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11-29 09: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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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오슝 보얼 예술특구의 상징 캐릭터 조형물, 노동자와 해녀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세계노동절 130주년과 전태일 산화 50주년를 기다리며 


지난 8월 말부터 북유럽(핀란드, 스웨덴, 덴마크)과 독일에 있는 노동박물관을 탐방 취재했다. 또 국내 노동과 연관 있는 역사기념관과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번 기획취재는 ‘노동존중’이라는 화두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의 열쇠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더불어 촛불혁명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 새롭게 단체장이 바뀐 울산시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기획취재를 시작하고 준비하는 동안 경남 창원에서는 산업·노동역사박물관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5월부터 ‘인천 공단과 노동자들의 생활문화’라는 특별전을 열었고 10월부터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이란 이름으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태일 기념관’은 올해 4월 말 서울 종로구에 독립건물로 개관하기도 했다. 엄청난 격변은 아니어도 시대의 변화가 담기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에 있는 노동박물관은?

북유럽 말고도 노동박물관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 과거 사회주의 국가는 국립역사박물관이 노동사 민중사를 다루고 있으니 따로 떼어놓고 봐야 한다. 독립적인 노동박물관이 가장 오래된 곳은 태국 방콕으로 1993년에 개관했다. 옆 나라 일본은 도쿄에 오하라연구소, 오사카에 산업노동자료관이 있는데 박물관보다 아카이브에 더 가깝다. 울산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공업도시인 가오슝에 세워진 노동박물관이다. 가오슝은 일제강점기에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을 잇는 항구도시로 개발되면서 수탈창구가 됐는데 그 흔적이 남은 부두와 옛 창고를 보얼예술특구로 바꿔 놓았다. 가오슝 노동박물관은 2010년 예술특구 안에서 개관했다가 2015년 시내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보얼 지역부터 보면 상징 캐릭터처럼 세워진 노동자와 해녀 조형물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길을 걷다보면 건물 벽면에 그려진 우리 민중미술과 유사한 노동벽화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시내 중심가 시의회 근처에 있는 노동박물관 역시 1층에서부터 크고 눈에 띄는 노동자상이 사람들을 반긴다. 건물 3층 전체를 이용해 대만의 근현대 노동역사를 포함한 상설전시와 여러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가오슝과 울산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울산이 1962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공업단지로 지정됐던 것처럼 카오슝은 1966년 대만 최초의 수출가공구역으로 설립됐다. 그리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울산에서 시작됐던 역사를 지녔다면 대만 노동운동이 가장 힘있게 발전했던 곳이 가오슝이다. 가오슝 시가 노동박물관을 만든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 1993년에 개관한 태국 방콕 노동박물관 건물 앞 모습

 

▲ 가오슝 시립노동박물관 정문 모습


이제 5년이 된 울산노동역사관

울산노동역사관(관장 김연민)은 북구청이 위탁 운영하는 형태로 2014년 2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개관에 앞서 2013년 ‘북구 노동역사관 설치 조례’를 북구의회에서 제정했다. 조례 속 설치 목적은 △노동역사 자료의 수집 △노동역사 전시와 관람 △학술연구 및 역사사업이며 개관 때부터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가 수탁하고 있다. 북구청 인근 북구 산업로에 있는 오토밸리복지센터 4층 복도를 이용해 전시공간과 자료실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원래 오토밸리복지센터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과 회사가 단체협상을 통해 사회공헌 형식으로 북구청에 기부체납한 공간이다. 그래서 전체 복지시설 중 맨 윗층인 4층 비정규직노동지원센터와 노동법률원이 운영되고 있던 곳에 역사관을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박물관을 염두에 뒀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장소가 협소한 것이 걸림돌이 돼 왔다. 그래서 2017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민중미술전과 노동미술전 등을 장소가 작은 역사관을 떠나 울산문화예술회관이나 울산박물관처럼 외부에서 열어야 했다. 예산도 부족해 올 상반기까지 상근인력이 사무국장 한 명이었는데 하반기 추경예산이 편성되면서 한 명이 단기 계약직에서 상근직으로 변경될 수 있었다. 북구청이 오토밸리복지센터에 ‘노동복지센터’를 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일어난 변화다.

