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처럼, 청령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20-09-09 09: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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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 청령역 전경

 

▲ 청령역 측면 전경. 무수한 풀숲이 가리고 있다.

청령역은 풀숲에 가려진 지붕과 역명판만 가진 단출한 간이역이다. 존재감 없는 오래된 무덤처럼 모든 이에게 잊힌 듯한 모습, 어느 날 이 역을 찾았을 때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 빛바랜 청령역명판


“사람이 언제 죽는 줄 알아? 총이 심장을 뚫었을 때? 아니 누군가에게 잊혀질 때야.” 영화 <코코>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는 인디언들의 사후관에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죽은 자들이 우리의 제삿날처럼 ‘망자의 날’을 통해 일 년에 한번 이승에 온다는 설정이다. 또, 저승에서도 죽음을 맞는데 이곳에서의 수명은 살아 있는 자의 기억이 결정한다. 이승에서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저승의 망자는 바람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한순간에 소멸한다. 이는 진정한 죽음이란 ‘잊혀짐’이란 걸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망개 열매를 따먹어도 이승이 좋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한다. 고당명경 속 백발노인이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유는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과 달리 우리네 인생이 한 번뿐인 덧없는 길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활기찬 현실이 낙원이지 한번 가고 나서는 누구도 소식이 없는 저승은 그저 불안의 세계일뿐이다. 

 

▲ 나원역 방향으로 바라본 청령역

살다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 특별하다 믿었던 인연을 상실할 때가 있다. 뜻밖의 이별이 불러오는 충격파는 생각보다 크다. 평온한 일상을 깨는 이별이 개인에게는 너무나 서럽고 큰일이지만,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주고 손잡아 주길 기대하지만, 역사에 기록되는 큰 사건이나 큰 인물이 아닌 다음에야 세상은 그것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영구차가 옆에 정차 중임에도 멈출 줄 모르는 오픈카의 댄스곡처럼 무심히 흐르는 일상은 더없이 섭섭하다. 


이 같은 상실의 고통을 알기 때문일까? 우리는 자신과 얽힌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정도가 심하면 그 집착성은 병증으로까지 도져 가족끼리 연인끼리 심하게 간섭하고 종국에는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모든 이별 노래에 ‘나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넣고 어떤 식으로든 곁에 머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청령리 앞 형산강 풍경

 

▲ 청령리의 한가로운 풍경. 신라 개척 당시 대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청령(靑令)이 됐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실의 고통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말처럼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는 ‘망각’이란 장치로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도록 우리를 설계했다. 모든 이별은 순식간이며 죽을 것 같은 그 어떤 상실의 고통도 망각이라는 지우개가 서서히 지워버린다.


필자는 학창시절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서부터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며 공상 할 때가 많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절절히 그리워하는 이유는 우주 탄생의 근원과 이어져 있지 아닐까하는 생각도 그 중에 하나였다. 허블 망원경에 의해 우리는 모든 동일 지점의 우주가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그 속도는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우주가 약 150억 년 전, 어떤 초원자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팽창중이란 가설, 빅뱅이론을 설정하는 단초가 된다. 또, 우리의 인체는 우주처럼 수소가 가장 많으며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나 인체를 구성하는 원소가 같다. 이는 우리의 인체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는 소우주라는 말을 뒷받침한다.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찾고 그리워하고 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우주 폭발의 순간, 그러니까 초원자에서 흩어진 나의 조각들을 찾고자 하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 무수한 밤하늘의 별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점점 더 멀어지는 나의 조각을 잊지 않기 위한 방편은 아닐는지. 정호승 시인은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작품에서 ‘그리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동해선의 복선화가 완료되면 이제 영원히 사라질 청령역의 역명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이 동네 사람들을 배웅하고 또 마중했을 역, 풀은 역사를 덮고 조금 있음 이마저도 사라질 텐데 이곳에서 기차를 탔을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그들은 청령역을 얼마나 기억할까?
▲ 여객취급 중지 안내판이 붙은 역명판

청령역-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경주시 안강읍 청령리, 나원역과 사방역 사이에 있다. 1967년 5월 27일 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67년 9월 1일 을종승차권대매소로 지정, 1988년 4월 10일 무배치간이역으로 변경, 2007년 여객 취급을 중단하고 폐역 상태다.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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