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10-11 09: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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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페레 핀레이슨 공업지구에 있는 국립노동박물관 ⓒ이기암 기자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 박물관의 심장처럼 보였던 핀란드에서 가장 큰 증기엔진이 상설전시돼 있다. ⓒ이기암 기자


유럽 북쪽 끝자락의 공업도시 탐페레 


탐페레(Tampere)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190킬로미터 더 가야 만나는 내륙지방이다. 호수로 둘러 싸여 있는데 급류를 이용한 수력발전을 통해 대규모 공업단지가 만들어졌다. 도시 형성은 1775년 스웨덴에 의해 이뤄졌지만 ‘대북방전쟁’이란 이름으로 러시아와 스웨덴이 맞붙은 후 패배해 러시아 세력권으로 넘어갔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00년대 전반에 걸쳐 탐페레는 제지와 모직 분야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수력발전소 주위로 대규모 공단이 만들어졌고 이곳으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다. 19세기 중반 핀란드 노동자 중 절반이 탐페레에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탐페레의 섬유산업이 1990년대를 거치며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과거의 위용은 바뀌게 된다. 헬싱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였는데 이제는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에스포(Espoo)에게 그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에스포는 한 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휩쓸었던 노키아 본사가 있던 곳이다. 그럼에도 탐페레에 핀란드 국립노동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역사적으로 당연해 보였다. 기차역에 내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노동자를 형상화하는 동상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1946년에 건립된 레닌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혁명 이전 레닌이 오랜 시간 머물며 혁명을 준비했던 역사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1918년 핀란드 내전 중 적군과 백군이 맞서 싸운 가장 치열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 탐페레의 핵심 산업 중 하나였던 제지공장을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놨다. ⓒ이기암 기자

 

핀란드 국립노동박물관 베르스타스(Werstas)

핀란드 노동박물관은 1993년 11월에 문을 열었는데 핀레이슨 섬유공장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핀레이슨은 핀란드에서 대표적인 섬유기업이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이르러 주요 사업이 모두 매각됐다. 노동박물관이 있는 곳은 핀레이슨이 탐페레에 구축한 공장단지 안이었다. 8월 27일 취재진이 노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울라 로후넨(Ulla Rohunen) 관장이 입구부터 나와 반겨줬다.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핀란드 내륙까지 와서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데에 놀라워했다. 준비해 간 울산노동역사관의 도록과 자료집, 노동가요 앨범을 전달하니 매우 기쁘게 받으며 짙은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전체 전시 공간을 돌면서 안내를 맡아 주었다. 전시공간은 상설과 기획 전시로 구분되는데 상설전시는 20세기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줬다. 그 곳에는 과거 협동조합과 저축은행 그리고 인쇄소와 노동회관이 입체적으로 재현돼 있었다. 중앙 공간에는 현재는 사라진 직업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이어서 핀란드에서 가장 큰 증기 엔진 기관실로 안내를 했다. 1900년에 도입된 증기 엔진으로 핀레이슨 공업단지의 발전소에서 사용됐다. 박물관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마치 노동박물관의 심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자부심이 가득 담긴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 핀란드 노동운동의 역사도 입체전시로 구현하고 있다. ⓒ이기암 기자

 

노동 문화와 삶을 보여주는 기획전시

기획전시는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노동자 토요일’이란 제목을 달고 노동자계급의 술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매우 유쾌한 주제임에도 핀란드 사람들답게 진지하게 100년에 걸친 술 문화의 변천을 보여줬다. ‘노동자가 술을 마실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해당 시기의 금주와 음주를 둘러싼 대립을 담은 문서자료로 보여준다. 두 번째는 유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기획전이었다. 유치원 교사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보여주면서 19세기 말 첫 유치원 설립부터 현재까지 변화를 한눈에 보여줬다. 그리고 실제 유치원에서 사용된 물건들이 마치 작은 놀이터처럼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놓여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게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전시하고 있었는데 유치원교사협회 100주년을 맞아 협회와 협력을 통해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시했다고 한다. 두 전시 모두 노동을 바탕에 둔 문화와 삶을 드러내는 전시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도 담겨있었다. 술 문화는 말 그대로 노동자가 일과 후 휴식을 하며 즐기는 가장 중요한 취미인데 전시는 정치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있었다. 또 유치원 교사들은 여성 노동자로 사회 속 여성의 지위와 차별이라는 주제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전시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축적하는 방식도 참고할 만했다. 유치원협회와 공동 기획한 전시를 통해 박물관 관련 분야에 대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고, 전시 구성과 운용에서 협회의 후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빨래하는 노동자를 통해 노동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물 ⓒ이기암 기자

