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장마진다

조숙향 시인 / 기사승인 : 2019-07-03 09: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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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아가, 너를 보낸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이렇게 장마가 지는 날이면 아주 이따금 네 생각을 하곤 하지. 다른 몸으로 태어나 이 세상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내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첫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났다면 지금쯤 성인이 되어 네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을 터인데...... 나의 어리석고 짧은 생각이 그곳으로 너를 보내게 하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고 내 자신을 합리화시켰던 지난날 앞에 할 말이 없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어미의 나약함에 분노해라. 그날 내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곱씹으며 네게 용서를 빈단다. 


그 시절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우리나라 인구를 감소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기 바빴단다. 예컨대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낙태수술을 하면 복강경 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위로금 3만 원을 주기도 하였단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구감소전략을 펼치고 있었다. 세계 인구가 50억 명이 넘고 인류가 인구문제로 심각한 상태에 처해진다며 유명한 석학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하여 장차 직면하게 될 인류의 식량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단다. 하필이면 그때 넌 내 몸에 안착되었지. 


당시 우리는 방 한 칸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처지였단다. 엄마 아빠와 네 위의 두 형제, 네 명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잘 수 없는 조그만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방이 너무 좁아 맏이는 머리맡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단다. 그나마 편히 잘 수 있는 자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란다. 더군다나 네가 세상의 빛을 보면 우리는 넓은 방으로 이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단다. 그렇다고 아빠가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구나. 아빠도 참 열심히 살아왔거든.


결국 너를 지우기로 결심을 했다. 산부인과 수술대에 누웠지만 차마 너를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단다. 창밖으로 웬 장맛비는 그렇게 퍼붓는지, 죄책감이 빗방울처럼 수술대 위에 있는 내 몸을 덮지는 듯했다. 나는 도망을 쳤단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정신이상자처럼 우산도 쓰지 않고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와 거리를 달렸단다. 비는 정수리를 때리고 등짝을 때렸지. 하지만 가능한 그 병원에서 멀리 달아나려 기를 썼단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를 잡으러올까 뒤를 힐끔힐끔 뒤돌아다보면서 말이야. 


그런데 아가, 결국 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변명하자면 나는 지쳤단다. 고진감래를 읊조리며 살아왔던 날들을 믿었고 착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을 믿었다. 그런데 당시 어떻게 된 세상인지 쉽사리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었단다. 네가 태어나면 셋째이기에 정부에서는 각종 복지혜택을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는 가난했다. 너를 키울 여력이 없었다. 우리 방은 4~5평 남짓했다. 몇날 며칠을 고심하다 다시 결심했다. 네가 학수고대할 이 세상의 빛을 진짜 거두기로 말이야. 그리고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지 않기로 맹세했단다. 


세월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혀끝에서 맴돈다. 현재 각종 미디어 영상매체나 포털사이트에는 하루가 멀다고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심각한 기사가 실리고 있단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치닫는가 하면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인구가 줄어들었다고 야단이란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내놓고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네 또래의 일부 젊은이들은 아이의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꺼리고 있단다. 너와 내가 이 시대에 하나가 되었다면 얼마나 축복 받을 일이었을까. 


해마다 장마는 찾아온다. 너는 오지 않는다. 너를 유산시키고 돌아선 날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가 지속되던 날이었단다. 살아오면서 너와의 만남이 한조각의 편린이라고 치부했다. 미안하다 아가야. 가냘픈 네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너보다 물질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신념에 치명적 독소가 이제야 보이는구나. 너를 사랑하지 못한 나를 원망해라. 신산한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 장마가 지나가는 동안 마음 곳곳에 한동안 곰팡이가 피어나겠구나. 


조숙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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