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농을 하는 걸까?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19-04-10 10: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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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 고추밭에서 겨울을 난 봄 고들빼기

 

다소 기복은 있으나 귀농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물론 우리 마을조차도 새로 들어온 도시 출신 귀농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역시도 귀농인입니다. 그런데도 자주 자문하게 됩니다. 왜 귀농을 하는 걸까?


2017년도 농촌진흥청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인의 31.4%가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을 선택했다고 응답했습니다. 24.8%는 도시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24.3%가 은퇴 후 여가 생활을 위해, 22.2%는 새 일자리나 농업농촌 관련 산업을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이 통계를 단순화하면, 농업을 새 직업으로 선택하여 이직하는 귀농은 22.2%에 불과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80%에 달하는 귀농귀촌인은 탈도시를 지향한다고 뭉뚱그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귀농귀촌인들의 탈도시 지향은 통계청의 2017년 통계에서 살펴보면, 귀농과 귀촌을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같은 통계에서 귀농의 경우 그 연령대의 66%가 50~60대입니다. 귀촌은 평균 연령대가 44.7세이고, 30대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귀농은 전년도에 비해 줄고 귀촌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총 귀농인 가구가 1만2630가구인데 비해 총 귀촌인 가구는 33만4129가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귀촌인의 49.1%는 시·도내에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귀농인은 70.4%가 시·도 간을 넘어서 이동했습니다. 귀농과 귀촌의 이러한 상이한 경향은 직업과의 관련성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귀촌인은 도시에서의 직업을 유지한 채 주거지만 농촌으로 옮기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고, 귀농인은 생활 터전을 농촌으로 바꾸는, 생계형 이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귀농귀촌인의 탈도시 경향은 그 동기에서 상호간의 결이 무척 다른 것 같습니다.


제 관심사는 전업농으로 직업을 전환한 귀농인이므로 귀농인 통계를 잠시 더 살펴보겠습니다. 통계청의 통계에서는 전업 귀농인이 72.0%, 겸업 귀농인은 28.0%로 조사되었습니다. 귀농인 대부분은 이주와 함께 완전한 직업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령대는 50대가 38.8%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27.1%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50대 이상이 65%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많은 귀농인이 노후의 직업적 안정을 농업에서 찾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통계치입니다.

 

▲ 꽃샘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흰민들레


그런데 같은 통계에서 전업 귀농인의 경지 규모를 보면 귀농 가구의 80.9%는 0.5ha(5000㎡, 약 1500평) 미만 면적을 재배하고 있으며 평균재배면적은 0.38ha(3815㎡, 약1100평)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 농가의 70%가 1만㎡(약3000평) 미만을 경작하고 있고, 이를 소농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귀농인의 경작 규모는 일반 농가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매우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모만을 놓고 볼 때, 귀농인의 노후의 직업적 안정과는 다소 거리가 먼 수치들인 것이죠.


한편, 귀농인의 주 재배작물의 경우 채소(43.6%)와 과수(31.2%)가 높고, 면적 기준으로는 논벼(3719㎡)와 과수(2924㎡)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용작물의 비율이 27%임에 비추어 압도적으로 채소 비율이 높은 것은 귀농인 대부분이 기본 채소 재배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전문적인 농사를 짓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그리 크지 않은 농업경영을 한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을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일부 귀촌인이 귀농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있다 해도 추세적으로 볼 때 귀농과 귀촌은 어감만 비슷할 뿐 탈도시의 동기와 목적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귀농한 이들의 농업경영은 영세소농에 가까워 생계형 탈도시의 경향이 강합니다. 게다가 그들의 평균적인 경영 형태 또한 고소득 창출의 단서를 찾기 어려운 단순 농사에 기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통계치의 어설픈 해석입니다만, 10명 중 1명이 역귀농한다는 또 다른 통계를 고려할 때, 억측은 아니라는 판단이 듭니다.

 

▲ 비닐하우스에서 봄을 맞는 채소들


이러한 귀농 현실을 전혀 모를 리 없는 도시인들은, 그런데도 왜 귀농하는 걸까요? 귀농 15년차인 제가 당사자로서 주장하는 것은 탈도시 자연회귀입니다. 통계가 보여주는 귀농인의 열악한 이주, 이직 환경에도 귀농인의 열망의 많은 부분이 ‘조용한 전원생활’이라고 믿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뒤늦게 선택한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귀농인들의 의지에는 ‘도시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은퇴 후 여가 생활’에 대한 열망이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유 있는 삶과 자족적 생활, 느린 세상을 꿈꾸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생계의 고리이자 생활의 터전이며 동시에 성취 동기의 샘인 직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농촌에서 일구자는 철학의 결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이 귀농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이 귀농인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종의 도시해방의 정서를 구체적으로 구현하자면 촘촘한 맥락을 구성해야 합니다. 단순히 성공 사례에 압도된 허상을 좇아서는 삽질, 호미질이 무의미한 노동이 될 뿐입니다.


농사짓는 일의 가장 큰 기쁨은 모든 노동이 스스로에게 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귀착된 노동의 의미가 새로운 노동의 동력으로 전환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농사짓는 이는 그 대상과 합일되는 경지를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흙과 작물에 대한 교감이 아니며, 공감도 아니고, 만족스런 자의식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존감은커녕 자부심도 아니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배척하는 어떤 것,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농사는 다른 노동과 뚜렷이 구분되는 노동입니다. 배분되거나 분할되거나 책임과 권한이 위임 또는 전가되지 않고, 과정 전체가 오로지 노동하는 당사자에게 귀착되는 노동입니다.


농민은 왕이자 노예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계급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왕의 지위와 노예의 위상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험입니다. 농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배와 복종을 동시에 행하는 것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바른 인용인지 모르겠으나 제 생각에 동학의 ‘용시용활(用時用活)’이 농민의 극단적인 역할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때를 맞추어 나가지 못하면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때를 만들고 때를 이용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용시용활 말입니다.

 

▲ 밭일 하다말고 꽃구경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미 귀농한 이들의 처지와 형편, 상황과 의지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도시인의 의식구조를 가진 채 농사를 짓는 농민, 귀농인의 어설프고 다소 불안정한 사회경제적인 위상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으나 50만이 넘고 있는 귀농귀촌인들의 현재를 제 처지에 비추어 찬찬히 살펴볼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합니다. ‘왜 귀농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품은 채 말입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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