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09-20 09: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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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일기

사전에 의하면 며늘아기는 며느리를 귀엽게 이르는 옛말이지만 웹툰 ‘며느라기’에서는 사춘기,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인데 보통 1, 2년이면 끝나지만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 며느라기를 겪는 며느리의 특징은 “제가 할게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게요” 말한다.


세어보니 나는 며느라기를 7년 겪은 셈이다. 결혼하고 첫 명절,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명절 음식을 하는데 양이 많아 보였다. 올라오는 연기와 쌓여가는 음식에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 이것만 하면 끝이다”고 어머니 손에 들린 큰 바구니를 본 순간 새색시 얼굴이 누렇게 떴지 싶다. 무심한 척 주시하고 계셨던 아버님이 내 안색을 살피며 그만 하고 방에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어머님도 그렇게 하라고 배려해주셨다. 그럼 잠깐만 쉬다 오겠다 해놓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 다 차렸으니 먹으러 나오라는 어머님 말에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심심하게 아들만 둘 키우다 며느리가 들어와 시부모님은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이따금씩 요리 레시피를 물어보면 어머님은 알려주길 기뻐하셨고 반찬이며 과일이며 쌀이며 심지어 생수까지 바리바리 싸서 주셨다. 신혼부부의 냉장고는 365일 가득 찼고 이웃이 우스갯소리로 전쟁 나도 이집은 식량 떨어질 걱정 없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제 가족이 되었다 생각하고 마음도 그렇게 퍼서 주셨던 것 같다. 나도 거기에 박자를 맞추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다. 때론 불편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6년이 지났고 브라더의 결혼을 계기로 나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손길이 분산될 줄 알았는데 아닌 거다. 며느라기의 마지막 1년은 심히 삐걱거리며 속 좁은 큰며느리 왕관을 쓰고 졸업했다.


결혼하고 아홉 번째 추석을 앞두고 어머님께 명절 음식을 줄이고 역할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다행히 수용해주셨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한번으로 족할 시집살이를 다시 하는 심정이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셨고 지금은 며느리 시집살이 중이시다. 너희들 눈치 보느라 힘들다는 어머님의 신세한탄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아홉 번째 추석은 큰 변화가 있었다. 두 아들이 마주보고 전을 굽고 주거니 받거니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먹고 9시 30분에 출발했다. 두 아들이 전을 구울 동안 나 또한 쉬지 않고 부엌일을 했다. 가짓수에서 동그랑땡이 빠졌고 전체적으로 양이 줄어든 명절 음식을 3시간 만에 끝냈다. 전에는 다음날 점심까지 먹고 2시에 출발해서 내내 차가 막히고 6시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차도 안 막히고 12시에 도착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니 좋으면서도 얼떨떨하다.


변화는 일어났고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았다. 전에는 역할분담이 안 되는 상황이 답답했다면 지금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 관계가 답답하다. 그리고 그간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에 가려져 있었던 나의 미숙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숙해지려면 멀었구나 싶다. 시댁에서는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디서부터는 고쳐나가야 하는지 그 경계가 어렵다. 참다가 폭발한 경험치가 있기에 고쳐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매번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두 나한테 맞추라는 건 미숙하다는 증거다. 나도 상대방의 바람을 수용하고영향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하고 겪는 1단계 며느라기가 끝났다고 다가 아니더라. 이어지는 2단계 심화 과정이 있다. 두어 사람 참아서 누리는 평화 말고 모두가 즐겁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2단계 말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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