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노동의 데자뷰

김미진 상북마을교육공동체 판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19-11-28 09: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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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나는 마을에서 활동한다. 마을활동가라고 스스로 부른다. 특히 마을의 교육공동체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활동의 경제적 대가는 없다. 이 활동을 함으로써 얻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다. 뭐 누가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내 스스로 이 길을 가는 것이기에 당연하다. 나의 마을 노동은 스스로 선택한 무급이다(아직 초기니까... 언젠가는 자립적인 수입구조를 갖출 수 있으리라). 어느 날 문득, ‘이런 경험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였지, 뭐였지 했는데 그 데자뷰의 실체는 가사노동이었다. 


결혼하고 한 가정의 주부가 돼 자연스럽게 내 무급노동은 시작됐다. 남자는 생계노동, 여자는 가사노동(혹은 생계노동에 추가된 가사노동)이라는 암묵의 사회적 압박이 있었고 그걸 처음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남편은 가사를 많이 도와(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고 여성학 책을 들이밀며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던 젊은 시절이 있었구나)주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사노동은 내 영역, 내 책임이었다. 시부모님이나 손님이라도 오실 때 집안 청소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남편은 당황하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등줄기에 땀이 났다. 그냥 성격 차라고 넘어가기에는 우리 사회의 여성과 남성을 보는 시선, 차별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가사노동은 안 하면 표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가족도, 사회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투명 노동 같은 것이었다. 가사노동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를 어찌 다 값으로 매기겠는가마는, 아직도 여전히 가사노동의 값은 제대로 매겨지고 있지 않다. 


마을 노동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살고 마을의 주민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자연스럽지 모든 주민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을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엄청난 품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다. 꼭 마을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교사들 중에도 다른 교사들이 관심 갖지 않는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교 이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의 마을 노동에 의해 그래도 조금씩 마을이 변화해 가고 있다. 


마을 활동이라 하지 않고 굳이 마을 노동이라 한 것은 그 어떤 활동도 ‘노동’이 기반 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마을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 되는 지자체의 공모 사업을 보자. 몇백만 원의 사업비를 받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아내고, 회의하고, 사업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업에 선정되면 세부 기획을 하고, 홍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교육이나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 진행을 위해 마을의 다양한 단위들과 협의하고, 지원센터를 방문하거나 점검을 받아야 하고, 사업비 집행과 회계 처리를 꼼꼼히 해야 하고, 행사 후 설문을 하고, 그것을 다시 피드백하고... 1년 동안 그렇게 사업을 하고 나면 그래도 마을의 관계망이 넓어지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 사업의 성과 아래 물밑에는 수없이 헤엄을 치며 버텨내는 마을활동가가 있다. 어디 사업뿐인가. 사업은 매개일 뿐이고 일상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들을 연결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함께 풀어나가야 하고, 때로 오해도 받아야 하고, 욕도 먹어야 하고... 


같은 마을 사람들도 ‘왜 돈도 안 나오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뭐가 나오는 게 있겠지’하는 사람도 있다. 때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나 학습의 필요성 때문에 다른 지역을 가야 할 때도 자비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이웃들의 십시일반 도움을 받아 간 적도 있고 여비 때문에 타지역행을 포기한 적도 많다. 공무원들처럼 출장비는 없더라도 비싼 교통비라도 어째 해결이 되면 좋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마을활동가들이 우리 사회에 제법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마을 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관으로부터는 ‘마을에서 자립적으로 하라’는 소리를 듣거나 ‘재능기부로 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민에서는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니’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맞다.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이 마을의 일, 공익적인 활동이라면, 그것이 관에서 그토록 활성화하고 싶은 마을공동체 일이라면, 정말로 지속가능한 마을의 자립을 바란다면 ‘사람’에 투자하고, ‘사람’을 남기는 사업을 하시라 하고 싶다. 그 많은 사업비를 어디에다 쓸 것인가? 마을 노동하는 사람을 잘 발굴해 사람에게 쓰시라. 마을에서 마을 노동을 하며 버텨내고 있는 마을 시민들을 남기는 것. 그것이 그렇게 늘 외쳐대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의 핵심이 아닐까. 


마을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가사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가 된다는 것과 왠지 통하지 않을까 싶다.


김미진 상북마을교육공동체 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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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상북마을교육공동체 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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