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지리지에 수록된 동백섬(1)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기사승인 : 2020-05-08 1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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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백

 

천연기념물 제65호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의 공식 이름은 목도(目島)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섬의 이름은 옛 지지리에 거의 대부분 동백도(冬柏島)로 표기돼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펴낸 공식 문서에 목도의 다른 이름 즉 동도이명(同島異名)으로 죽도(竹島)와 동백도를 설명하고 있다. 주민들이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목도(목섬, 목스미), 동백도(동백섬), 춘도(椿島)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울산시민들조차도 정보의 전달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타임스의 2019년 1월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날 있었던 ‘천연기념물 제65호 목도 상록수림보호와 동백생태공원 관리를 위한 간담회’에서는 “목도의 옛 이름인 춘도로 개명, 전면개방이 힘들면 부분개방이라도 하여 목도의 출입을 허용해 달라” 등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목도의 정확한 이름을 찾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문헌을 연구하고 현장을 조사하며 그 결과를 올바르게 고찰해 정확한 이름으로 고치기 위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1454) 등 역대 관찬 지리지와 <학성지>(권상일, 1749) 등 사찬 지리지에 수록된 울산의 섬 이름은 동백도(冬柏島, 桐柏島), 죽도(竹島), 목도(目島, 木島, 牧島), 항도(項島), 명산도(鳴山島), 명선도(鳴蟬島), 연자도(燕子島), 합도(蛤島), 요도(蓼島), 독도(獨島), 중도(中島) 등 11개였다. 옛 지리지에 수록된 섬들의 이름은 명산도(鳴山島)와 명선도(鳴蟬島)처럼 동일한 섬인데 서로 다른 이름이 있는 동도이명(同島異名)도 있고 중도와 독도처럼 현재의 위치가 불확실한 섬도 있다. 이들 섬 가운데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거나 동백나무가 자생했다고 알려진 섬은 동백섬, 제비섬(연자도), 명선도 등 3개다. 동백섬과 동도이명으로 취급되고 있는 목도와 죽도는 실제 위치와 이름에서 동백섬과 전혀 다른 섬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섬의 이름이 가장 많이 수록된 섬은 동백도이고. 다음으로 많이 수록된 섬은 죽도다. 동백도는 단종 2년 1454년에 춘추관에서 발간된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 ‘울산조’에 “동백도가 군의 남쪽에 있다(冬柏島在郡男)”고 수록돼 있다. <동국여지승람>(양성지, 1481)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이행 등, 1530)의 ‘울산조’ 산천편에는 “동백도가 군(병영성) 남쪽 30리에 있고 동백이 섬에 가득해 이렇게 부른다(冬柏島在郡南三十里冬柏滿島故名)”고 수록돼 있다.

죽도(竹島, 대섬)

죽도(竹島, 대섬)란 이름을 가진 섬은 일반적으로 섬에 해죽이나 이대가 많다. 죽도란 이름의 섬은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바닷가에 흔히 있다. 울산 가까운 바닷가에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기장군 대변면에 있다. 이 섬에 일본이 임진왜란 때 쌓은 성이 있는데 이 성을 죽도왜성이라 한다. 


한국전통문화연구소(1981)의 <한국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 임경빈(1993)의 <천연기념물>, 윤무부 등(1998)의 <한국의 천연기념물>, 경남은행(2005)의 <경남은행과 함께하는 울산>, 문화재청(2009)의 <문화재대관 천연기념물·명승> 등 천연기념물 목도상록수림이 수록된 현대의 문헌에서 죽도(竹島)를 동백도(冬柏島)와 함께 목도(目島)의 다른 땅이름(地名) 즉 동도이명(同島異名)으로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울산 관련 옛 지리지에 죽도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동국여지승람>(東國餘地勝覽, 양성지, 1481)이고 다음이 이 책의 증보본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 이행 등, 1531)이다. 이 두 책에는 죽도(竹島, 대섬)가 “병영성의 동헌(지금의 병영 동헌)이 있었던 남쪽 10리(在郡南十里, 4km)”에, 그리고 동백도(冬柏島: 동백섬)가 “동헌이 있었던 남쪽 30리(12km)에 있고 섬에 동백이 가득해 동백도라 부른다(在郡南三十里冬柏滿島故名)”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책의 설명은 그 뒤에 발간된 <경상도읍지 울산부읍지>(慶尙道邑誌蔚山府邑誌, 1831) 등 관찬 지리지나 김정호(1864)의 <대동지지>(大東地誌) 등 사찬 지리지에서 죽도의 거리가 동헌에서 15리(6km)나 20리(8km)로 다르게 설명했을 뿐 죽도와 동백도가 서로 다른 섬이라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져 있다. <울산부여지도 서신편읍지>(경상감영, 1786)와 <경상도읍지 울산읍지>(경상감영, 1832)에는 “화살대가 죽도에 난다(箭竹出竹島)”, <영남읍지 울산부사례>(경상감영, 1895)에는 “죽도에서 화살대를 얻는다(箭竹取出)” 등의 기록이 있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죽도와 동백도는 서로 다른 곳에 다른 이름으로 위치하는 서로 다른 섬으로 봐야 한다.


