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로 읽는 열하일기

문영 시인 / 기사승인 : 2020-03-11 09:50:03
  • -
  • +
  • 인쇄
연암 박지원 열하 답방 240년(경자년) 기념

연재를 시작하면서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그의 나이 마흔네 살 때인 1780년(정조 4) 청나라 건륭제 칠순 잔치 사절단 일행으로 다녀와서 남긴 기행문이다. 올해는 연암이 열하를 답방한 해로부터 240년이 되고, 천간(天干)의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지지(地支)의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를 예순 가지로 배열해 놓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헤아려 1780년(경자)으로부터 네 번째가 되는 경자년이다.


연암의 열하 답방으로부터 240년 후인 2020년(경자)에 다시 그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여정기를 마련하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런 희망은 열린 세계에 대한 열망과 고난을, 변화를 통해 개혁하고자 한 연암의 진보성과 통한다. 삶의 변화와 개혁은 앞선 문명과 문화를 알고 보고자 하는 연암의 열망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와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처럼 양면적이면서 통합적이다. 마치 만원 지폐 전면에 일월오봉도와 용비어천가, 후면에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이 세종대왕과 연관돼 하나이듯이. 앎이 지식의 영역이라면, 본다는 것은 경험의 영역이다. <열하일기>를 읽는다는 것이 지식을 쌓는 일이라면, 보고 듣는 위주의 기행은 몸으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이 ‘발로 읽는 열하일기’다.


‘다시 발로 읽는 열하일기’는 ‘발로 읽는 열하일기’의 후속편으로 전편에서 빠진 부분을 여정 위주로 기행하면서 이야기하듯 엮어나가고자 한다. 고난 속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꿈꾸며 희망을 잃지 않는 독자들과 함께 읽고 느끼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 연암 박지원


프롤로그–열하일기와 연암
새로운 이상과 패러다임을 위하여


조선 한문학사 최고의 산문 작가. 조선 후기의 대문호. 한국의 셰익스피어. 술과 친구를 좋아한 통 큰 남자. 유머의 천재. 근대로부터 현재로 오면 올수록 연암에 대한 평은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그의 책은 대형우량주이며 시대에 따라 용량을 넓혀 나갈 수 있는 버전이 되고 있다.

연암에 대한 흥미롭고도 유쾌한 평들.


김명호 교수: “오늘날 연암의 문학과 사상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널리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연암은 남과 북에서 아울러 높이 평가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요 사상가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혈조 교수: “우리의 한문학이 연암 박지원에 이르러서 망했다는 말을 나는 원로 한학자들에게 자주 들은 바 있다. 연암 때문에 한문학이 망했다는 말은 대체로 무슨 뜻인가. 연암의 한문학 작품이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연암 이후에는 그러한 수준의 작품이 더는 나올 수 없으리라는 뜻을 역설적으로 찬탄한 표현이리라. 곧 연암 문학은 우리 문학의 역사상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박희병 교수: “영국에서 셰익스피어가, 독일에서 괴테가, 중국에서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이다.” “한갓 문장만 신품(神品)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그가 대문호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민 교수: “연암의 글은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老莊)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儒者)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고미숙(고전 평론가): “연암에게 있어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길 위에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길을 떠나는 ‘노마드’(유목민)였던 것.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유쾌하게 가로지르면서 항상 예기치 않은 창조적 신분들을 창안해 내는 존재, 노마드! ‘열하일기’는 이 노마드의 유쾌한 유목일지이다. ‘열하일기’가 18세기에 갇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도 삶과 우주에 대한 눈부신 비전을 던져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노자(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이 책은 유머의 보고(寶庫)다. 웃음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상대화시키기도 하고 더 친근하게 만든다. 이 책은 따뜻한 유머를 잃지 않고 냉정하면서도 호의에 찬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사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귀한 교과서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을 보다 많이 읽어 진정한 “쿨한 삶”이란 뭔지 알게 됐으면 좋겠다.”


최양희(호주, 번역가): “고전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세계 명작에 들어갈 만하다.”

