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어릴 적 친구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11-21 09: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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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하루가 다르게 처참히 무너져 내리고 파괴되고 있다. 중장비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대형트럭들이 쓰러진 나무를 옮기고 흙을 퍼 나르는 중이다. 그렇게 어릴 적 나의 놀이동산이 인간에 의해 무자비하게 유린당하고 사라져 가고 있다.


본가가 있고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현 들꽃학습원)가 있는 시골 동네 ‘서사’ 이야기다. 그곳은 다운 공공주택 단지가 들어설 곳으로 벌목 사업이 한창이다. 다운동을 지나 척과로 들어가기 전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한적한 마을과 조그마한 산맥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그 하천에서 수영도 하고 산도 타며 뛰어 놀던 추억이 깃든 소중한 곳이 지금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수년 전 혁신도시 건립을 위해 멀쩡한 산과 들을 다 파내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울산시와 주택공사는 내 고향 언저리에 그린벨트를 풀고 돈을 미끼로 주민들을 몰아낸 후 콘크리트로 뒤덮으려 하고 있다. 


이곳엔 이미 울산-포항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지역 산림이 훼손되고 일부는 마을 위로 도로가 지나가 주민과 야생 동물들이 소음으로 신음 받고 있는데 다시 대형 공사장이 되어 버렸다. 척과에 있는 본가에 아이를 맡기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 출퇴근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잔인한 폭력의 광경을 매일매일 지켜봐야 하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프다.


그곳의 산과 들과 강은 어릴 적 내 가장 좋은 친구들이었다. 전교생이 30명도 채 안 되는 조그만 시골 분교였기에 몇 안 되는 친구가 정말 소중했다. 같이 놀 친구가 없으면 혼자 산에 가서 진달래도 따 먹고 들에서 뛰어 놀고 강에서는 수영도 했다. 그렇게 자연 친구들은 언제나 말없이 나랑 놀아 주고 변함 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지금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도려지고 뼈가 발라지며 흙이라는 거대한 피를 토해낸다. 이 엄청난 살육이 다 마무리되면 사람들은 그 시체 위에 도시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간을 위한다며 거대한 콘크리트 제국을 또 하나 탄생시킬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렇게 끝없이 산과 들을 없애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토건 사업을 벌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욱 뼈아픈 건 한번 콘크리트로 뒤덮어 버리면 다시는 예전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엔 여야가 따로 없고 기득권 유지엔 진보, 보수가 따로 없듯이 토건 사업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산과 들과 강을 뒤엎는 사업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뒤집을 곳이 없으면 어떻게든 명목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주로 성장이니 발전이니 국민 행복 따위의 것들이다.


동네 이장이 바뀌면 자가용도 없는 노인분들이 사는 동네에 새 도로를 만든다. 소규모의 건설업자들이 자주 이장의 집에 들락거린다. 하물며 거대한 국가 예산을 움켜쥔 정치권에 대형 토건업자들이 현금다발을 들고 들락거리는 일은 자명하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고속도로 건설을 포함한 전국적인 대형 토건 사업들도 상당 부분 실현될 것이다. 개인이나 사회단체, 혹은 환경단체가 반대해도 그 힘은 미미하고 메아리는 울려 퍼지지 않고 작은 소음으로 취급받으며 금세 사그라든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환경파괴도 정당화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어릴 적 내게 위로를 줬던 자연이라는 친구들이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줄어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다. 앞으로도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인류의 탐욕으로 친구들이 계속 사라지고 줄어들 것이다. 우울감이 밀려온다.


앞으로 자라날 아들에게도 미안하다. 결혼 전 아이가 생기면 집 앞 개울가에 가서 같이 가재를 잡을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아마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다. 가재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나도 가재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유한한 생명이라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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