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같은 바닷가 역, 옛 해운대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19-07-31 09: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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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당신은 딱 오후 3시 같은 사람이야. 뭘 하기에는 늦고, 그렇다고 뭘 그만두기에는 너무 이르고,” 윤제균 감독의 2009년 작 재난 영화 ‘해운대’에서 손꼽히는 명대사다. 영화에서 서울 아가씨 김희미가 해양구조대원 최형식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고, 그를 향해 저돌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던 중 내뱉는 대사다. 그리고 그녀의 오후 3시, 형식은 쓰나미가 몰려온 바다에서 자신을 구하고, 자신의 남자친구를 살리기 위해 생명줄을 끊고 희생된다. 영화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지지고 볶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그런 어정쩡한 오후 3시가 위기 앞에서는 1초도 아깝다는 사실을 절감케 한다.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은 우일역과 송정역 사이에 있다. 1934년 7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최초 개통구간은 해운대 부산진 간 18.9km였으며, 1935년 표준궤 개통과 함께 울산, 경주로 완결됐다. 이 역은 동해남부선에서 태화강역에 이어 두 번째로 수요를 많이 기록한 역이었다.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 옛 역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해운대구 좌동으로 이전한 뒤 폐역됐다. 


옛 해운대역사는 팔각정 형태의 특이한 지붕을 얹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팔각정 형태의 역사는 과거 소요산역, 창원역에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곳이 유일하다. 동해남부선의 옛 역들은 시종착역인 부산진역과 울산역, 경주역을 빼고 나면 모두 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간이역들이었다. 하지만, 해운대역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지금은 주변에 큰 빌딩들이 너무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해운대역사는 일대에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던 현대식 건물이었다. 폐역 이후 역사는 철거되지 않고 시민갤러리, 신진작가들의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문을 굳게 닫고 있다. 

 

▲ 옛 해운대역 전경

 

▲ 옛 해운대역 출입문. ‘오’자와 ‘가’자 하나 차이로 의미가 정반대인 사실이 새삼스럽다.


코레일은 현재 옛 해운대역사에 커피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하고 민간 사업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역사 담벼락에는 이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역사부지의 공원화를 원하는 주민들과 노른자위 땅의 효용가치를 따지는 코레일 측의 첨예한 대립을 시사하고 있었다. 

 

▲ 옛 해운대역 구내 전경. 옛 승강장으로 할머니 한 분이 산책길에 나섰다.


필자가 옛 역을 찾은 날은 승객을 대신한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역사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역사 뒷마당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오는 사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비둘기 떼가 수십 배로 늘어나 있었다. 범인은 팔각정 처마 밑에서 모이를 뿌리는 아저씨다.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를 불러 모으며 모이를 뿌리는 자세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필자가 아저씨에게 말을 붙일 요량으로 성대한 오찬장을 가로질러도 녀석들은 날개를 잠시 폈다 접을 뿐 여전히 모이에 집중했다. 


은퇴를 즐기는 듯한 아저씨는 10여 년 전에 근처에 이사를 왔다고 했다. 소일거리삼아 가끔씩 비둘기 모이를 주러 이곳에 들른다는 아저씨. 대뜸 필자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아저씨는 “비둘기나 고양이에게 모이 주지 말라는 현수막을 볼 때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모이 조금 준다고 해서 개체수가 급증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베푸는 감성마저 뺏어간 도시는 더욱 삭막해질 것이라고 했다. 

 

▲ 해운대역 마당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는 아저씨.


아저씨는 이어서 “도시개발로 이들의 터전을 애초에 뺏은 것은 인간이며, 그럼에도 도시환경에 잘 적응해 생존을 이어가는 동물이나 조류 또한 한 도시의 일원이라”고 했다. 인간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 ‘혐오동물’이니, ‘전염병 매개체’니 낙인찍지 말고, 오히려 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숲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숲이 없어지고 새가 울지 않는 메마른 도시는 더 큰 정신병원을 짓게 할 뿐이라고 했다. 


도시생태학개론 같은 수준 높은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아저씨에게 ‘당신에게 해운대는 어떤 곳인가’를 여쭈었다. 아저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태풍 때 성난 파도가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돈만 있으면 해운대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라고 했다. 


돈이라는 조건을 빼고 나면 어떤 곳인지를 또 물었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돈 없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고달픔이라는 건 해운대 말고도 다 똑같은 것 아닌가”라며 그가 내게 되물어 온 뒤 잠시 우리는 침묵했다.
아저씨와 헤어져 돌아서는데 폐지를 가득 실은 할머니 한 분이 힘들게 리어카를 끌며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할머니의 저 리어카는 눈부신 빌딩 숲, 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비둘기, 고양이에게 모이를 주지 말라는 부류나, 가난한 사람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간을 고집하는 부류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해운대는 시대만 다르지 성 안팎을 극명하게 차별하던 중세 봉건사회를 닮아있다. 