<흥려승람>(박기홍, 1937)에는 “장생포 동쪽에 죽도가 있다”(長生浦東有竹島)고 기록돼 있다. 울산의 남쪽 바닷가 장생포(長生浦)마을과 양죽(養竹)마을 사이에 섬(죽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섬목마을이 있었다. 죽도는 이 섬목마을 앞바다에 있었고 이대가 가득 자라던 작은 섬이었다. 행정 소속은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산 223번지다(<울산남구지명사편찬위원회>, 2009). 이 죽도와 양죽마을에서 멀지 않은 거리인 개운포(開雲浦)에 세종 때부터 수군만호가 있었고, 선조 때는 경상도좌수영이 한동안 있었으며, 뒤에 선소(船所)가 도산(島山)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조선 수군의 요새지가 됐다. 죽도와 양죽마을, 세죽마을 등의 이대는 성암동의 선소(船所)로 보내져 전투 때 사용할 살상용 화살을 만드는 살대로 사용됐다. 죽도(현재 울산지방해운항만청 입구)에서 옛날 아랫장에 이르는 바닷가를 죽도갱변이라 했다. 


이 섬목마을과 죽도는 울산공업단지가 지정되고 주변지역이 공업지역과 항만지역으로 매립되면서 육지로 변했다. 원래 화살용 이대가 자생하던 섬 죽도는 현재 매암동 울산지방해운항만청 뒤에 똥뫼로 남아 있는 작은 산으로 변했으나 땅이름은 죽도, 대섬으로 남아있다. 섬 언저리에는 장생포 출신 대중가요 가수 윤수일의 ‘환상의 섬’ 노래비가 서 있다.


동백도는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 13번지 목도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 동백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동백섬(冬柏島)이라 부르던 작은 섬이다. 지금은 이 섬을 목도(目島)라고 부르고 있다. 죽도와 동백도는 분명히 서로 다른 섬이다. 그런데도 계속 같은 땅을 서로 다른 이름(同地異名)으로 설명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권위 있는 개인이나 기관에서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이라고 하면, 잘못인데도 옳게 고치려 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잘못된 언어적 관습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는 죽도와 동백도를 같은 이름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말과 글은 우리 사람 상호간의 정보를 주고받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한 도구다. 말과 글이 명확하고 간편해야 정확한 정보를 전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조차 죽도를 동백도의 다른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하루 빨리 원래의 이름과 위치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바로 잡고 구분해 불러야 한다.

목도(目島, 눈섬)와 항도(項島, 목섬)

<문화재대관 천연기념물·명승>(문화재청, 2009) 등 천연기념물 목도상록수림을 설명하는 현대 문헌에서 목도(目島)를 동백섬(冬柏島)의 표준명으로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울산 관련 옛 지리지에 목도(目島)가 수록된 문헌은 동백도가 수록된 연대가 훨씬 늦은 조선 숙종 때이고 그것도 동백섬의 이름이 아닌 현재 목도마을의 이름으로 수록돼 있다.


