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청명한 봄날, 신불산의 일몰을 만나다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20-05-06 09: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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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산행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현관을 나설 때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면 동시에 허전한 느낌이 든다. 마스크를 잊어버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공동이용시설 입구에서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졌으며 손을 씻지 않으면 얼굴을 만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처럼 코로나19에 과학적, 의학적으로 대비하게 됐으며, 집에 움츠리고 있기보단 일상을 살아가게 됐다. 


농촌에서 체험객과 함께하는 숲체험, 농사체험 등의 업무는 여전히 멈춰져 있었지만, 밭에 가서 일을 하고 동네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다니는 일상이 서서히 코로나19 이전처럼 돌아왔다. 봄볕이 따스한 어느 날, 벗과 함께 산행을 나섰다. 이런 일상의 소중함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엄격히 지켜보지 않았다면 몰랐으리라. 


간월재로 향하기 위해 간월산장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했다. 산으로 드니 초록이 완연하다. 매년 봄 만나는 식물의 생명력은 항상 경이롭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을 만나는 듯하다. 볕이 반짝이고 하늘은 청명하며, 나뭇잎이 사락거린다. 실로 미세먼지, 황사 걱정 없는 봄날이 얼마만인가. 이 맑은 공기가 이제는 당연하지 않음을 안다. 맑은 공기를 그득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 산 초입에 초록이 무성하다.
▲ 초입에 핀 철쭉(연달래)


코로나19로 멈춰진 사람들 덕에, 동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인도 북부에서는 흐린 하늘 때문에 보이지 않던 히말라야가 30년 만에 보인다고 한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뿌연 운하는 맑아져 물고기 떼가 노니는 것이 보인다고도 하니, 참으로 역설이다. 혹자는 코로나가 인간에게 바이러스지만, 지구에겐 백신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멈춰지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니, 지구가 금세 제 모습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 간월재로 향하는 임도에서 보면 산 중턱에 퐁퐁 피어난 산벚이 보인다.


반성해야할 소식이지만 한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지구의 자정능력이 이번 기회에 증명됐으니, 사람들만 잘하면 지구는 정상으로 돌아올 준비가 돼있다는 반증이다. 이번 위기를 반성과 개선의 기회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 보리라, 가슴 깊이 다짐하고 새긴다. 


정오의 봄볕이 만만찮다. 그늘 속을 걷고 있는데도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른다.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보온병에 담아온 얼음커피를 꺼내 각자의 잔에 따랐다. 무겁고 조금 귀찮아도 산행 중 이런 쉼이 소중하다. 스테인리스 컵 안의 얼음이 짤랑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얼음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어우러짐이 좋다. 

 

▲ 정오의 봄볕이 따스하고 하늘이 청명하다.
▲ 산벚꽃과 청명한 봄 하늘


상큼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걷는다.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볍다. 산하에는 초록이 완연했는데 걸어 올라갈수록 연두의 신록 사이로 산벚이 퐁퐁 피어나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높은 산에 오면 그 변화를 하루 만에 만날 수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두 시간 남짓, 간월재에 도착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고산준봉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산정이 몇이나 될까. 일상에서 잘 먹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이곳에 오면 부러 사먹는다. 흠뻑 땀을 흘리고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물면 그 달콤함이 온몸으로 흡수되는 듯하다. 


컵라면도 하나 챙겨 밖으로 나와 경치가 잘 보이는 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평일이라 간월재가 한산하다. 벗과 함께 가방에서 챙겨온 수저를 꺼낸다. 컵라면을 먹어 만드는 일회용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을 좀 줄여볼 요량으로 일회용나무젓가락 대신 수저를 챙겼다. 

 

▲ 간월재 억새평원
▲ 산하는 초록이 무성해도 산정 나무는 가지가 앙상하다


바람이 불어 축축한 땀을 날려준다. 따스한 봄볕 덕에 바람에는 찬 기운이 없다. 산우와 바닥에 드러누워 볕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잘 먹고 잘 쉬니 몸이 가볍다. 오랜만에 신불산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즉흥적인 우리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5시지만, 배낭에는 항시 비상용으로 헤드램프가 있다. 

 

▲ 간월재와 간월산 그 너머로 가지산이 보인다.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향한다. 길 위에서 만난 산객이 우리에게 어쩌려고 이 늦은 시각에 여자 둘이 산정을 오르느냐 묻는다. 하산길이 어두워질 것을 걱정해 준다. 빙그레 웃으며 “그 어둠을 좋아해요”라고 답한다. 어둠 속 낯선 초행길 산행은 위험하겠지만 산우와 내게는 익숙한 길이니 두려움은 없다.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잘 보이지 않아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하는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이 스쳐간다. 

 

▲ 신불산정으로 오르는 길
▲ 해질녘, 진달래가 핀 길 위에서


생각은 생각대로 그냥 둔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신불산정으로 향하는 길 위의 조망이 좋다. 봄볕이 가로로 부서지며 간월재를 비춘다. 거기 앉아 해넘이를 보고가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온전히 눈으로 마음으로 감상한다. 우리는 하염없이 우두커니 앉았다. 하늘이 어스름해지고 나서야 벗이 입을 뗀다. “갈까?”하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배낭을 업는다. 간월재로 다시 내려 갈 때까지 우리는 말없이 조용히 그저 걸었다. 자연의 경이를 무엇으로 표현하리.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접어 두고, 이 경이를 누구든 경험해보길 감히 추천 드린다. 

 

▲ 길 위에서 만난 해넘이. 천황산 위로 해가 넘어갈 준비를 한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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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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