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페미니즘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 기사승인 : 2019-07-24 09: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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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난 주말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인권 연수에 참여했다. 연수 내내 “인권은 10년 뒤의 상식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성차별 문제를 제기할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공격은 “옛날에 비하면~”으로 시작해 “요즘 성차별이 어딨어. 여성 상위 시대지”로 끝나는 말이다. 사실 신분제와 독재가 끝남으로 인해 모두의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유독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많다. 청소년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니 인권 따위가 웬말이냐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걸 페미니즘>은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여성이며 청소년인 저자들은 연령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차별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풀어냈다. 이들에게 사회는 물론 학교는 전혀 안전하거나 정의로운 공간이 아니다. 여성 청소년이, 특히 학교 밖 여성 청소년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일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10년 뒤의 상식”을 위한 것임에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이 지면을 이용해 지인의 고등학생 제자가 ‘양성평등의 날’ 글짓기 대회에서 쓴 글을 올림으로써 지지의 뜻을 보태고자 한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아는 남자사람친구가 내게 투덜거리며 말을 걸었는데, 그의 첫마디는 “요즘은”이었다. “요즘은 여자들 때문에 남자가 차별받는다니까. 역차별 시대야.” 나는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그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돌아간 나의 의뭉스러운 물음에 그 애는 가장 먼저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가고, 남자들은 강제징용되고, 월급도 쥐꼬리만해서 사회 진출에 대단히 불이익을 받는다는 답이 덧붙여져서 나의 귓가를 때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데? 남자애가 나를 빤히 보며 입을 열었고, “여자들도 군대 가야지.” 내가 멍청해 보인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사회제도적인 문제를 양산해낸 것은 이제껏 쭉 기득권층이었다. 노예와 귀족에서는 귀족이, 여성과 남성에서는 남성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는 선진국이. 불평등의 피라미드 속에서 발언의 자유가 있는 이들만이 오직 비난의 화살을 자유롭게 비틀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 변하지 않는 불완전성은 꼬리표처럼 차별을 종용한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고질병이 너무나 슬프다. 앞서 말했듯 나의 중학교 시절과 같은 일을 우리 모두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혹은 여러 번 겪었으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는 투명하지만 너무나 두터운 유리벽 속에 갇힌 기분마저 든다.


‘다들 문제라고는 하는데, 내가 예민해서 그럴 수도 있어’ 이 기분. 그러나 놀랍게도 그 벽을 깨부수는 방법은 바로 분노다. “짧게 슬퍼하고, 길게 분노하라.” 분노의 힘은 정말 놀라워서 좀 더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돕는다. ‘과장님 손이 잘못 스쳤던 거겠지...’가 아닌 ‘그 자식이 내 기분을 불쾌하게 했어’로. 그래서 나는 여성들이 더 많이 분노하기를 바란다. 차별받는 쪽은 화를 내도 된다. 당연히 된다. 화를 내지 않으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서라도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약자들을 살살 구슬리면서 더 기울어질 뿐이니까. 그리고 나는 남성들도 분노하기를 바란다. 남성들이 진정 여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라면 마땅히 차별을 위해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서 “남녀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 이루어진 사회로 부디 몇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언어에 “성평등주의자”라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당연한 단어의 사용보다 죄인을 비난하는 단어가 더 널리 퍼지길.

제솔지 페미니스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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