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된 울산공공병원

조용선 우정병원 원장 / 기사승인 : 2020-05-27 1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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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들여다보기

신조어 ‘산재중심 공공병원’의 실체가 드러났다.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공공병원을 원하는 울산시민들의 염원이 근로복지공단의 열한 번째 직영병원으로 귀결됐다. 울산 국립병원, 혁신형 공공병원, 울산형 공공병원은 우여곡절 끝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산재모병원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산재병원의 하나가 된 것이다. 


지난 21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울산 산재중심 공공병원의 건립과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이란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울산시장과 울주군수가 나란히 서서 활짝 웃으며 업무협약식을 체결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가운데에 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병원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지역거점 공공 의료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추진하겠으며 양옆에 선 울산시와 울주군은 부지를 근로복지공단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향후 500병상 규모 확대 추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 협약이 제대로 실현될지 우려가 앞선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병원은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 등의 진료 요양 및 재활, 재활보조기구의 연구개발 검정 및 보급, 보험급여 결정 및 지급을 위한 업무상 질병 관련 연구, 근로자 등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건강진단 등 예방 사업을 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나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의 기능과는 결을 달리한다. 지금은 산재중심 공공병원이라는 명분 때문에 공공의료의 기능을 실현하겠다고 협약하지만 엄연히 법적으로 다른 기능을 하는 기관이고 기존의 10개의 근로복지공단병원 어디에서도 이런 기능을 하지 않았다. 근로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근로복지공단병원을 이용하고 있으니 공공병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단순한 문호개방과 공공성은 다르다. 


당장 1단계 300병상으로 시작하는 병원은 재활치료와 아급성기 기능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지역응급센터와 외래 위주의 심장센터를 공공기능으로 내세웠다. 이는 그냥 일반 병원에서 24시간 운영하는 응급실 정도의 수준이지 울산시민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뇌심혈관질환에 대한 대처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공공의료 기관은 공공의료체계에 편입돼 정부와 지자체의 보건의료 정책을 연계하고 시행해서 코로나 같은 감염병에 대한 대응이나 대규모 재난 사태에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는데 근로복지공단병원으로서는 기능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법적으로도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2단계로 500병상으로 확대 증축하면 수지타산을 봐 가면서 응급의료센터와 뇌심혈관센터를 운영해 공적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공단의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300병상 개원 후 첫 4년간 약 1000억 원의 누적적자가 발생하고 5년차에 500병상으로 확대하려면 건립비용 1003억 원, 그 후 해마다 330억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무리 공공병원이 착한 적자를 필요로 한다지만 이 정도의 적자를 감당하면서 확대는커녕 병원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비용편익분석에서 1.03으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그간 비슷한 규모의 산재병원을 주장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비용편익분석이 낮아 번번이 예비타당성조사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됐던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부지를 매입해 근로복지공단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런데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에서는 제공한 부지에 영구건축물(병원)을 지을 수 없도록 돼 있어 곤란한 상황이 되자 지난 4월 강길부 의원의 발의로 병원을 지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울산시와 울주군이 이렇게 법까지 고쳐가면서 부지를 제공한 이유는 근로복지공단 울산병원이 공공의료의 기능을 같이해 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향후 발생할 적자에 대해 울산시가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울산시는 부지를 제공하고 운영비까지 부담하면서도 공공병원 기능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울산시가 중심이 돼 공공병원을 건립하고 여기에 재활기능을 강화한 산재병원의 역할을 같이 하겠다는 명목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출자를 받고 운영상 발생하는 적자에 대해서도 운영비를 부담시키면 명실상부한 산재중심 공공병원이 되지 않았을까? 주객이 전도돼 버렸다.


조용선 우정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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