섬 이름으로서 목도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읍지는 <영남읍지 울산부읍지>(경상감영, 1871)이고 동백도가 처음 수록된 1454년보다 무려 400년이나 늦다. 1871년 <영남읍지 울산부읍지> 지도에는 동백섬 자리에 목도가 표기돼 있다. 1934년의 <울산읍지>나 1937년의 <흥려승람>에는 목도가 도서조에 실려 있다. <울산읍지>(이석정, 1934)와 <흥려승람>(박기홍, 1937)에는 목도(目島)가 당시 행정관청이 있었던 “병영성(지금의 병영)으로부터 남쪽 40리(16km)에 있고(在府南四十里)”, 동백도(冬柏島: 동백섬)가 “병영성에서 남쪽으로 30리에 있고 동백나무가 많이 나서 동백도라 부른다(在府南三十里冬柏多生故名)”고 해 목도와 동백도가 서로 다른 섬으로 설명은 돼 있으나 원래 마을 이름인 목도를 섬으로 생각해 도서조에 넣은 것은 잘못이다. 목도마을과 동백섬은 당시에도 4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10리(4km)나 떨어진 것으로 설명한 것도 잘못이며, 목도를 섬으로 본다면 이 섬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섬으로 유령섬이 된다. 한편 <조선흥려승람>(朝鮮環與勝覽, 이병연, 1938)에는 목도가 “동헌이 있었던 남쪽 40리(16km)에 있고 시장이 번성한다(在郡南四十里市場繁盛)”고 설명하고, “동백도는 병영에서 남쪽으로 30리에 있고 동백이 많이 나서 동백도라 부른다(在府南三十里冬柏多生故名)”고 설명하고 있어 목도를 목도마을로 동백도를 동백섬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항도(項島) 즉 목(項)섬(島)를 “촌명(村名)”이라 해 마을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글학회(1988)에서 간행한 <한국지명총람> 9에는 목도마을이 1914년 행정구역이 폐합하면서 방도리에 포함됐고 목도를 주민들은 “목스미”라고 부르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목도마을에는 마을 앞의 목도상록수림 외에도 마을 북쪽에 시장 목도장(목스미장, 시골 오일장) 등이 있었다. 동백섬을 목도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제시대인 1937년 조선총독부가 동백섬 상록수림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그 이름을 목도상록수림이라고 공포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동백섬 상록수림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그 이름을 목도상록수림이라고 한 것은 당시 동백섬을 중심으로 목도(목스미)마을에 상록활엽수림이 형성돼 있었고 이 숲이 동해안에서는 가장 북쪽에 형성된 상록수림이었기 때문에 목도란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근래 출판된 각종 책에는 목도를 눈목 목(目)과 섬도 도(島)로 적고 목도를 설명하기를 “본래 물고기의 눈처럼 생겼다 하여 목도라고 불렀고, 훗날 주민들이 이 섬에 화살대(箭竹)를 심어 죽도라 불렀는데, 여기서 나는 화살대를 신라 조정에 바쳤다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동백섬의 이름을 목도로 적고 있으니까 누군가 한자 이름에 자기 나름대로 적당히 설명을 붙인 것 같다. 저자가 찾아본 일제 이전의 어떤 고문헌에도 이런 설명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설명도 논리에 맞지 않다. 물고기의 눈을 닮았다면 섬의 모양이 동그라야 하는데 이 섬은 동그란 것이 아니라 길쭉하다. 물고기의 눈을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닮았다고 한다면 조금 비슷하다. 또 섬에 화살대(箭竹)를 심어 죽도라 불렀다는 것도 의문이 간다. 이 섬에 이대 즉 경상도 지역에서 부르는 설대(화살대)가 분포는 하고 있으나 섬의 면적에 비해 이대의 면적은 매우 적다. 그리고 지명은 그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동백섬으로 부르는 것이 더 특징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를 심었다고 해서 죽도라고 불렀다는 것도 사리에 알맞지 않다. 화살대로 조정에 바친 곳은 매암동의 죽도와 양죽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설명은 누군가 어설프게 지어낸 이야기를 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이나 언론기관의 기자 등이 사실 확인 없이 잘못 씀으로서 오류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설명은 쓰지 말아야 한다. 


