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폭파단(5)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기사승인 : 2019-09-05 09:33:02
  • -
  • +
  • 인쇄
소설

술자리에서 흥이 다하면 그때부턴 술이 독약이 되는 법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보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급기야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들은 술자리에선 프로에 가깝다. 미진과 도희 역시 사십 줄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술자리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승기와 순천에 뒤지지 않았다. 이럴 땐 분위기를 바꿔주는 게 도리다. 누구랄 것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고 언제나 그렇듯 2차는 백만불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어느 시골 번화가에 자리 잡은 뻔쩍이는 간판의 단란주점이 쉽게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가는 곳은 시장 한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술집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주방이 있고, 테이블이 놓인 식당이 아니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식 정통 바라고나 할까. 서양식 바는 어둑한 건물에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위스키와 칵테일을 내 주고 담소를 나눈다면, 한국식 바에선 누런 장판을 두른 기다란 탁자에 육십 줄은 훨씬 넘은 할머니가 막걸리와 소주를 팔며 댓거리를 해준다는 것. 물론 서양식 바나 한국식 바나 앞에서 술을 파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긴 했다. 안주 역시 주방을 책임진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라지긴 했지만 질로 따지자면 한국식 바를 따라올 수 없었다. 오래된 단골인지라 그들이 앉기가 무섭게 막걸리 두 병과 맥주 두 병이 상에 올랐고, 김치와 멸치가 밑반찬으로 금세 차려졌다. 그리곤 뒤이어 기름기 가득한 돼지 수육과 쌈장, 새우젓에 마늘 한 접시가 비좁은 탁자를 채웠다. 


“그 사람 누구에요?”
도희가 물컹한 돼지 수육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누구?”
“누구긴요. 우리 경찰한테 꼬바른 놈. 생긴 것도 멀쩡해가지고 무슨 원한이 있다고 우릴 경찰한테 이르고 지랄이야.”


“뭐가 멀쩡해. 딱 순천이 아저씨 빼닮았던데. 혹시 잃어버린 동생 아니에요?”
“닮기는 뭐가 닮어 내가 훨씬 잘생겼지. 안 그러냐 미진아?”
“됐고, 이거 골치 아프겠는데. 일단 경찰이 알아버렸으니, 댐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무조건 우리를 범인으로 지목할 거 아니야?”


이미, 경찰에 한 번 신고를 당한 이상 미진의 말처럼 운신의 폭이 좁아든 것은 사실이었다. 설령 그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댐을 폭파한다면 그들이 덤터기를 쓸 확률이 높았다. 도희는 우리 말고 또 누가 그런 짓을 벌이겠냐고 했지만 세상엔 그들 말고도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은 쉽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게 세상일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감옥을 갔고, 그 전 대통령도 수감 동기가 됐다가 겨우 풀려나지 않았는가. 전직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달려 들어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된 건 헌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 싶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그건 저 굳건히 서 있는 사연댐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가장 큰 적폐중의 적폐는 저 사연댐일지도 모른다는 데 다들 공감을 했다.
“걱정하지 마. 다 수가 있어.”


시베리아 벌판으로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는 호걸답게 난관을 극복하는 건 역시 승기 몫이었다. 승기 말로는 사연댐 주변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코스라고, 자신도 몇 달 전에야 그런 길이 있는 걸 발견했다고, 그 코스를 통해 태화강을 따라 걸어가는 답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나이가 들면 우선 걷는 걸 좋아한다고, 주말이나 밤이 되면 동네 강변을 걷는 사람들을 보라면서, 여유가 있으면 일단 걷고 보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요즘은 동네마다 희한하게 이름을 붙인 길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긴, 무슨 무슨 순례길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을 타면서 수십 일을 걷는 외국 여행 코스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이야기에 이젠 아예 그 순례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사람은 걷는 동물임에는 확실해보였다. 승기는 답사 프로그램은 돈도 안 들고 사람들의 참여도 높아서 일단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나랏돈 타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묻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떠벌렸다. 