뭘 하기에는 늦고 그렇다고 뭘 그만두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 오후 3시 같은 역, 아저씨가 모이를 다 주고 일어섰는지 옛 해운대역사 하늘로 비둘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해리단길, 미포건널목

옛 해운대역 뒤에는 번잡한 도심과는 딴판인 다닥다닥 붙은 옛 가옥들이 전개된다. 요즘 핫플레이스라는 해리단길이다. 옛 해운대 거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길은 동해남부선 뒤쪽 2만여㎡의 마을과 상권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철길 폐쇄 후 몇 년 전부터 이색적인 인테리어를 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가 찾은 날도 많은 청춘남녀들이 따가운 햇살을 아랑곳 않은 채 골목을 걷고 있었다. 이 길은 부산발전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도 부산 10대 히트상품’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 옛 해운대역 뒤편의 해리단길 전경.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멀리 보이는 마천루와 대조된다.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이라면 북동쪽 끝에 위치한 미포건널목에서부터 미포선착장, 해운대 해수욕장, 동백섬을 거쳐 영화의거리 순으로 걸어보길 추천한다. 해수욕장 끝에 위치한 미포건널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장소다. 영화 ‘해운대’에서 쓰나미에 놀란 사람들이 혼비백산 뛰쳐나오는 배경이 되었으며, ‘거룩한 계보’ 등 부산과 관련된 영화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었다. 기차가 이곳을 지날 때는 바다가 보이는 이국적인 건널목을 찍기 위한 사진가들이 많이 찾았지만, 선로 이설 후 그 같은 풍경을 다시 찾아볼 수는 없게 됐다. 


미포건널목에서 바닷가로 내려와 좌측으로 돌면 눈부신 해운대의 풍경과는 사뭇 대비되는 미포선착장이 나타난다. 마린시티 앞의 요트선착장과 너무나 대조되는 작은 고기잡이 포구다. 영화 ‘해운대’에서 하지원이 무허가 횟집을 운영하며 동네 오빠 만식과 사랑을 키우던 곳이기도 하다. 


미포선착장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을 거쳐 동백섬까지는 걸어서 1시간여 거리다. 부산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운대 해수욕장은 초여름임에도 이미 온갖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사람 구경, 해변가로 펼쳐진 마천루 구경에 정신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동백섬에 닿는다.

 

▲ 선로 위로 데크를 설치했다. 저 멀리 해운대의 마천루가 보인다.


동백섬. 영화의거리

동백섬은 부산을 대표하는 곡,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장하는 그 섬이다. ‘해운대’란 지명은 신라 말, 최치원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렀다가 일대의 절경에 취해 동백섬 남쪽 암벽에 자신의 호 해운대라는 세 글자를 음각한 데서 유래한다. 예부터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 안개바다와 어우러졌다.

 

▲ 동백섬 최치원 해운대 음각터. 해운대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한다.

 

동백섬에는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들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편한 길이 섬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 2005년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최치원 해운대 음각 바위, 황옥공주 인어상 등이 있어 심심할 겨를이 없다. 

 

▲ 동백섬 누리마루. 2005년 APEC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다.


누리마루는 노무현 정권 시절,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4~5천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가장 친서민적이었던 대통령의 발자취를 추억한다. 2005년 11월 1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곳 방명록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평화’

 

동백섬에서 나와 좌측 해변 길로 10여 분 돌면 ‘영화의거리’가 펼쳐진다. 요트경기장에서 마린시티까지는 ‘영화와 친해지기’를 주제로 영화제작 조형물과 테마 벤치를 설치했고, 마린시티에서 동백섬까지는 ‘영화와 놀며 즐기기’로 슈퍼그래픽과 트릭아트 등을 활용해 재미있는 길을 만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명배우들의 핸드페인팅 구간, 슈퍼맨 트릭아트 등을 지나면 하얀 방벽에 줄선 영화 포스터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 해운대 동백섬 옆 마린시티길의 영화의 거리


한때 인기리에 방영됐던 영화 포스터들을 지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 코너 앞에 섰다. 공교롭게도 ‘변호인’ 포스터 맞은편에는 동백섬의 APEC 정상회담장 누리마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 화의 거리에서 만난 영화 <변호인> 포스터. 맞은편 동백섬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흔적이 깃든 누리마루가 보인다.
▲ 해운대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배우 김혜수의 손도장


송강호가 노무현 변호사가 되어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해운대의 명대사 ‘오후 세시 같은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반역의 세월, 구시대를 청산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그만두기에는 너무 일렀던 비운의 통치자. 바보 노무현, 그는 스스로를 ‘구시대의 막내’라 불렀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이 되고 싶어 했다.

 

▲ 해운대 해수욕장. 여름 초입임에도 바다를 찾은 사람이 많다.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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