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더위 먹어가며 만난 낙동강변 소우정, 광심정, 망우정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5-19 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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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물속에 비친 산들은 폭염에 아지랑이처럼 낙동강물에 잠겼다. 본포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천마산. ⓒ이동고 기자

 

밀양(密陽)도 분지인지라 여름철 최대기온 지역을 두고 대구, 합천, 거창 등과 겨루는 데 밀리지 않는 지역이다. 밀(密) 자체가 빽빽한 것이니 이름 자체가 무더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벌써 온도가 30도를 육박하고 포장길은 데워졌다. 하지만 고어로 밀은 바로 ‘물’이었고 예전 밀양지역은 해수면 상승 때 물이 많던 분지였다.

우리는 수산대교를 건너 낙동강을 가로지른다. 건너편은 창원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다. 저 멀리 모터보트가 가오리연 같은 포말을 일으키며 날쌘 제비처럼 달려오다 수상스키가 튕기면서 꼬꾸라진다. 사대강 개발이 만든 새로운 풍경인가?

강을 건너면서 바라본 강변들은 보랏빛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콩과에 속한 갈퀴나물 군락지다. 드넓은 보랏빛 갈퀴나물 사이로 오프로드의 억센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들쑤셔진 강변 땅 생채기를 다 덮고 자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뙤약볕에 챙겼던 모자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냥 농담처럼 내뱉은 ‘사막을 걷는 낙타꼴’로 폭염을 고스란히 맞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강바람마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무성한 강변 포플러나무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국농어촌공사 본포 양수장에서 꺾어 다시 강을 건너면 창녕 학포리가 나온다. 본포교에서 보면 삼각형 천마산 능선이 강으로 달려 나와 몸을 담그고 있다. 산도 무척이나 더웠나 보다. 강변에는 이제 수확을 곧 앞둔 마늘과 양파, 보리밭들이 이어진다.

창녕 부곡면 마을 입구에 개비가 서 있다. 개(犬)의 비(碑)인 개비다. 임해진과 노리라는 마을 사잇길은 예로부터 험난했다. 개 두 마리는 서로를 잊지 못해 열심히 두 마을을 오갔는데 없던 길이 생길 정도였다. 그 길을 동네사람들도 점차 이용하게 되면서 그 고마움을 비에 담았다. 사람보다 나은 부러움이었을까? 개비리길은 아주 좁고 험난한 길을 뜻한다.

비리산이 강 방향으로 급정거한 암벽은 가파르고 청암리(임해진 쪽) 학포리(노리마을 쪽)는
수백 년간 교통 불편을 겪어 오다 1986년에야 육군야전공병대가 군사작전용으로 시공하게 되면서 창녕군 예산으로 길을 완성했다. 이른바 청학로. 강이 잘 내려다 보인다.

가파른 길은 임해진 나루터를 만들었고 남지 쪽에서 흘러오는 낙동강 물길이 비리산의 암반에 막혀 강물이 편안하다. 그 산기슭에는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린다는 소우정(消憂亭)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임해진은 옛날부터 물고기가 많이 잡혔고, 특히 웅어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횟집들이 많았는데 제방공사 때문에 마을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길은 다시 이어져 학포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공원이라 해봐야 화장실과 운동기구, 포장길이 다인 곳이다. 국도 아랫길로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져 있지만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이런 폭염에 자전거를 탈 것인가 생각하니 우리는 꽤나 독한 보행자들이다. 포장길을 따라 갈퀴나물 덩굴손들이 발목을 잡으려는 듯 양 길가에서 들어온다.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처럼 쌓이고 보랏빛 꽃들이 비단처럼 깔렸지만 덥다.

혀가 한 발쯤 나올 만할 때 쉼터 정자에 도착했다. 노인이 한 분 있었지만 우리는 대부분 마룻바닥에 몸을 눕혔다. 20km쯤 걸어왔다고 자랑하듯 예기하니 노인이 한창때 100리 정도는 예사로 걸었다고 해 그냥 꼬리를 내리고 또 걸었다. 무념무상으로 걸으니 거대한 함안보가 나온다. 사대강 개발로 지어진 처음 만나는 보다. 어도 주변에는 물속을 내려다보는 백로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보 때문에 물고기들의 생존환경도 살벌해졌다.

보를 건너 도착한 곳이 용성송씨(龍城宋氏) 문중에서 젊은 사람들의 수학을 위해 지은 정자, 광심정(廣心亭)이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돼 여러 번 고쳐 지었다고 하지만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소박하게 앉아 있고 현판 글씨체는 자유롭다. 이제 강변은 서서히 낙조로 붉어 오고 있어 모두 강변 낙조를 찍기에 바쁘다. 산길을 허덕이며 오르니 무덤가에는 할미꽃 씨앗들이 하얗게 피어나고 우강리 마을이 펼쳐진다.

곽재우 의병장이 말년을 보냈다는 낙조가 잘 보이는 언덕에 지은 망우정(忘憂亭)에 도착했다. 혈기왕성한 지략으로 나라를 구했지만 무능한 선조 때문에 자신도 화를 여러 번 입을 뻔했고 이순신의 투옥과 의병장 김덕령의 옥사를 지켜본 곽재우의 말년은 씁쓸했을 것이다. 잊고 싶은 회환 가득한 마음으로 이 정자를 지었는가?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가는 길에 저녁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 ‘걷기의 완성을 보리라’는 결심이었는지 ‘계속 고’를 외치는 덕분에 긴 둑방길을 지나 창녕군 ‘남지’라는 곳에 도착했다. 밤 9시였다. 최근 러시아를 다녀왔다는 불룩한 동무 배낭 안에서 벨루가(Beluga) 보드카와 캐비아(철갑상어알)가 나왔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누구는 자기 인생을 통틀어 5만 보를 걸은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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