노동복지센터와 울산노동박물관

민선 7기 북구청은 올해 2월 구청장 공약 사업인 노동복지센터 활성화 사업을 밝히면서 기존 오토밸리복지센터 증축과 시설 공간 재배치로 계획을 밝혔다. 사업 방침은 노동존중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역할을 확대한다는 것. 그 결과 4층 위쪽의 옥상 공간에 있는 ‘하늘정원’ 공간 중 396㎡(120평)를 증축해 노동역사관을 옮기고,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공간을 늘리며 새로 노동자건강지원과 상담시설을 확충하는 설계용역을 실시했다. 이동권 북구처장의 당선 때 공약은 독립공간에 가까웠지만 적당한 부지 확보와 신축을 위한 예산 마련 등을 감안해 기존 공간을 확장하는 셈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를 비롯해 지역 노동계는 아쉽지만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긍정 반응이 있었다. 공간 확장으로 결정된 만큼 준비해야 할 숙제들이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울산노동역사관 배문석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역사관을 넘어 박물관’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월 울산박물관협의회 회원기관으로 입회하면서 존재가치를 확인받았듯이 앞으로 등록 박물관이 될 수 있는 규모와 형식을 갖추겠다는 각오다. 내용으로는 과거 선사시대 노동부터 4차 산업시대 미래 노동까지를 한 눈에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이다. 더불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한 2종 박물관 등록요건에 따라 전문학예사 1명과 82㎡ 이상 전시실과 수장고, 사무실 또는 연구실 등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울산노동역사관은 이미 소장 자료가 10만 건을 넘어가기 때문에 자료 구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내년 북구청 예산이 확정되고 실제 공사에 들어갈 때 나머지 부분을 꼼꼼히 채워 박물관 등록에 결격사유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울산노동역사관과 지역예술단체와 함께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최 중인 노동미술전 2019 개막식 단체사진
▲ 지난 3월 1일 울산대공원 동문 앞에 세운 울산 강제징용 노동자상


‘노동존중’ 도시로 가는 상징으로

울산노동박물관에서 머물지 않고 노동존중 도시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박물관은 그 과정의 상징으로 위치하면 된다. 공업도시, 산업도시라는 별칭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은 노동자 도시로 민주주의 발전에서 한 축이 되어 왔다. 물론 민주노조가 대거 등장한 이후 과거 32년의 시간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과 ‘골리앗 투쟁’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투쟁, 2001년 효성, 태광, 고합 화섬3사 투쟁, 2004년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 2005년 건설플랜트 노동자 투쟁, 2007년 이랜드 노동자 파업,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해고 그리고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CTS 점거와 2013년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 송전탑 점거 등 노사가 대립했던 큰 사건만 꼽아봐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촛불항쟁 이후 사회 변화 속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굵직한 여러 국가 차원의 노동의제에서 울산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이 변하고 산업이 바뀌는 전환의 시기,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가속화되는 지금 노동존중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미래 울산은 절름발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경로에 전국 최초의 노동역사관으로 자리 잡은 울산 북구의 사례를 주목하고 최소 광역시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가 높아지는 것이다.

마지막, 민주시민교육의 마당까지

노동박물관이 또 하나의 민주시민교육 공간이 된다는 것은 북유럽 탐방 취재에서도 분명히 확인한 바 있다. 스웨덴 노동박물관이 어린이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하고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에서 은퇴 세대가 학생들에게 직접 노동 체험을 이끄는 것을 앞서 연달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북유럽 노동박물관이 여성노동과 여성인권을 품은 민주시민교육의 흐름을 공통으로 전시하는 것도 목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도시마다 근현대 민주주의 발전의 순간을 담은 역사 기념과 민주시민교육 공간이 존재한다. 가까운 부산 민주공원부터 마산 3.15의거기념관, 제주 4.3평화공원, 광주 5.18기록관과 평화의전당 등이 대표적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은 노동자대투쟁이다. 실제로 타 지역 관람객들이 울산노동역사관을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민주시민교육은 또 다른 문화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구에서 새로 변화할 노동박물관부터 남구 태화강역 광장에 세워진 노동자대투쟁 기념비와 울산대공원 동문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중구 원도심의 6월 민주항쟁 표지판 그리고 동구 방어진과 남목고개을 잇는 노동역사 투어가 만들어지면 전국에서 민주시민교육 현장체험과 순례코스로 발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특히 내년은 전세계 노동절(MAY DAY) 130주년이자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계획대로 울산노동역사관이 노동박물관으로 도약할 수 있다면 더없이 뜻깊은 전환점이 될 것이다.
 

▲ 지난 6월 10일 중구 성남동 거리에 설치한 6월 민주항쟁 기념 동판
▲ 민주시민교육 장소 중 하나인 울산노동역사관에 관람 온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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