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서 왔을까?

이소정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연구원 / 기사승인 : 2019-09-06 09: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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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공동기획
바다쓰레기 ‘줌(ZOOM, 주움)’ 프로젝트 ⑥플라스틱병

- 세 번째로 많은 바다 쓰레기 플라스틱, 해양생태 파괴 주범
- 창자 입구에 박힌 폐플라스틱들이 탈수와 굶주림의 원인
-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지키는 일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란 소설을 나는 고등학교 때 읽었다. 그 전에 선생님의 <나목>을 먼저 읽었고 그 헐벗은 시간들에 대해 얼치기 이해를 보태며 사춘기를 보냈다. 고작 두 권의 소설을 읽고 문학소녀로서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나는 어리석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내가 가장 순수하게 소설을 읽었던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 나는 가끔 싱아에 대해 생각했다. 싱아가 뭘까? 궁금해서 물어도 내 주위의 어른들은 싱아를 잘 몰랐다. 분명 풀이름 같은데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내게는 더 예쁜 이름이 싱아였다. 싱아, 싱아 부르며 사라진 시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간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궁금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싱아는 나도 한번쯤은 본 식물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꽃은 6월에서 8월에 흰색으로 핀다고 한다. 어린 대는 신맛이 있으며 날로 먹는다,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진짜로 먹기도 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소설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싱아라는 이름을 그토록 싱그럽게 떠올린다. 

 

▲ 바위틈에 버린 폐플라스틱병들
▲ 버려진 폐플라스틱병들

 

새삼 그런 싱아를, 도대체 누가 그 많던 싱아를 다 먹어버렸냐 싶다. 아마도 싱아를 먹어봤을 96세 내 할머니는 가끔 좋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고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말이다(그것을 나는 가끔 노욕으로 읽기도 한다). 바다 쓰레기 종류에 관한 연재를 시작했을 때, 아니 정확하게 폐플라스틱에 대한 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나는 싱아와 할머니를 동시에 떠올렸다. 하나는 플라스틱이 과연 좋은 세상을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었고 또 하나는 그 많은 싱아가 사라진 자리에 플라스틱이 자라난 것은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안한 생각으로 말이다.


얼마 전 필리핀 해안에서 폐플라스틱 때문에 죽은 고래의 사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무게 20킬로그램 정도의 꼬마 향유고래로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죽음이었다. 이 고래를 해부한 해양생물학자 대럴 블래츌리 박사는 “창자 입구에 박힌 폐플라스틱들이 탈수와 굶주림의 원인”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은 늘 새롭고 튼튼하며 오래가고 가공이 쉽고 가벼운 것을 추구해왔다. 그런 점에서 플라스틱보다 더 적합한 것이 있었을까. 사람들의 편리에 대한 열광과 함께 플라스틱은 150년에 걸쳐 광범위하게 우리 생활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장점들이 반대로 서서히 우리 목을 조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됐다. 자연분해되지 않는 폐플라스틱이 파편화돼 생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인간이 있다. 바다 속 생물들을 통해 다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미세플라스틱의 공포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 생명의 분주함으로 핀 꽃들


누가 아름다운 고래를 죽였을까? 이 많은 폐플라스틱은 도대체 어디서에서 왔을까? 싱아처럼 고래가 곧 사전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돼 버리진 않을까? 좋은 세상이란 인간만이 남은 외롭고 황폐한 세상은 아닐까? 나는 다시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어버렸을까?>를 꺼내 읽는다. 

 

▲ 해안도로에 버려진 쓰레기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책 속에서
내게는 싱아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부산한 믿음이 있다. 나는 우리의 미래에 고래의 세계가 분명 남아있을 것이며 고래에게도 자신들의 바다와 그 아름다운 푸른 세계가 남아 있을 것을 믿고 있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지키는 일. 그것이 박완서 선생님이 또한 바라고 마지않을 세계임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그녀에 대한 책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 


이소정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이 원고는 울산연안지역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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