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전문 공공병원의 실체 팩트 체크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19-04-10 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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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솔직히 보통시민들은 국립 공공병원과 산재전문 공공병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300병상 병원이라도 지어준다는데 고맙지 않냐,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시간을 가지고 차차 보완하고 확대해 가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실은 필자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소시민 중 한 명이었다. 500병동 이상의 국립 공공병원과 300병동 규모의 산재전문 공공병원이 갖는 본질적인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국립 공공병원 대신에 정체성조차 모호한 산재전문 공공병원을 들이대며 자화자찬하는 울산시의 태도가 너무나 황당하고 후안무치해 분노한다. 그래서 ‘산재전문 공공병원 유치(?)’에도 국립 공공병원은 꼭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필자는 의료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도 아니고, 보통시민들보다 많이 알고 있지도 못하다. 다만 NGO 활동을 하다 보니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조금 먼저 듣고 깨달았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실제 사례를 가지고 비유적인 설명을 해 보겠다.


<사례 1>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울산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 활동가를 새로 뽑았다. 4월 1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는데 출근 첫날부터 결근했다. 남편이 갑작스런 고열과 두통으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울산의 병원을 돌았으나 병명을 밝히지 못해서 부산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병실을 잡지 못해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며 고생하다가 겨우 상황이 좀 호전돼서 1주일 만에 지각 출근했다.


<사례 2> 종전 직장에서 동료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접합수술을 받기 위해서 잘린 손가락을 찾아서 달려간 병원은 울산이 아닌 부산이었다. 다행히 접합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위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해야 하는 환우가 있을 경우 이구동성으로 서울이나 부산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큰 병원이란 병원의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 의료장비와 최고 수준의 의료진이 있는 병원을 말한다.


울산 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인 의료인들이 500병동 이상의 국립병원을 요구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울산시민들도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는 경우, 격리 수용이 필요한 환자가 있을 경우에 경영보다 공공성을 우선하는 병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립 공공병원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하고 울산시가 덥석 받은 300병상 규모의, 이름도 정체성도 낯선 산재전문 공공병원으로는 국립 공공병원이 담당해야 하는 기능을 전혀 할 수가 없다. 전국의 산재병원 실태를 보면 진료할 수 있는 과목도 적고, 의료장비는 물론 무엇보다도 의사 수가 턱없이 적다. 최고 수준의 의료진은 고사하고 일반 종합병원에 비해서도 의사 수가 적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대다수 병상은 장기요양 산재환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일반 환자들에게 할애할 수 있는 병실은 매우 적다.


일반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의료장비나 의료진 등 의료서비스의 질이 일반 사립병원 수준보다도 떨어지는 산재병원으로 찾아갈 시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들에게 산재전문 공공병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출발이 다른 것이다. 알기 쉽게 다시 한번 비유를 들자면 울산대학병원과 동강병원과는 비교조차 안 되고, 울산병원이나 시티병원보다도 의료진 수가 훨씬 적은 병원인 것이다.


울산의 진보적인 의료인들과 시민사회진영에서 국립 공공병원을 요구한 것은 병원 숫자나 병상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최첨단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규모나 의료수준 어느 것을 보더라도 그저 그런 수준의 산재병원을 받으라니까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재전문 공공병원과 국립 공공병원은 관장하는 부처도, 담당하는 의료서비스의 분야도 완전히 다르다. 작은 나무는 잘 가꿔서 큰 나무로 키울 수 있지만 품종을 바꿀 수는 없다. 탱자나무를 심어놓고 감귤이 열리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통령과 울산시장의 공약이었던 500병상 이상 국립 공공병원 설립 대신에 300병상 규모의 산재병원은 약속 위반이다. 약속을 지키려고 했으나 제반 여건상 지키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사과를 해도 섭섭함이 풀리기 어려운데 온 시가지에 자화자찬 현수막을 도배하다시피 내걸었다.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자의인지 타의인지 관변단체와 이해관계를 갖는 기관들이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염치를 안다면 이럴 수가 없는 일이다. 울산시는 이제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서 일관되게 요구하는 국립 공공병원 유치를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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