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동백나무 전설과 중국의 동박새 전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기사승인 : 2020-01-29 10:01:47
  • -
  • +
  • 인쇄
울산 동백

아오모리현(靑森縣) 쓰바키산(椿山)과 아키다현(秋田縣) 노토산(能登山)산 동백 전설

동백나무 꽃은 붉은 꽃이고 오래도록 피어 일본에서도 벚꽃과는 다른 강한 힘이 있는 사랑과 열정 그리고 믿음의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동백 즉 쓰바키 춘(椿)이라는 지명은 난지성의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동백 지구와 산의 동백나무 군락은 자생 북한지로 1922년에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전설은 일본의 대표적인 동백 전설이고 한국의 동백 전설과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 그 현장은 아오모리현(靑森縣) 쓰가루군(津軽郡) 히라나이마치(平内町) 아사무시나무토마리현립자연공원(浅虫夏泊県立自然公園) 춘산(椿山: 동백산)과 아키다현(秋田縣) 노토산(能登山) 북단의 동백 자생지다. 일본의 동백나무 북한지로 1922년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자생지에 비련의 다마(玉) 전설이 전해지고 이곳에 1195년에 건립된 동백신사(椿神社)가 있다. 이 전설의 지역은 번정시대 진경번(津軽藩)과 남부번(南部藩) 경계부였음인지 기록자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들 전설을 합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남쪽 나라 에치젠 나라(加賀の国, 越前)의 청년 상인 요코미네(横峰嘉平)가 동전택(東田澤)에 장사를 왔다. 이 사람이 탄 배가 바다의 풍랑을 만나 나루에 밀려왔다. 바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청년이 이곳의 두메산골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마을 일꾼의 딸 다마(玉, 구슬)라는 예쁜 소녀를 알게 됐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장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얼마 가지 않아서 슬픈 운명이 닥쳐왔다. 상인인 이 청년은 장사배를 타고 그 고을을 멀리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달 밝은 봄날 저녁 가까이 있는 동산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미어지는 이별의 슬픔을 나눴다. 소녀는 청년의 옷깃을 잡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속삭였다.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고향은 남쪽 나라 따뜻한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다음에 오실 때는 동백나무의 열매를 꼭 갖다 주세요. 그 나무의 열매 기름으로 경도 여인들 같이 머리를 예쁘게 치장해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소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오. 많이 가져다가 당신에게 드리겠소”하고 굳은 약속을 남긴 청년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 멀리 남쪽 나라로 떠나갔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가을바람이 일고 기러기가 날기 시작했다. 소녀는 혹시나 청년에게 소식이 있을까해 매일 문 앞에서 먼 바다 쪽만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는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손을 꼽아 헤아려 보니 떠난 지 어느새 만 1년이 지나고 약속한 2년이 지나도 젊은이는 오지 않았다. 


봄날의 달빛은 헤어지던 그 날과 다름없이 비쳐오건만 한 번 떠나간 임은 소식조차 없는 것이었다. 소녀는 지나간 날들의 회포를 가슴 속에 보듬고, 그 동산을 헤매면서 돌아오지 않는 청년을 그리워 하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아오모리 쓰바키산). 


약속한 2년이 지나도 젊은이는 오지 않았다. 그토록 굳게 맹세했는데 젊은이가 오지 않는 것은 배가 난파해 죽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애타게 기다린 3년째 어느 날, 딸은 슬픈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이키다 도야마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죽은 줄 모르는 청년은 그리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산골로 소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청년의 부푼 가슴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된 청년은 미친 듯이 소녀의 무덤 앞으로 달려가 땅을 치고 통곡했다. 그러나 한 번 간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청년은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면서 소녀를 위해 갖고 온 동백나무 씨를 무덤 주위에 뿌리고 다시 멀리 떠나 버렸다. 그 후 청년이 뿌린 동백나무 씨는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서 마침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아오모리지방).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산 전체가 동백나무 꽃으로 불타는 듯이 빨갛게 덮였다. 죽은 소녀의 넋이 한이 돼 그 한을 푸는 듯 봄이면 동백나무 꽃으로 동산을 붉게 물들였다(아오모리 쓰바키산). 


