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판단, 연해주 푸칠로프카 민족학교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19-09-04 1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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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판단의 오류를 경험할까? 판단의 오류로 겪는 당황스러움이나 상처는 주로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지만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 남의 나라에서 이런 오류를 경험한다면 미처 준비되지 못함에 당황하고 다시 준비하려는 의욕보다는 단념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난 8월 16일부터 약 일주일간 러시아 연해주를 다녀왔다. 방문 목적은 연해주 우수리스크 서편에 있는 작은 마을인 푸칠로프카에 있는 폐교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진작 한 번 주변을 둘러보러 다녀왔었고 이번에는 인수를 하려고 마음먹고 다니러 간 것이다. 떠나기 전 내 마음은 학교를 곧 만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도 설렘은 마찬가지였다.


푸칠로프카 마을에 세워진 농민 청년학교는 연해주에서 대표적인 민족학교였다. 이 학교의 역사를 간략히 보자면 지금부터 약 110년 전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교통총장인 문창범 선생이 세운 학교로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한인(고려인)들의 학교였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조명희 시인이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해서 교사로 근무한 학교이기도 하다. 한인 강제이주 후 폐허가 돼 군부대의 숙소 등으로 사용됐고 이후 육성농업학교를 거쳐 2002년까지 학교로 사용됐다.이런 의미 있는 학교를 인수해 연해주에서 우리 동포들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알리는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한·러 문화교류 장소로, 연해주 관광을 하는 우리 민족에게 관광 장소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디딤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번 방문 일정 중 법륜스님(스님의 하루 2019. 8. 18일자 “역사도 배우지만 삶을 배워야 해요.” 참고)께서 직접 이 학교까지 방문해 주신 점은 큰 영광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은 한방에 깨어졌다. 러시아의 변호사 상담과 현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우리들은 러시아 실정을 아예 모르는 너무나 어설프고 순진한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 유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우리가 딱 그랬다. 결국 역사적인 민족학교를 인수하기에는 준비 부족으로 보류됐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이 지면을 통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인수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영어로 된 매매계약서가 필요했고, 러시아 행정기관과 사전에 부동산 매입 계획을 알리고 차후 필요한 협조사항(전기, 토지임대, 상수도 등)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고, 한·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활용 계획과 비용 확보 방법, 또 울타리(건물 내에서 사고 발생 시 건물주가 책임이기 때문에 울타리는 가장 시급히 설치해야 함)와 지붕보수 비용 확보 등 치밀한 계획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폐교를 구입했다가 자금이 확보되면 시설을 건물주 마음대로 보수하듯이 러시아 학교 매입도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것이 큰 오류였다. 


민족학교를 세우려던 큰 기대감은 실망으로 다가왔고 돌아오는 길은 기운이 빠졌다. 지난 8월 31일 공연한 연희극 <어느 골짜기의 평화이야기>를 연출한 이상민 선생의 말이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통일은 폭력이다. 남한의 자본주의로 통일될 때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되나? 또 북한식으로 될 때 우리들은 어떻게 되나? 통일은 융합이 맞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서서히 젖어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같은 날 통일의병 백왕순 대표의 강의를 들었다. 핵심 내용은 남·북, 한·일, 한·중, 한·미 관계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백 대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쉽지 않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중국 견제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미국에게 유리한 미사일 배치 등 무리한 요구를 받을 수도 거부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난처한 상황이 자주 나타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혜로운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럴듯한 말보다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통일운동을 하고 있고 그 누구보다 통일을 원하지만, 나조차도 통일은 이런저런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빨리하면 된다는 막연하고도 낙관론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지만 단 하나의 생각은 고맙게도 이 학교를 구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북한은 물론이고 동북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융합의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서민태 울산저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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