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10-02 09: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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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길을 걷다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의 학년을 가늠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유독 올해 여름에 눈에 띈 것은 학급 또는 학년 단체 티셔츠의 슬로건이다. 단체 티셔츠를 제작하는 이유랄 것이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라는 교육적 목적과 더불어 통제의 용이함, 단일 복장에서 오는 단정함과 같은 부수적 효과 때문이니 슬로건도 ‘최강○반’, ‘We Are the Best’ 등의 수준인 경우가 많다. 그 중 유달리 거부감과 함께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 “나보다 우리”라는 슬로건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데서 교사들의 고충, 즉 교권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보다 우리’라는 슬로건이 제시하는 손쉬운 해결책이 전체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나의 과잉 반응일까?


초등학교 교실은 전체주의로 운영되기에 안성맞춤이다. 교사가 제시한 규칙과 질서에 따라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하며,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푸코는 학교를 감옥에 비유한 바 있다. ‘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경계 짓는 기준과 질서가 있으며, 대체로 우리는 이것을 ‘도덕’이라고 부른다. (윤리와 구분되는) ‘도덕’의 함정은 합리성을 요구 받을 때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식으로 넘어가거나 “무조건 지켜야 하는 약속”을 가장한 파시즘으로 흘러가기 쉽다는 것이다. 학교는 다른 어떤 곳보다 변화가 더딘, 무척 보수적인 곳이다. 예를 들어 남학생 먼저 출석번호가 부여되는 것, 졸업식에 가장 어린 여교사가 시상보조 역할을 맡는 것, 중앙 현관에 학생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것처럼 관습적이거나 관례적으로 해 오던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의문을 제기하고 고쳐나가는 데에 어마어마한 저항에 부딪힌다. 하물며 ‘가족’에서의 변화는 얼마나 요원한 일일까.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는 저자 배윤민정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다. 학교보다도 더 ‘도덕’ 원리에 충실하며 논리와 합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집단.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처럼 가족 내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져야만 유지될 수 있는 집단. 최초의 ‘우리’ 또는 (혼인 후) 새로운 ‘우리’가 되는 집단인 가족. 이 책에는 저자가 가족 내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인 호칭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주버님-제수씨, 형님-동서 대신에 서로 ‘~님’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일인가? 호칭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호주제 폐지 때처럼 한국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도덕한 일로 해석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면 별거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군다고 치부한다. 나는 이처럼 극명한 간극을 통해 호칭이란 가족이 파시즘적으로 존립하게끔 만드는 ‘도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확신을 굳히게 됐다. 가족이란 모름지기 위계보다는 애정, 배려, 존중이 기본 가치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이런 점에서 많은 가족들이 애정집단이기 보다는 폭력·억압집단으로 존재하고 있긴 하다).


“일상에서 그렇게 따져 들어가는 게 무슨 소용이야? 자격지심 아니야?” 저자가 투쟁의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말이다. 그 까닭은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자기 안에서 되풀이 되었을 말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만 입 닫고 눈 감으면 아무 문제도 아닌 게 아닐까. 나 또한 일상에서 만나는 부당한 일들에 매번 갈등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문제 제기하고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스스로 나아질 생각이 없단 걸 명심하자.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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