젊은이는 슬픔에 어찌 할지 몰랐다. 젊은이는 마을의 바위산에 올라가 두 사람의 약속이었던 동백 씨를 하나하나 심었다. 봄이 되자 씨에서 싹이 나 자랐다. 3년 뒤 바위산에 빨갛고 예쁜 꽃이 피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동백나무 꽃이 피는 바위를 동백산이라고 불렀다. 동백꽃은 긴 겨울바람에 피기 시작해 4월경 장관을 이룬다(이키다 도야마산).

 

▲ 일본 아오모리현 아사무시나무토마리현립자연공원 쓰바키산 동백꽃. ⓒ아오모리현 관광정보 사이트


중국의 동백꽃 전설

중국의 동백꽃 전설은 매우 희귀해 국내에 번역된 예를 찾지 못했다. 이 전설은 중국의 백도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동백나무(山茶花) 전설이다. 필자가 전설을 찾고 중국 동포 한정춘 작가가 한글로 번역했다. 한 작가가 번역한 평양식 문장을 처음 대하는 독자들이 읽기 어려울 것 같아 필자가 다시 서울식으로 옮겼다.


아주 먼 옛날 어느 아리따운 시골 처녀가 앓아 누워 있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약초를 캐려고 신비한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처녀는 골짜기의 기묘한 풍광에 취했다. 많은 약초를 캐다보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렸다.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면 계곡에 내려가 흘러내리는 물을 마셔가며 약초를 캐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처녀는 이상하게도 자기 배가 불룩하게 불어나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의 이웃들은 그녀가 세상에서 하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수군거렸다. 너무도 분이 치밀어 오른 처녀의 아버지는 딸을 집에서 쫓아냈다. 집을 떠나가는 딸에게 어머니는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넘겨줬다. “넌 어디로 가든 간에 이것을 몸에다 챙기고 다녀라. 그래야 우리는 언젠가 꼭 만나게 될 거다.” 


다른 데로 갈 곳이 없게 된 처녀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산곡으로 다시 돌아와 생룡동굴에 거처하게 됐다. 기일이 지나가면서 산곡에는 아름다운 동백꽃이 피어 나 오색찬란한 빛을 뿜고 귀중한 보물인양 마치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부르는 듯했다. 하지만 처녀는 자기가 가는 곳마다 왜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어머니가 넘겨준 주머니를 헤쳐 봤다. 그 속에는 동백꽃 씨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진 처녀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처녀는 어머니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자기를 찾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때 처녀의 어머니는 신비한 산곡으로 찾아왔다. 어머니는 여러 곳에 동백꽃이 자라나 피어난 것을 보게 됐다. “딸애야 너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냐? 이 어미는 밤낮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 어머니의 외침소리는 신비한 산곡에 울려 퍼지면서 메아리쳤다. 그때 처녀는 작은 용 두 마리를 낳은 후 세 번 째 용을 낳고 있었다. 어머니의 외침소리가 산곡에 메아리치자 그 소리에 놀란 작은 용 두 마리는 급하게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자 온 대지가 마구 흔들리면서 어두워지더니 대지에 큰 비가 억수로 내리 부었다. 너무 놀란 처녀는 세 번째로 낳는 작은 용을 절반만 낳고는 그만 신비한 산곡에서 사라졌다. 그 뒤에 이 산곡에는 생용동굴이 생겨났다.


