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못잊을 그날

김매자 울산병원 내과의사, 유니힐 통일토론모임 대표 / 기사승인 : 2020-05-14 09: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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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1969년 5월 6일 오후 8시.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인 5월. 그 아름다운 신록의 5윌 어느 날을 56년간 잊지 못하는 74세 여인의 한 맺힌 사연을 듣고 만감이 교차한다.


사회의 기본 구성원인 남과 여. 그러나 남성과 대등해야 할 여성들이 그간 여성에 대한 불평등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에 의한 성폭력 성폭행, 성폭행도 모자라 폭행 후 잔인한 살인까지 너무도 억울한 여성사의 면면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조금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오로지 남성 하나 잘못 만난 이유로 죽어 나간 여성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데이트 폭력을 보면, 마치 여성이 자기의 전유물인데 순간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때려죽이는 일까지 생긴다.


최근 n번방 사건을 보면 지금이 무슨 중세시대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여성의 성상품화 진화가 은밀한 온라인을 매개로 너무도 비상식과 몰염치로 점철돼 우리 같은 70대는 사실 그게 무언지 잘 이해하기도 힘들다. 다만 비슷한 사건이 미국이나 유럽에선 무기징역이나 20년 정도의 양형이라는데 우리나라는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거나 때론 말도 안 되는 무혐의 석방이 이뤄진다는 건 안다. 언제까지 남성의 무자비한 폭력에 여성이 무방비로 당해야만 하는지 정말 강력한 법제화가 절실하다 하겠다.


56년 전 5월 6일 저녁 8시 18세의 한 처녀는 집 앞에서 갑자기 21세 생면부지 남성에 의해 강제 추행당한다. 아무리 저항해도 온몸을 제압하며 입안으로 세차게 들어오는 상대의 혀를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무시무시한 죽음과도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이 가여운 처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징그러운 괴물 같은 상대 혀를 깨물어 버리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성폭행당하고 목 졸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나마 그 정도로라도 방어를 했다니 다행이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판과정을 보면서 56년 전 우리 사회 남성들의 잘못된 여성관을 엿볼 수 있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일반 국민은 물론 검·판사들까지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피해 여성이 남성의 혀를 겨우 1.5센티미터 잘랐다는 이유로 아무리 정당방위였다고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불구속이고 오히려 이 피해자가 6개월 간 구속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정당방위 인정은커녕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된다. 혀 1.5센티 때문에 중상해죄가 적용돼 무려 10개월 징역형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는다. 그 파렴치범에겐 강간미수도 인정되지 않았다. 자유의 몸인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았으며 겨우 6개월 징역형에 2년 집행유예 언도였다. 그 6개월형의 이유도 그 남성이 칼 들고 이 피해 여성 집에 들어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일이 특수주거침입죄와 특수협박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란다. 상대의 혀가 겨우 1.5센티미터 잘렸는데도 이 피해자가 가해자 남성을 ‘평생 말 못 하는 불구로 만들었다’는 판사의 판결문은 법과대학 형사법 교과서에 판례로도 나온다는데 과연 법조인 후보생들은 옳은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56년 전 얘기를 가정의 달에 상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남북이 하나 되기 전 남북한 남녀 성차별에 대한 실상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다. 폐쇄사회 북한, 탈북자의 80퍼센트에 달하는 여성들. 탈북 여성들은 탈북 후 위장결혼식이라도 해야 중국에서 강제추방을 안 당한다고 한다. 브로커에게 줄 700만 원 정도의 자금이 없으면 만들어질 때까지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때론 이혼당하면 다른 남자와 다시 위장결혼하는데 세 번까지 위장결혼해 가며 제3국으로 탈출을 도모한 경우도 들은 바 있다. 이 여인은 임신한 만삭배를 남편에게 발로 차여도 아무 말 못하며 붙어 있어야 했다니 가슴이 미어진다. 내 말 안 들으면 다시 북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남자들의 위협 속에서 노예처럼 중국에서 살아가는 거의 10만 정도의 탈북여성들 인권에 우린 눈 감으면 안 된다.


대부분 여성들이 목숨 걸고 탈북하는 이유는 탈북 후 돈 벌어 북에 남은 자녀들을 탈북시키기 위해서라는 얘기는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도 그랬다. 할아버진 뒷짐 지고 어흠 소리 내며 어슬렁어슬렁 마실을 다녔다. 때론 사랑방에 손님을 맞아 장기나 바둑을 두시며 소일했다. 뼈 빠지게 농사도 짓고 부엌일 해가며 애까지 보는 건 오로지 여성인 할머니들 몫이었다. 물론 우리 어머니 세대도 비슷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를 보자.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시에서, 열무 30단 머리에 이고 장사 나가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강인함과 그게 걱정거리인 어린 자식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이런 훌륭한 여성들이 언제까지 남성의 폭력성에 무방비로 당해야만 하는지 정말 강력한 법제화가 절실하다 하겠다. 한반도에 새로운 통일국가가 세워지려면 영토영역이 하나로 되거나 경제가 하나의 블록으로 운영되는 것 외에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인권이다. 남북한은 여성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강력한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남북여성들이 서로 모여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며 법제화를 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남쪽뿐 아니라 북쪽까지 인권이 확립되고 남북 공히 성차별이 없어야만 훌륭한 통일 대한민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모두 가정의 달을 맞이해 이 문제의 법제화와 강력한 처벌조항을 심사숙고해 보자.


김매자 울산병원 내과의사, 유니힐 통일토론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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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자 울산병원 내과의사, 유니힐 통일토론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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