근데 그게 사연댐을 폭파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다들 의아하게 승기를 쳐다봤다. 승기는 일단 술부터 한잔 들이키라고 손짓을 했고, 승기의 손짓과 동시에 아까부터 고소한 비린내를 풍기던, 기름에 바싹 구워진 고등어구이가 상으로 올라왔다. 술이 떨어질 만하면 안주가 올라오고, 안주가 떨어질 만하면 술이 올라오는 건 백만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미진이 먹기 좋게 고등어 살을 바르고 있는 와중에 도희가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던 노인 한 명이 일어서려다 기우뚱하며 도희와 함께 앉은 의자를 허벅지로 쳤고, 의자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이 흔들리면서 술을 반쯤 쏟아버린 것이다. 노인이 도희에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주인 할머니가 황급히 행주를 건넸고, 도희가 행주로 바지를 닦으며 괜찮다고 했다. 일자로 이어진 의자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 이 술집의 구조상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도희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일어나 행주로 바지를 툴툴 털고 의자에 튄 막걸리를 닦아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들 오늘 일진이 사납다고 했다. 그래도 반만 쏟은 게 어디냐며 그게 다 도희가 둔하게 보여도 실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칭찬을 했다. 도희 역시 그런 칭찬이 싫지는 않아 보였고, 정말 괜찮다며 실수를 한 노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술 조금만 드시고 어서 들어가시라며 사뭇 예의바르게 노인을 달랬다. 


그렇게 잠깐 소동이 지나가자 승기가 아까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우선, 댐으로 가는 공식적인 루트가 확보된 이상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며 다음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은 길을 걸으면서도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줄 잘 모른다고 일단 목적지가 있는 길을 발견한 이상 그만큼 우리의 성공확률도 높아졌다는 게 승기의 말이었다. 그렇게 답사 프로그램을 핑계로 매월 댐을 둘러보는 코스를 만들 테니 너희들은 꼭 프로그램 신청을 하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걷다가 댐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면 아무도 모르게 중간에 빠지면 된다고, 그때마다 몰래 댐과 산이 연결된 부분을 조용히 파내며 폭파 작업을 하면 된다고, 이건 거의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했다. 승기의 말에 다들 조용히 환호를 내질렀지만 도희는 뭔가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승기가 아까 흘린 술로 아랫도리가 축축한 게 찜찜해서 그러냐고 했다. 도희는 흘린 술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아무래도 아까 일이 마음에 걸려.”
술기운이 적당히 올라 제법 침착해진 도희는 아무리 폭파를 한다고 해도 폭탄은 어떻게 훔칠 것이며 설령 폭탄을 훔친다 하더라도 그걸 아무도 모를 수는 없다고, 폭탄이 사라지면 아마 자신들이 제일 처음 의심을 받게 될 거라며, 그럼 댐 근처에도 못 가보고 다들 철창신세를 지게 될 거라고 했다. 도희의 말에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듯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살점이 모두 사라져 앙상하게 가시만 남은 고등어를 콕콕 찔러대며 도희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미진이 좋은 생각이 났다며 이건 폭탄도 필요 없고 아무도 의심을 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승기가 그런 방법이 있냐고, 순천 역시 도희와 귀를 쫑긋하며 미진을 쳐다봤다. 


“일단 댐에 조그맣게 구멍을 내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 흙을 넣고 나무를 심는 거지. 나무가 자라면서 뿌리도 같이 자랄 거고 뿌리가 내리면서 댐을 파고들 거야. 많이 보지 않았어? 아스팔트에 뿌리 내린 나무 어쩌고 하는 그런 사진들. 그럼 댐도 분명히 빈틈이 생길거야. 문제가 있다면 폭파에 비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정도….”


조용히 듣고 있던 도희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남는 건 시간이라고 했고, 승기는 댐에 뿌리박힌 나무야 말로 제대로 된 시한폭탄이라며 아무도 나무를 폭탄으로 쓸 생각을 못할 거라며 미진을 추켜세웠다. “자 그럼, 만원씩 내.”


미진이 돌아오는 장날에 나무를 사야 한다고 했다. 일단 네 그루만 먼저 사서 시험을 해보자고, 굳이 답사 프로그램 날짜를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나무를 심으러 가자고 부추겼다. 다들 당장 한 푼이 아쉬웠지만 미진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 때였다.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주인 할머니가 앞치마 안쪽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미진에게 건넸다. 


“이건, 내 몫이야.”
그리고, 다섯 개의 술잔이 허공에 높이 솟았다.
“우리가 폭파 못 할 것은 없다.”


시장에서 삼삼오오 술을 마시던 이들이 그들을 쳐다봤지만, 이내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인호 울산민예총 문학위원장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