또 “이 섬의 대를 옮겨 심은 곳이 지금의 세죽(細竹)마을이다”라고 하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 설명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대가 특별히 섬에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뭍에 더 많이 자라고 있는 식물이고 마을 이름에 대나무 죽(竹)자가 들어갈 정도면 그 마을은 대나무로 유명했다고 보아야 한다. 세죽마을은 마을에서 신석기 유물이 발굴될 정도로 오래된 마을이다. 오래된 마을인 만큼 마을이름이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동백섬에서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해서 이미 시용하고 있던 마을이름을 버리고 세죽마을이라고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이대가 많아 세죽마을이라고 불렀다는 설명은 논리에 맞다.


이처럼 목도와 동백도는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한 서로 다른 지명이며 또한 항도(項島)는 우리말 목섬을 한자로 표기한 마을이름이고 동백섬 즉 동백도는 동백나무가 많이 나서 부른 섬 이름이다.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에 활용하기 위한 지리서를 간행하기 위해 수집한 지지 자료집인 <조선지지자료집>(朝鮮地誌資料集, 1934)에도 목도를 목도동(目島洞)이라 해 경상남도 울산군 청량면에 속하는 마을이름으로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의 설명대로라면 목도는 지금의 목도마을을 부르는 이름이고 동백섬은 지금의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을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도는 우리말 목(項)과 섬(島)이 합쳐진 목섬이란 이름이고 그 뜻은 동물 기관의 좁은 부위(목, 손목, 발목 등)나 사물(배, 차량 등)이 드나드는 좁은 길(나들목, 건널목, 물목, 길목)을 나타낸다. 배나 물이 드나드는 좁은 물길에 있는 섬을 목섬이라고 하는데 이 목섬을 한자로 적으면서 목의 음을 눈목(目), 나무목(木), 칠목(牧) 등으로 적어 目島, 木島, 牧島로 표기한 것이다. <영남읍지 울산부읍지>(1871), <울산읍지 신편사례>(1894), <영남읍지 울산부사례>(1894)에 나무 목자 木島가 수록돼 있다. 이런 예는 전국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목도는 원포마을 앞바다에 있고 면적이 0.034㎢, 최고점의 해발고도 20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무인도다. 이 섬은 썰물 때는 뭍에서 섬으로 건너다닐 수 있었다. 이런 섬을 ‘목섬’ 또는 ‘모가지섬’이라 부른다. 이 섬 역시 목섬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목’이라는 소리를 나무 ‘목(木)’자로, 섬을 섬 도(島)를 써서 목도(木島)로 표기했다. 여수시 국동과 봉산동 사이에 방답진 성의 굴개 앞에는 ‘나무섬’이라는 조그마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지형도 썰물(干潮) 때는 뭍(육지)과 섬이 연결돼 건널 수 있게 변한다. 이 섬의 이름도 안포리 목도와 마찬가지로 변했다. 여수시 소호동의 목섬(항도, 項島),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금포마을 앞 목섬(목도, 項島)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땅이름의 왜곡은 일제에 의해 지도가 제작되면서 많이 생기게 됐는데 우리말 이름의 산과 섬의 이름들을 쉬운 한자나 잘못된 해석으로 기록해 엉터리 땅이름으로 전해지게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의 어미를 모르는 어중잽이(어중이) 지식인들이 한자의 의미를 풀이해 “눈섬(울주군 온산읍 目島 등)”이나 “나무섬(낙동강 하구 木島)”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 목의 뜻을 살려 한자로 목항(項)으로 적어 “항도(項島)”로 표기한 섬 이름이 있다. 울산의 목도상록수림 동백섬을 눈목(目)자 목도로 적어니까 눈섬이라고 풀이하고 섬의 지형이 물고기의 눈을 닮아 “눈섬”이라고 한다. 이 설명은 완전 어중이 반풍수가 지어낸 소설이다. 이 섬의 모양은 감자나 바람이 탱탱하게 든 럭비공 모양이고 물고기의 눈은 대부분 축구공 같이 둥글다. 그런데 섬이 물고기의 눈을 닮아 눈섬, 즉 목도라고 한다는 설명은 억지춘향에 불과한 설명이다. 그런데도 물고기 눈을 닮아 목도라 부른다는 설명이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발행한 책자나 공식 문서에까지 실려 있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당장 쓰지 말아야 한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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