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 다른 일상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09-09 09: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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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1. 1935년 4월 10일 동아일보


1935년 <동아일보>는 아들딸 혹은 동생과 누이를 경성으로 유학 보낸 부형들에게 사람 잘 만들어 줄줄 알고 보낸 유학이 돈 들여 불량아를 만드는 일이 되어 버릴 수 있으나 주의하라는 경고를 보냅니다. 왜 촉망받아야 할 어린 학생들이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일까요?

불량아를맨들지안토록 봄에 유혹이만타

어린 남녀는 마치 깨지기 쉬운 사기그릇과 같고 연약한 풀과 같이 성숙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세상을 모르고 무서운 것을 모르다가 실패한 후에 꿈 깨는 것처럼 놀래지마는 놀랠 때는 벌써 늦을 때입니다. 경성에서 사람 잘 만들어 줄줄 알고 기다렸다가 돈 처들여서 불량아를 만들었다면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것입니까. 부형께서는 끊이지 않는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식민지기 중등학교였던 고등보통학교는 학생에 대한 다양한 규율체계를 마련해 학생을 감시와 통제의 시선 하에 두고자 했습니다. 학생들의 일상에 대한 규율은 교내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복장 및 용모, 독서물을 감시하는 한편 학생들의 가정환경 등도 수시로 조사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자유연애가 유행하면서 풍기문란으로 인한 사회적 염려가 퍼지자 더욱 엄격한 통제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숙사 생활로 더욱 엄격하고 규칙적인 시간표에 맞춰 생활해야 했고, 심지어 학교 밖 출입을 금지하거나 편지를 검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격한 규율과 규칙 속에서도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학교생활을 즐겼습니다. 취침 시간에 강제 소등이 이뤄지면 옷장 속에 숨어 책을 읽기도 하고, 사감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편지나 쪽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또, 치마를 짧게 입고, 굽이 높고 볼이 좁은 구두를 신는 등 유행을 좇기도 했습니다.

2. 대구 여학생 일기


작년 대구교육박물관에서는 <여학생 일기>를 공개했습니다. 이 책은 총 232쪽으로 1937년 2월 18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약 11개월에 걸쳐 쓴 어느 여학생의 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대구 공립 여자고등보통학교에 1934년에 입학한 학생으로 일기장을 작성할 당시의 나이는 15~16세로 추정됩니다. 일기장에는 1937년 7월 시작된 중·일전쟁 전후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담겨있으며, 여학생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고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을 이전보다 철저하게 드러냈습니다. 조선말 사용을 금지했는데 교육과정에서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둠으로써 사실상 교육과정에서 퇴출했습니다, 


일기장은 모두 일본어로 적혀 있는데, 당시 학교 차원에서 일본어 상용을 규정하고 강제화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경어체이며 매일 담임교사에게 제출해 검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기 후반부인 1937년 7월 전후로는 병사 환송, 위문품 만들기 등의 이야기가 매일 등장합니다.

1937년 7월 16일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구일자동차장 앞에 갔더니 벌써 정렬해 있었습니다. (새벽) 4시경이 되자 용감한 병사들이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간다는 것을 알기에 그 병사들이 무사하기를 빌며 열렬하게 우리 일본제국의 국기를 흔들면서 봉축했습니다.

1937년 10월 9일

가사 시간에 재봉을 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는 중국에서 싸우는 용사는 여름옷 한 장뿐이니 경북의 위문품으로 조끼를 드리자고 해서 그 재단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로 평가되는 이 일기장은 2007년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교토 동지사 대학 글로벌 스터디즈연구과에 소속된 오타 오사모 교수가 구입한 것입니다. 2010년에는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읽는다’ 심포지엄을 통해 연구결과가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학생들의 불량한 생활을 걱정하는 어른도, 자유연애를 꿈꾸며 연애소설을 읽는 소녀도, 주어진 학교 교육을 충실하게 따르는 여학생도 모두 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았네요. 어느 한 시대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 조금 더 다양한 일상들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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