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의 서훈 논란

최병문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6-12 09: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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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문 정치칼럼 ‘사람세상’

청와대는 10일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규정상, 약산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들어 김원봉 서훈 논란에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친일파 군사독재 권력이 냉전 시대 관점으로 만든 잘못된 법 규정이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경력을 헤아려 평가해야지, 해방 이후 건국이나 정부수립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잘못이다. 독립유공자와 정부수립공로자는 구분돼야 한다.


친일파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군사독재 시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은 초대 이응준부터 21대 이세호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일본육사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우리 국군이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솔직히 수뇌부가 몽땅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군은 광복군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하기 어렵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항일투쟁한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장군은 지금도 보수우파의 반공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반민족세력이 주도해온 대한민국 정부는 약산 김원봉에게 훈장 줄 자격이 없다”는 김원웅 신임 광복회장의 주장은 실로 뼈아픈 지적이다.


약산 김원봉은 걸출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의열단 단장, 조선의용대 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그리고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장으로 활약했다. 1919년 11월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조직한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적 토호 등을 주요 암살대상으로 삼고 일제를 상대로 치열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장제스가 이끌던 중국 국민당과 연합해 창설한 조선의용대는 최초의 조선인 무장 독립부대로 차후 광복군과 조선인민군의 근간이 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체제의 남한으로 귀국한 약산 김원봉은 백범 김구와 함께 좌우합작을 추진했지만, 좌익 계열 연합단체 ‘민주주의민족전선’ 공동의장에 선출되면서 친일파의 집중 표적이 되고 말았다.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빨갱이라 불리며 뺨을 맞는 일까지 벌어지고, 몽양 여운형이 서울에서 암살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약산은 해방정국의 친일경찰과 테러리스트의 준동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는 결국 1948년 백범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북한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약산은 북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검열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지만, 1958년 10월 임정 출신 납북자들과 같이 ‘중립화 통일안’을 주장하다가 자본주의 진영 장제스와 내통했다는 ‘국제간첩’ 혐의가 씌워져 숙청됐다고 한다. 그는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분단의 희생양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비로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금기를 깨뜨리고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약산의 유족들은 2007년 약산의 독립운동 자료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하며 서훈을 요청했지만 ‘골수 사회주의자로서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거론한 가운데 주요 항일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대대적인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과 함께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황장엽과 약산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황장엽은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 시절 북한 김일성 체제 유일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망명 후 ‘북한 민주화 인권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 10월 사망하자, 이명박 정부는 독립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황장엽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국립묘지 현충원 순국선열 묘역에 안장한 다음 ‘인간중심철학 창시자’라는 묘비명을 새겼다.

 
남한 정부가 대한독립운동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약산 김원봉의 무장독립투쟁을 제대로 평가하고 냉전시대 이념을 떠나 그를 독립영웅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 북한 정권이 버린 불멸의 항일무장투쟁 영웅을 남한 정부가 챙긴다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릴 리가 없다. 한반도 평화 번영을 노래하는 이 시대에 체제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와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재평가하는 일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족정체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대한독립운동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최병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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