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여유(2)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19-12-11 10: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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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찾아온 손님들과 찻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어느새 막힌 담은 무너지고 작은 소통의 공간에는 천하의 담론들이 무르익는다.


역사 속에는 차 한 잔의 시간으로 인해 큰 전쟁에서 패장(敗將)이 된 사람과 나라를 구한 사람이 있다. 삼국지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의 조조(趙祚)와 소교(小橋)다. 위, 촉, 오의 치열한 패권 전쟁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이 동오를 치기 위해 적벽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유비의 책사 공명과 동오(東吳)의 대도독 주유(周瑜)는 전략회의를 하게 된다. 큰 강 위에서 양쪽의 수군에 의해서 승패가 갈라지는데 양쪽 다 화공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제갈공명은 주유 대장군에게 초저녁에는 서풍이 불어 조조의 군대가 승리할 것이고 밤이 깊어지면 반대로 동풍이 불어 우리가 이길 것이라 하며 조조의 공격 시간을 누가 늦출 수 있겠는가, 긴 한숨을 내쉰다. 

 

▲ 영화 <적벽대전>에서 소교 역을 맡은 린즈링


이 말을 엿들은 주유의 아내 소교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소교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할 만큼의 절세미인이다. 일찍이 조조는 소교를 짝사랑하고 승상이 돼서도 끝내 소교를 잊지 못해 적벽대전에서 승리하면 소교를 차지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전쟁에 임했다. 이를 알고 있는 소교는 남편이 잠자는 시간 몰래 편지 한 장을 놓고 강 건너 조조에게로 간다. 조조에게는 스스로 굴러온 복덩이였다. 


다음날 최후의 일전을 두고 조조는 전군에 전투 준비 명령을 내리고 숙소에서 나오는데 지나는 길 옆방에서 소교가 차를 끓이고 있다. 이를 본 조조는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 이 때 소교는 전쟁을 앞두고 나가는 장수에게 차 한 잔을 올리겠다고 하면서 잠시 들어와 차를 마실 것을 권한다. 조조는 그렇게도 사모하던 여인이 제 발로 들어와서 자신을 위해 차를 끓이고 잔을 내미는데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일각(一角)이 여삼추(餘三秋)인 조조를 붙들고 차를 설명하면서 천천히 차를 권하고 마시는데 그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서풍이 동풍으로 바뀐 것이다. 공격 기회를 놓친 조조의 백만 대군은 적벽에서 오·촉 연합군의 화공으로 대패하고 도망가게 된다. 주유의 부인 소교는 차 한 잔의 여유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라를 구했다. 그러나 조조는 차 한 잔의 시간으로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후퇴하게 된다. 나는 강동의 절세미인 소교의 차 한 잔의 여유, 그 중요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하던 일 잠시 멈추고 쉬어 갈 수는 없을까.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작은 우연이나 스침을 소중히 하면서 찻 자리에 앉으면 좋겠다.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있다. 상실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저 인생의 성화(聖畵)라고 불리는 밀레의 ‘저녁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던 일 잠시 멈추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 기울이며 두 손 곱게 모으는 여유가 있다면 황혼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이를 누르고 살고 싶어 필명을 우보(牛步)라 짓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오늘도 차 한 잔의 여유, 이 ‘느림의 미학’을 전하는 전도사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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