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아빠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06-21 09: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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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이런 직업이 있다. 출퇴근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근무시간은 풀타임일 수도 있고 파트타임 근무일 수도 있다. 인수인계는 따로 없고 근무 시작일부터 바로 업무 시작이다. 무경험자라고 해서 적응 기간을 주거나 쉬운 업무부터 배정하는 배려 따위는 없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야간근무는 필수다. 그리고 주말이나 공휴일도 업무를 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휴일엔 그 강도가 더욱 강해진다. 또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더럽고 치사해도 때려치울 수 없다. 최소 20년은 근무해야 하며 죽을 때까지 그 직업적 명함은 좋든 싫든 나를 따라다닌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봉이 아주 높거나 복리후생이 빵빵하거나 그도 아니면 연금이라도 아주 높을 듯한 힘든 직업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 한 푼의 돈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들이면서 근무를 하고 호봉이 올라갈수록 지출할 돈은 더 늘어난다. 개발경제 시기에 공장에서 12시간 맞교대 근무할 때도 이 정도의 악조건은 아니었다. 최소한 일주일 중 하루의 휴식은 주어졌고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받지 않았던가.


정말 누가 이런 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할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쉽게 발견된다. 그렇다고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며 전태일처럼 분신하는 사람도 없다(아예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다). 업무 스트레스는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를 만나 자신의 회사 동료(남편, 아내)의 근무 태만을 비난하며 푸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업무 성과가 좋은 사람도 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업무를 잘한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훌륭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직업을 소홀히 하고 퇴근 후 자기 삶을 사는 즉, 워라밸의 삶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결과물이 더 좋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렇게나 힘들고 예측 불가능한데 이 업무를 어느 정도 수행한 사람은 자식도 계속해서 가업(?)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자식도 이 일을 하길 원하다니, 도대체 무슨 직업이길래.


바로 부모라는 직업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라는 새로운 명함을 하나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은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린다. 딱히 물어볼 선임도 없고 해서 그때그때 알아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상황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엔 아이를 씻기다가 실수로 뜨거운 물을 아이 머리에 샤워기로 뿌려서 현재 아이는 목욕 파업 중이다. 날씨가 더워져서 매일 씻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트라우마가 제대로 생긴 아이는 이제 샤워기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같은 상황을 겪어보신 선임들, 해결 방법 좀 알려주세요). 덕분에 16개월 된 아이에게서는 좋은 아기 냄새가 아니라 큼큼한 땀 냄새가 나고 있다.


이제 업무를 시작한 지 1년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 다른 직장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그러면서도 40년이나 이 업무를 하고 계신 부모님들이 왜 그렇게 자식에게 헌신적이었고 엄청난 경제적 지출과 심리적 육체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 업을 추천하셨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이 직업이 주는 성취감은 다른 어떤 일에서 얻는 기쁨보다 크다. 하루하루 맡은 프로젝트(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충만해지고 프로젝트만큼이나 나도 동반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비록 경제적 보상은 없더라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 비사회적 성향으로 친구가 많지 않은 내게 친구 하나가 생긴 듯하다.


그렇다고 직무를 아주 열심히 수행하지도 않는데 남들이 보면 근무 태만이나 직무유기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냥 너무 애쓰지 않고 이 직업을 즐겨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탓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이가 성장해 독립했을 때 가슴 뿌듯하게 바라보며 많은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이 직업을 아이가 계속 이어나가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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