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들어 줍니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11-28 09: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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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지니가 소원 세 가지를 말해 보란다. 얼씨구나 이게 왠 떡인가. 가족의 건강, 화목함, 웰다잉을 말했다. 지니가 웰다잉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사정이 생겼다며 소원 한 가지를 빼보란다. 가족의 건강을 빼겠다고 하자 지니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잘 죽고 싶다 해놓고 가족의 건강부터 뺀다며 말이다. 이유를 묻길래 건강해도 화목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고 건강은 평상시에 챙기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니가 이유를 물어 보길 잘했다며 이해가 된단다. 그러더니 잔뜩 미안해하며 소원 한 가지를 또 빼란다. 이번엔 고르기에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화목함을 빼겠다고 했다. 웰다잉을 끝까지 남기자 지니가 나더러 혹시 염세주의냐고 묻는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웰다잉은 좀 다르다.


웰다잉이 내 소원이 된 것은 최근에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의 영향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만큼 죽음에도 가까워지고 있다. 잘 죽고 싶다는 것은 잘 살고 싶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고로 나는 잘 살아감으로써 잘 죽고 싶다. 그 근거로 죽음을 다루는 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 감금됐고 가족들을 잃었다. 그는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키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책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문가적 고민 끝에 ‘로고테라피’를 만든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는데 바로 일, 사랑, 고난이다. 중요도 순으로 따지자면 뒤로 갈수록 커진다.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도망갈 수 없을 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격하게 공감하는 바다.


지니가 다시 나타났다. 옆에 있던 내 친구에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란다. 친구는 건강, 사랑, 돈을 말했다. 이번에도 차례로 지우라 하더니 마지막으로 돈이 남았다. 친구가 말하길,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는데 돈 때문에 자기를 떠난 것이 마음에 맺혔단다. 친구는 돈이 있다면 건강도 사랑도 다 가질 수 있다며 돈을 남겨놓았다. 지금도 자신이 돈을 버는 이유는 언젠가 그 남자를 마주치게 되면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니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며 공감해줬다.


이번에는 저 뒤에 앉아있던 친구에게 지니가 다가가 소원을 물었다. 친구의 세 가지 소원은 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소원도 있었다. 하나씩 지우고 끝에 남은 소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젊은 날에는 나만 알고 살았지 주위를 살피지 못했다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싶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철없이 굴었던 행동들이 후회스럽고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몰랐단다.


지니가 몇몇 사람들에게 더 물어보았다. 세 가지 소원 중에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들이 패널로 나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진행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돈은 많지만 바쁜 부모님과 돈은 없지만 화목한 집 중에 뭘 택하겠냐고 말이다. 한 어린이가 돈 많은 부모님을 택했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화목한 게 소용이 없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행자로 나온 연예인들도 자녀를 둔 부모였는데 모두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방송 전체를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은 돈이 없어도 화목한 집을 택했을 수도 있지만 지니가 말하길, 나이가 어릴수록 특히 청소년들은 소원이 돈이라고 대부분 말한단다.


잠깐 눈을 감고 상상 속의 지니를 떠올려보자. 지니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뭐라고 답하겠는가? 세가지 소원 중에 무슨 소원이 끝까지 남겠는가?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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