지 했던 아쉬움이 그대로인 듯 웃음이 났다. 그 후로도 한참을 지난 뒤 옷이 담긴 소포 박스는 도착했지만 꽃비 내리는 산사의 첫날밤을 묵었던 내 마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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