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 기사승인 : 2019-09-04 09: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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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제임스 S. 게일 저/최재형 역/책비

 

우리의 마지막 왕조, 조선. 그 뒷모습은 어땠을까? 한 왕조의 멸망은 당대의 어두운 면모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조선도 역시 말기로 갈수록 계층 사회의 경직성, 정치인들의 무능력, 그리고 왕조의 폐쇄성이 두드러졌다. 우리는 많은 기록들로 이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그 시대를 살았던 기록되지 않은 일반 서민들의 모습이다. 기록은 대부분 가진 자나 배운 자들의 전유물이다. 가지지도 배우지도 못한 자들은 기록에서마저 소외된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S. 게일의 기록들은 상당한 의미로 와 닿는다. 


서양에서 온 한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서민들의 모습이 낯선 듯 낯익은 듯 다가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상놈’이라고 불리는 상민이다. 게일은 조선의 상놈을 조선의 힘이라고 말한다. 게일이 묘사한 상놈은 다음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운송은 상놈의 어깨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짐을 진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처럼 보였다. 이 상놈들의 고집은 여간해서는 꺾이지 않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폭력적으로 대해도 그들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그들을 움직이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 고집스런 상놈들은 절대로 혼자 일하는 법이 없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톱질을 하려면 반드시 반대쪽에 한 사람이 더 있어야 했다. 삽을 쓸 때도 삽에 새끼줄을 묶어 여러 명이서 삽질을 했다. 또한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자신들의 풍습을 따르려는 상놈의 곧은 마음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그들에겐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완전히 돈에 의해서만 종속되는 관계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어떤가,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상놈의 DNA가 흐른다. 이 책을 읽은 70대의 노모는 ‘어릴 때 살던 모습’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책을 쓴 제임스 S. 게일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언어 천재이자 진정한 한국학자라고 평가 받는다. 1888년 25세에 선교사로 조선에 발을 디딘 후, 7년 만에 존 번연(John Bunyan)의 책을 <천로역정>이란 제목으로 번역할 정도로 우리말에 통달했고, 10년째 되는 1898년에는 라는 제목으로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그밖에도 그는 최초로 <한영사전>을 출간했고, 춘향전, 심청전, 구운몽 등을 영어로 번역해 서양 세계에 조선을 소개했다. 이는 그가 다른 서양인 선교사들처럼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조선인들과 어울려 같이 공부하며, 부딪히며 섞여 살았던 결과였다. 글에 나오는 곽씨, 백씨 노인, 남씨 등을 바라보는 게일의 시선에는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온다. 망국의 황태자 의화군을 묘사하는 대목에는 무한한 경외감이 내보인다. 그 덕분에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독립을 외쳤던 당시의 상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게일의 책이 당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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