중국의 동박새 전설

이 동박새 전설은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전설이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유래한 전설인지 잘 모른다. 전설의 내용과 주제로 봐 우리나라 전설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 전설을 중국의 전설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 텃새 중 동백나무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새가 있다. 옛날 중국의 어느 나라에 포악한 왕이 살고 있었는데, 이 왕에게는 자리를 몰려줄 후손이 없었으므로 자신이 죽으면 동생의 두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돼 있었다. 욕심 많은 왕은 그것이 싫어 동생의 두 아들을 죽일 궁리를 했다. 동생은 이를 알아차려 자신의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대신 아들을 닮은 두 소년을 데려다 놓았다. 이것마저 눈치 챈 왕은, 멀리 보낸 동생의 아들 둘을 잡아다가 왕자가 아니니 동생에게 직접 죽이라고 명령했다. 차마 자신의 아들을 죽이지 못한 동생은 스스로 자결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갔고, 두 아들은 새로 변해 날아갔다고 한다. 동생은 죽어서 동백나무로 변했다. 이 나무가 크게 자라자 날아갔던 두 마리 새가 다시 내려와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새가 바로 동박새라는 전설이다.

 

▲ 동박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박새는 동백나무 꽃의 꿀을 좋아해서 나무 주변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동백꽃은 꽃을 피우는 시기에 꽃가루를 옮겨줄 매개자들이 없거나 적어 꽃가루받이에 어려움이 많다. 식물 수분의 매개체로 벌과 나비 등 다양한 생물들이 식물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지만, 동백나무는 곤충들이 활동하기 어렵거나 할 수 없는 겨울철에서 이른 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겨울에도 활동하는 새들이 꽃가루받이를 담당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새가 동박새다. 이런 환경적 생태를 유지하는 식물을 조매화라고 한다.


동박새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의 중부, 동부, 남부, 인도차이나반도의 북부와 동부에 분포한다. 남해와 서해의 섬 지방, 해안지대에서 흔히 번식하는 텃새이며, 최근 경기에서도 번식이 확인됐다. 북한에서도 발견된 보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에 분포하는 것으로 보도됐으나 의문시되고 있는 신미도 동백나무 자생지를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동박새는 또한 각지를 흔하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한 산림이나 인가 주변에 서식한다. 여름철에는 암수가 함께 생활하고, 그 밖의 계절에는 무리지어 생활을 한다. 특히 동백꽃의 꿀을 좋아해 겨울과 이른 봄철 동백꽃의 개화기에는 동백나무숲에 많은 무리가 모여든다.


동박새 기본종의 학명은 Zosterops japonicus다. 이종은 분포 지역에 따라 형질에 차이가 인정돼 9아종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동박새는 Z. japonicus japonicus다. 크기는 약 11~12cm정도로 몸의 윗면은 녹색, 날개와 꽁지는 녹색을 띤 갈색, 턱밑과 멱 및 아래꽁지덮깃은 노란색 또는 녹색을 띤 노란색이며, 가슴 아랫면은 흰색이다. 부리와 다리는 검고 흰색 눈둘레가 돋보이며, 둥지는 작은 나무의 가지 사이에 다량의 이끼류, 새의 깃털, 나무껍질 등을 거미줄로 엮어서 만든다. 5∼6월에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아 암수 함께 품고 기르며, 알을 품는 기간은 약 12일 정도로 2주가량의 새끼 기르기 기간이 지나면 둥지를 떠난다. 먹이는 거미나 곤충 같은 동물성 먹이와 과일도 먹지만 주로 꽃의 꿀을 따먹는다.


한국에는 Z. japonicus japonicus 1아종이 서식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매우 드물게 작은동박새(Z. japonicus simplex)가 도래하는 것이 확인됐다. 작은동박새는 중국 동부, 중부, 남서부, 남부, 대만에서 서식하며, 2006년 10월 23일 전남 신안 홍도에서 처음 관찰됐다. 봄철에는 4월 하순에서 5월 하순까지, 가을철에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 사이에 서해 먼 도서를 불규칙하게 통과한다. 크기가 작고, 부리와 부척이 짧다. 검은색 눈선 위에 노란색이 비교적 명확하며, 노란색이 이마까지 약하게 연결된다. 동박새(Z. japonicus japonicus)와 달리 옆구리에 갈색 무늬가 전혀 없으며, 배와 옆구리 부분이 균일한 때 묻은 듯한 흰색이다. 가슴 옆에 엷은 회색 기운이 있다. 아랫부리의 검은 부분이 동박새보다 뚜렷하고 폭 넓다. 배 중앙 부분에 노란색 줄무늬가 없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