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세습경영체제와 하청노동자 중대재해

김형균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 기사승인 : 2020-02-26 09: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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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사회연대

위험의 외주화가 앗아간 노동자의 목숨

지난 2월 22일 토요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15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로 숨을 거뒀다. 노동조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사업장의 고질적인 불법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가 재해의 근본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노동조합은 회사 측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불법 다단계 하청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합의했으나 이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동안 노동부에 불법 다단계 하청고용구조 문제를 해결하라고 여러 차례 요청해 왔고, 최근 노동부 울산지청장이 방문했을 때도 사고 발생빈도가 너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불법 다단계 하청, 상습적인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국 한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막지 못하고 말았다. 사고현장에는 추락방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고소작업에 안전을 책임질 관리도 배치돼있지 않았다. 고인이 된 하청노동자는 서류상으로는 제1하청이었지만 실제로는 제2하청 소속이어서 노동조합이 문제로 지적했던 불법 다단계 하청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조선사업장의 불법 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사고에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6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조선사업장의 고질적인 불법 고용구조의 해결방안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없다.

재벌의 편법 세습경영체제

불법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자본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산업 호황기 때 많은 계열사를 거느릴 만큼 성장했지만 조선해양산업의 경기가 하락하자 2015년부터 구조조정하면서 재벌3세 세습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맨 먼저 현대중공업의 선박 A/S사업을 분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재벌3세에게 대표이사를 맡겼다. 글로벌서비스는 계열사의 A/S를 담당하기 때문에 손쉽게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다.


2017년, 노동자들의 반대투쟁에도 현대중공업을 4개사로 분리해 지주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오일뱅크와 글로벌서비스를 지주사에 붙여 세습경영체제를 만들었다. 2018년 3월, 재벌3세 정기선은 지주회사 지분 5.1%를 3540억 원에 사들여 정몽준과 국민연금에 이은 3대 주주가 됐다. 이때 지분매입 자금은 아버지 정몽준에게 3040억 원을 증여받고, 500억 원을 주식 담보대출로 빌려 마련했다.


이제 재벌3세 정기선은 1440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5년 동안 6회에 걸쳐 내야 하고 주식 담보로 빌린 500억 원도 갚아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에게 경영승계 자금 마련을 위해 현대오일뱅크 등을 이용해 지주사 배당을 늘리고 정기선이 대표이사로 있는 글로벌서비스의 임원보수 총액을 2017년 11억 원에서 2018년에는 93억 원으로 8배나 대폭 올렸다. 2020년에는 지주사 주식 1300억 원 규모를 자사주 형태로 매입해 소각하고 한 주당 1만8500원 배당을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결국 재벌총수 일가는 930억 원의 배당금을 챙기게 되고 지분율도 1% 올리는 효과를 거뒀다. 이렇게 그룹을 쪼개고, 붙여서 지분율을 늘리고 막대한 배당금에 임원보수 총액을 늘려 자금을 마련하면서 세습경영의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업을 재벌의 이윤추구 도구로 삼는 전횡 막아야

현대중공업그룹의 세습경영체제는 노동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반대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1400여 명을 징계하고 노동조합에는 약 100억 원에 이르는 손배 가압류와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일방적인 기성삭감 때문에 상습적인 임금체불이 이어지고, 계속되는 하청업체 폐업에 따른 고용불안, 다단계 하청구조로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했다고 판정해 208억 원의 과징금을 결정했지만 원청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수만 명을 거느린 기업은 사실상 사회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재벌총수 일가의 이윤추구의 도구가 될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이를 제어하지 못한 채 또다시 한 노동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제 더 강력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좀 더 촘촘한 제도 마련,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건설을 향해 투쟁의 칼날을 벼려야 할 때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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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균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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