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2) - 덮어야 산다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0-05-27 10:17:23
  • -
  • +
  • 인쇄
농부 철학
▲ 낮잠이나 자자는 고양이

 

우리 부부가 사는 덤바우는 둥글게 산에 감싸고 있는데 뒷산이 무척 깊습니다. 얼마 전 임도를 내느라고 산비탈을 잘라내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 잘린 절개 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층은 암석이나 토사가 퇴적된 층을 말합니다. 특성을 공유하는 암석이나 토양의 층으로 시간의 경과와 함께 다른 층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구분되며 누적됩니다. 각각의 층은 보통 평행하게 쌓인 모습인데, 오직 자연에 의해 이뤄진 역사입니다. 지표에 가까울수록 최근의 기록일 텐데요. 심한 지진이나 산사태가 없었다면 지상에서 못 해도 20㎝ 정도는 유기물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유기물의 유래는 당연히 온 산에 버티고 선 나무들이 내놓은 낙엽이나 나뭇가지, 또는 죽어버린 나무 전체일 것입니다. 수십㎝ 정도의 유기물이 쌓이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요? 비교적 최근에 떨어진 이파리들은 부피가 크겠으나 아래로 갈수록 썩어 문드러져 부피가 줄고 유기물층의 가장 밑바닥 이파리들은 이미 흙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부엽토라고 흔히 부릅니다. 낙엽이 썩어 마침내 흙이 된 것이죠. 20㎝의 유기물층이 형성되자면 수십 년 이상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기물층 바로 아래는 거칠기 짝이 없는 흙입니다. 농민들은 그런 것을 ‘생땅’이라고 부릅니다. 그저 지상을 지지할 뿐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층이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층들의 연속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들의 토양도 이와 비슷한 모습일 것입니다.

 

▲ 그리움의 꽃, 찔레꽃


우리 덤바우 밭을 잘라내면 어떤 모습일까요? 올봄, 도시 농업인들이 분양받은 텃밭의 형편은 또 어떤가요? 확연한 차이는 지표를 덮은 유기물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밭 군데군데에 나무를 심어놓거나 잔뜩 풀이 덮인 밭에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각해봅시다. 자연 생태계에 속한 나무와 풀들은 자신의 몸 일부나 전체를 제 발목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세대를 거듭해왔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긴 세월을 그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진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꾸는 농작물 역시 그 본성은 싹이 트는 순간 그런 삶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욕구를 충족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수십㎝의 유기물층을 인위적으로 밭에 조성하려고 든다면 막대한 비용과 노동이 투여돼야만 합니다. 예로부터 농민들은 그런 부담을 지는 대신 퇴비를 만들어 쓰는 것으로 대신했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양질의 퇴비를 매년 넉넉히 밭에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생산성과 농산물의 품질을 드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과 들의 유기물층의 역할에 대해서 좀 더 살펴봐야만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비록 퇴비를 충분히 공급해준 밭이라 하더라도 유기물이 지표에 존재하는 것을 잘 따지고 곱씹어야만 생태환경을 농업에 제대로 활용할 길이 열립니다. 이를 위해 우선 모든 식물이 뿌리 박는 흙에 대해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지표면의 약 50cm 두께 정도의 흙이 농업에 주로 이용되는 층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토양은 암석이 풍화돼 잘게 부서진 본연의 흙과 식물이 내놓은 유기물이 뒤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이 흙은 고체, 액체, 기체 상태(흙의 삼상)를 모두 아우르는 상태인데 50%가 고체, 25%는 물, 나머지 25%는 공기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외부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특히 밭의 토양환경은 농사로 인해 그 변화의 폭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물이 잘 자랄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흙의 삼상이 깨지면 우리가 흙에 기대하는 수분을 저장하는 기능(보수력), 양분 저장 기능(보비력), 공기공급(통기성)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한마디로 작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토양환경이 되고 마는 것이죠. 다행히 토양 속에 유기물이 충분하다면 기능 마비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비가 오는 것만으로도 토양 표면은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게 되고, 가뭄 역시 같은 악영향을 끼칩니다. 극심한 기온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의 기능을 계속 활성화하려면 반드시 토양 표면을 덮어줘야만 합니다. 저는 감히 농사의 시작은 잘 덮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그 방법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토종, 붉은줄기아욱 갈무리


토양 표면을 덮는 수단은 다양합니다. 우선 덮지 않는 경우부터 따져보겠습니다. 밭을 갈고 씨나 모종을 심게 되면 당장은 맨땅입니다. 파종기는 대개 4~5월인데요. 일교차가 크고 가문 시절입니다. 토양 표면의 수분이 급속히 증발할 것이고, 그에 대응해 물을 주게 되면 표면이 단단해집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작물의 뿌리가 내리는 토양환경은 매우 열악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풀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풀이 덮개 역할을 함으로써 악영향을 줄여 줘 토양환경을 개선해줍니다. 그러나 풀은 그 양뿐 아니라 작물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므로 작물과의 경쟁에서 이깁니다. 시의적절하게 김매기를 하고 풀의 사체로 작물들 사이에 덮어주면 그것 역시 덮개 역할을 합니다만, 지극히 일시적이어서 효율이 떨어집니다. 김매기의 고단함은 차치하고도 그렇습니다. 덮기의 종류를 상, 하책으로 구분할 때 맨땅(무멀칭) 파종은 무(대)책입니다. 토양 속에 제아무리 유기물이 많아도 그렇습니다.


요즘 가장 일반적인 피복(멸칭) 소재는 비닐입니다. 농민 대부분이 이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토양 표면을 덮는 하책입니다. 하책임에도 효용 가치는 무척 높습니다. 이른 봄이나 가을의 높은 일교차로부터 지온을 유지하는 좋은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이랑의 수분 유지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풀을 차단하는 역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고온기에는 이랑에 열을 가두는 역할을 해 토양의 온도가 매우 높아집니다. 70도 이상으로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비가 잦고 습도가 높아지면 이랑이 물에 잠긴 것 같은 지경이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작물의 뿌리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활력이 뚝 떨어져 병해에 취약하게 됩니다. 한 해 쓰고 버려야 하는 폐기물이므로 환경에 좋지 않을뿐더러 비용부담도 상당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덮지 않는 것보다는 훌륭한 해결책입니다.
비닐보다 조금 나은 대책은 신문지 활용입니다. 신문지를 세 겹 정도 포개어 이랑에 깔고, 그 위는 얇게 흙을 한 층 더 덮어주는 방식입니다. 신문지는 유기물이어서 이른바 숨을 쉬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작기가 짧은 채소 재배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비닐보다는 훨씬 나은 덮기입니다. 다만 신문 까는 일이 번거로워 규모가 좀 큰 밭에서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세찬 바람이나 비에 취약할 수 있어 흙덮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른바 상책에 속하는 덮기는 산에서 긁어온 낙엽이나 잘 숙성한 볏짚, 왕겨, 톱밥 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구하기나 비용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월한 방편은 아니나 효과가 탁월해 지력 향상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기물 피복에서 유의할 점은 반드시 재료를 잘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것을 그대로 덮어주게 되면 특유의 독성으로 종자의 발아나 모종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고, 해로운 벌레가 발생해 작물에 손실이 발생합니다.

 

▲ 신문지로 덮은 밭


텃밭을 운영하면서 무피복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무피복 재배는 작물을 괴롭히는 행태입니다. 고통받는 작물로부터 좋은 품질의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밭에는 반드시 덮개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상책의 덮개는 덮개작물입니다. 생태 환경적인 측면에서 더할 나위가 없는 방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따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근우 농부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근우 시민, 농부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