그러나 이런 호평을 받는 연암도 젊은 시절 우울증에 시달렸고 부친의 장지 문제로 남의 장래를 막아버린 데 대한 자책(물론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을 느껴 과거를 폐한 사람이었다. 출세와 성공을 보장받는 시험(감시에서 수석을 하고서도)을 포기하고, 정조 임금까지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회시(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2차로 보는 시험)에서 답지를 내지 않거나 거부해버린다. 이후로 연암은 아무런 직책도, 일자리도 없이 백수의 삶을 견디며 중년을 넘어선다. 술과 친구와 담론을 좋아하고 상하층 계층 구분 없이 소통하고자 했던, 고난의 인생을 스스로 택한 이가 연암이었다. 능력과 실력이 있음에도 불의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이 ‘자발적인 백수’의 삶은 이 시기 고난 속에서 꽃을 피운다. 그것은 연암이 백탑(원각사 십층 석탑, 종로구 탑골 공원) 부근으로 이사하면서 형성된 ‘북학파’의 운동이었다. 연암을 중심으로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등의 실학자들은 새로운 학풍과 사상을 주창한다. 이들이 주장한 실학은 ‘이용후생학파’로 상공업과 생산 기구, 기술 등을 지표로 했기에 중상학파라고 하며, 개혁의 모델을 청(淸)의 문물에 두고 있어서 ‘북학파’라고 불린다. 이 시기 연암은 끼니를 거르는 등 곤궁한 생활을 겪으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학론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로 현실을 가로질러 간다. 그러다가 당시 집권 세력자인 홍국영의 위협을 피하고자 황해도 금천군에 있는 연암골로 은둔해버린다. 연암이 서울로 돌아온 것은 그의 나이 마흔네 살(1780년) 때다. 이해 오월 팔촌 형 정사 박명원을 따라 북경 사신단 일행으로 중국으로 간다. 그런데 당시 청의 황제는 열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떠나는 고난과 행운이 주어진다. 그럼으로써 <열하일기>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됐다. <열하일기>가 불러일으킨 당시 최대의 사건은 영조 임금에 의해, ‘문체반정’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책이 당대의 금서이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연암은 <열하일기> 저술 후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관직에 나아간다. 그의 나이 쉰이 넘어서다. 이런 관직도 1801년(65세)에 양양부사를 마지막으로 그만뒀다. 연암은 1805년(69세) 가회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묘지는 북한 땅인 개성 동대문 밖 황토고개 남쪽 기슭에 있다.
 

▲ <열하일기> 원문



열하일기의 여정 구간

<열하일기>는 전체 26편으로 7편이 여정 구간별로 서술돼 있고, 나머지 19편은 여러 가지 견문기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정의 내용은 조선 사절단이 압록강을 건넌 6월 24일부터 열하를 거쳐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 8월 20일까지 56일간의 기록이다.
 

▲ 출전: 열하일기-열린 마음으로 드넓은 세계를 보라(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 휴머니스트)

※ 여정의 구간별 날짜(음력)와 주요 통과 지역(지명)
1. ‘도강록 渡江錄’은 압록강(義州)에서 십리하(十里河)까지로 압록강을 건너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총 15일 걸렸다. 주요 통과지역은 압록강, 구련성, 책문(柵門), 봉성(鳳城), 통원보(通遠堡), 청석령(靑石嶺), 냉정(冷井), 요양(遼陽) 등
2. ‘성경잡지 盛京雜識’는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이며 7월 9일부터 7월 14일간 총 6일이 걸렸다. 주요 통과지역은 심양(沈陽), 신민(新民), 일판문(一板門) 등
3. ‘일신수필 馹汛隨筆’은 소흑산(小黑山)에서 산해관(山海關)까지이며 7월 15일부터 7월 23일까지로 총 9일 걸렸다. 주요 통과지역은 북진묘(北鎭廟), 송산(松山)·행산(杏山), 고교보(高橋堡), 영원성(寧遠城), 산해관, 강녀묘(姜女廟) 등
4. ‘관내정사 關內程史’는 산해관(山海關)에서 북경(北京)까지이며 7월 24일부터 8월 1일까지로 총 8일이 걸렸다. 주요 통과지역은 영평(永平), 옥전(玉田), 계주(薊州), 통주(通州) 등
5. ‘막북행정록 漠北行程錄’은 북경에서 열하까지이며 8월 5일부터 8월 9일까지로 총 5일이 걸렸다. 주요 통과지역은 밀운(密雲), 고북구(古北口) 등
6. ‘태학유관록 太學留館錄’은 열하에서 머무는 동안이며 8월 9일부터 8월 14일까지로 열하에 머무른 6일간이다.
7. ‘환연도중록 還燕道中錄’은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동안이며 8월 15일부터 8월 20일까지로 총 6일이 걸렸다.

 

문영(文英) 시인

 

▲ 열하표지석 앞에 선 문영 시인

 

[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영남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공부하면서 3차에 걸쳐 기행과 답사를 했다. 30여 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글 읽기에 몰두하면서 울산 지역도서관에서 <열하일기>와 관련해 기행 답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1988년 <심상>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시집 <그리운 화도> <달집> <소금의 날> <바다, 모른다고 한다>와 비평집 <변방의 수사학>을 발간했다. 울산문학상, 창릉문학상, 랑제문화상(예술), 춘포문화상(교육)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오영수문학관 문예창작(시) 지도교수로 있다. ]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문영 시인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