 

박물관장도 박물관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나라

전체 전시를 둘러본 후 울라 관장에서 노동박물관 운영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가장 먼저 설립과정에 대해 물었는데 로후넨 관장은 25년 전 개관과정 이전부터 작은 노동박물관이 여러 곳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국립박물관으로 만들어지면서 이곳이 중앙박물관의 역할을 맡게 됐고 작은 박물관들은 운영의 어려움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박물관의 물품이 노동박물관으로 기증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여러 곳이 통합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묻자 대답으로 나온 것이 ‘박물관노동조합’이었다. 관장 역시 조합원이라고 했다. 물론 중요한 지위를 맡고 있진 않다고 웃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전체 직원은 17명이며 우리로 치면 학예사에 해당되는 직무에 3명이 있고 전시 성격과 특징에 따라 일의 배분이 나뉜다고 했다. 어떤 경우는 박물관장도 기획에 적극 참여한다고 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 좀 더 궁금함을 표하자 핀란드의 경우 실업급여를 노동조합이 관리하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한다고 했다. 실업급여는 기본급여 외에 월급에 비례한 상대급여가 있는데 이는 노동조합을 가입해야 유리하니 자연스럽게 가입을 유도하는 셈이다. 또 이직과 해고 과정에 변호사를 지원하는 등 노동자가 겪을 위험과 부당함에 대한 장치도 마련돼 있었다. 

 

박물관 운영자금은 핀란드 교육문화부에서

베르스타스가 사용한 2018년 예산은 약 200만 유로(우리 돈 약 26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중 40%에 가까운 80만 유로가 교육문화부에서 국고로 지정돼 교부된다. 나머지 예산은 기증과 기부 그리고 탐페레 시에서 제공하는 것이 차지한다. 탐페레 시는 금액 뿐 아니라 건물, 부지에 들어가는 월세를 모두 부담하고 있었다. 관장도 시에서 지원하는 것이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 짚어줬다. 교육문화부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과 어린이에 대한 박물관 투어와 체험학습은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노동박물관 자체가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직무교육(직업학교, 실업계학교)과 관련된 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한다고 한다. 실제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워크숍이나 투어에 참여해 실제 기술을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외 노동박물관은 탐페레에 있지만 노동자료실과 도서관 그리고 연구포럼은 헬싱키에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퇴직노동자에 대한 구술을 비롯해 역사보존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있으며 굉장히 큰 컬렉션을 가지고 있고 서로 연계하는 접촉면이 있었다.

 

▲ 친절하게 박물과 전체를 안내해 준 울라 로후넨 핀란드 국립노동박문관 관장 ⓒ이기암 기자

 

▲ 20세기 노동을 보여주는 전시 속에 포함된 노동회관(노동자의 집) ⓒ이기암 기자

탐페레처럼 울산에도 노동박물관을

모든 취재를 마치고 박물관을 빠져나오면서 기념품 가게 벽에 일렬로 걸려있는 열쇠 꾸러미에 눈길이 멈춰졌다. 어떤 열쇠인지 물어보니 박물관을 준비하면서 폐공장 전체를 정돈할 때 나온 열쇠라고 했다. 천천히 들여다보니 생긴 모양이 다른 것처럼 열쇠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했을 사람들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탐페레는 울산과 겹쳐지는 것이 있다. 일단 수도가 아니라 최대의 공업도시라는 점에서는 완벽히 일치한다. 노동박물관을 인구 100만 명이 밀집한 헬싱키 수도권에 세우지 않고 그 5분의 1에 해당하는 탐페레에 세운 것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탐페레의 공업 중 사라지고 있는 것도 있고 새롭게 시작된 것도 있었다. 여전히 북유럽 내륙에서는 가장 큰 공업도시라는 별칭도 지니고 있다. 울산은 산업역사에서 탐페레에 덜 미치지만 1960년대 이후 압축적으로 고도성장했다. 최근 산업경기가 여러 면에서 부침을 겪고 있으나 변화를 떠안고 있는 발전해가는 도시다. 그리고 도시를 구성하고 산업을 발전시킨 주체는 바로 시민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라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 핀란드 국립노동박물관이 탐페레가 지닌 노동역사를 품었다면 울산도 배울 점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배어있는 노동존중의 상징들도 부러운 부분이다. 더구나 박물관장까지 노동조합원이다. 노동존중 척도는 그 부분에서 더욱 뚜렷하게 엇갈린다 할 수 있다.

 

▲ 노동박물관 기념품가게 벽에 걸린 열쇠 전시물 ⓒ이기암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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