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밥

조숙향 시인 / 기사승인 : 2019-12-11 10: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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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일과가 끝나고 퇴근을 서두르고 있을 때였다. 문을 열며 어스름한 틈 사이로 빼꼼히 실내를 들여다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낯은 익은데 누구인지 얼른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덩치도 제법 크고 얼굴에 청년티도 약간 흐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누구지? 하고 말해 버렸다. 친구들의 얼굴에서 약간 실망하는 빛이 엿보였다. 자기들을 반갑게 맞이해줄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외모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그 친구들을 내가 못 알아본 것이다. 


이 친구들과의 인연도 벌써 12년이나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나에게 독서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 첫 만남이었다. 맑고 순수했던 친구들이라서 메말라 있던 내 감수성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래서 정도 많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독서지도를 그만두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이 내게도 퍽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화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에 대해서도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가능한 야외수업을 나가려고 했다. 우리가 자주 간 곳은 마을과 가까운 태화강 상류였다. 그곳은 아이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탐색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사계절 다른 물소리를 들려주는 강이 있고 선바위를 둘러싸고 산책하기에 좋은 숲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된 야외수업이었지만 오히려 내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 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들 사이에서 신기한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아이들과 함께 얕은 강물에 발을 담그고 강에서 살고 있는 생물을 조사하거나 물속을 살랑거리는 물고기를 들여다본다거나 선바위 아래 보 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무늬를 관찰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던 것 같다. 햇살을 받은 수면 위로 바람이 불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물결 위에 빛이 산란하기 시작했다. 특히 겨울 한낮의 물결은 햇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많은 사람이 그러했겠지만 나도 먹고사는 일에 더 골몰했으므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같은 것을 잊고 살아온 날이 많았다. 아이들의 추억거리를 핑계 삼아 강가에 앉아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차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추억들이 친구들의 내면에 깊게 남아 있었나 보다. 나와 함께 강이며 숲으로 쏘다닐 때가 많이 생각난단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이 고등학생이 돼서 피자 한 판을 사들고 불쑥 찾아온 날이 있었다. 날씨가 쌀쌀했던 1월이었는데 김이 오르는 따끈한 피자를 내게 건네며 지나가다가 내 생각이 났단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책을 잘 읽어 칭찬을 많이 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티격태격 밀당도 많이 했는데, 피자 한 판을 앞에 두고 나는 친구들한테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한편으론 사교육자로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대했는지에 대해, 이권에 더 관심을 갖고 대하진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잠시 마음을 스쳐 갔다.


그런데 이 친구들 보게. 밥을 사준다고 하니까 뜨끈한 국밥이 먹고 싶단다. 그 좋아하던 통닭,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등등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가. 이만큼 자라면서 성장통도 제법 겪었을 친구들이 대견해서 진짜냐고 몇 번을 묻고 국밥집으로 향했다. 


햄버거에서 국밥으로 친구들은 그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중에 한 친구가 그런다.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그런데 죽음이 우리 곁에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단다. 왜 안 그럴까.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배 고프지 하시며 반겨주실 것만 같은 할머니를 보내드렸으니.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나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가르쳤던 친구들이 이제는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서 예전처럼 살갑게 군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보람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왔나. 사소한 일상이나 하는 일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다양한 보람은 숨 쉬고 있겠지만, 이렇게 찾아준 친구들에게 더욱 따뜻한 보람을 느낀다. 오늘은 순대국밥이 무척 달다.


조숙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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