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방치한 암각화, 무슨 수로 유네스코 등재하나

백무산 시인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19-07-24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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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대곡천 암각화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 반구대 암각화
▲ 천전리 각석

 

연초에 울산시가 대곡천 암각화군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을 목표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확정하여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50년 동안 방치하다시피한 유적을 현재까지 어떠한 가시적인 보존조치도 실행한 바 없고, 그간의 연구 성과도 취약한데 무슨 수로 그것도 단기간에 세계유산에 등재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시에서 지금부터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은 이 시점이 아니라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한 2010년 직후에 만들어져 실행되었어야 했던 것이다. 잠정목록이란 해당 유산에 대해 지금부터 요건을 갖추고 절차를 거쳐 이후 정식 등록 신청을 하겠다는 예비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등재 목표에 맞추어 연구 성과를 체계화하고 보존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그동안 문화재청의 보존방안에 역행하면서 방치해 왔고, 그간의 연구도 계획적으로 수행되지 않았다. 사연댐의 수심에 암각화를 건져내자는 여론이 팽배했고 시민운동도 계속되었지만 이 시점까지도 여수로에 수문 하나 설치하는 가장 간단한 조치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지금부터 로드맵을 정하고 실행하겠다는 것인데, 신청서류를 확정해야 하는 1년여 안에 무슨 수로 모든 신청 요건을 갖추겠다는 것인가. 


우선 암각화의 객관적인 이해와 시민적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지적되어야 한다. 발견 이후 짧은 기간 안에 국보로 지정될 만큼 선사시대 기록물로서는 한반도에서 독보적인 유적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높게 평가받을 만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비교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장되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오해가 적지 않다. 삼성 브랜드 가치를 능가한다든가, 경주의 신라유적 전체와 맞먹는 가치가 있다든가 하는 주장은 매우 주관적인 수사일 뿐 아니라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주장에 들떠 세계유산 등재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주장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대곡천 암각화군의 어떤 점이 세계유산 등재의 추상적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되느냐고 물으면 전문가들도 대부분 최초의 고래사냥 기록과 다수 고래종의 표현, 표현 기교의 우수성을 꼽는다. 그러나 그 적정성 여부를 떠나 그러한 요소의 특별함이 대곡천 암각화군이 가진 다른 부족함을 메워줄 만큼의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선 규모 면에서 매우 작은 유적이다. 지금까지 세계유산에 등재된 암각화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의 기록이면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지만 인간들의 활동상과 심리적 표현물은 극소수다. 동적 활동상보다 정적 표현물이 많은데 그만큼 해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유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표현기술에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처럼 선사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표현에 있어서 창작적 표현이기보다는 재현적 모방에 가깝다. 예술적 가치보다 재현적 기록물로 더 평가받을 만하다. 그것이 기록물일 경우 당시 상황을 암시받을 수 없으면 단순 기록물이 되지만, 창작물이거나 예술품은 그 내용을 불문하고 미적 가치만으로도 보편적 가치를 획득한다. 기록물은 또 다른 유적이나 신화, 역사 기록과 어떤 맥락을 연결할 수 있어야 의미가 살아난다. 


암각화 그림을 예술성이나 재현 양식으로만 따질 수 없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의례나 주술적 대상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의례가 어떤 의례인지 어떤 상징성을 가지는지 어떤 암시도 발견하기 어렵다. 사냥주술이라는 설명이 많지만 사냥감들이 아닌 동물이 적지 않고 또 흔한 사냥감들도 잘 표현돼 있지 않은 점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구대 암각화는 표현 그 자체로서 해석하는 것은 한계를 가진다. 주변의 신석기 문명과 연결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울산이라는 지리적 환경의 특이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울산은 큰 강과 깊은 내만, 그리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온난한 지역이다. 지표면에 드러난 지진 단층대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있어 타 지역과 연결이 용이하다. 어로와 채집과 수렵 그리고 농업까지 겸할 수 있어 선사인들에게는 천혜의 땅이었다. 많은 인구가 밀집했으며 인류 이동의 중요한 경로였을 것이다. 농업을 도입하지 못했던 수렵과 채집의 시기에도 정착 생활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신석기 문명이 형성될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개념적 표현 능력과 천전리 각석의 추상 표현 기술에 비추어보면 이곳의 주민들은 매우 과학적인 사고와 상당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천전리 각석 역시 반구대 암각화와 동시대이거나 그보다 앞선 유적일 수 있고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다. 주술과 제의적 요소만으로 암각화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이다. ‘태화강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암각화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암각화 연구는 초보 단계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울산 암각화의 두 유적 중 하나인 천전리 각석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봐도 연구의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바위 면에서 가장 오래되고 비중이 큰 기하문양과 추상문양에 대해서는 발견 당시 수준과 다름없는 해설을 50년 동안 반복하고 있다. 농경사회의 생활상과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표현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근거조차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암각화 연구의 가장 기초단계인 도상과 형상 파악조차 정교하게 돼 있지 않다. 연구자마다 다르고 자의적 해석과 주장으로 혼란 그 자체다. 편년에 대해서도 단순 추정에 그치고 학계 안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추상문양을 고대 문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언어학자들의 견해를 근거로 제시하지 않는 이유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암각화 연구는 문화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암각화가 고고학의 배타적인 독점물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암각화에 대한 현재까지 연구 성과로는 보편적 가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큰비가 내리면 다시 물에 잠긴다. 이 지경에 무슨 유네스코인가? 보편적 가치는 누가 감별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올림픽 경기가 아니다. 출전하기만 하면 금메달감인데 출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아 봐야 소용없다. 무슨 서포터즈도 아니고 아무런 로드맵도 없이 350명 시민 홍보단을 모집해 놓고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홍보하라 할 건가? 무슨 궐기대회를 해서 해결할 문제인가? 


대곡천 암각화들은 분명히 인류사의 탁월한 보편적 소재들을 담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 독자적인 문명이 발생했다는 근래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암각화는 유적 중심이 아니라 한반도 인류의 문화사적 시원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고 충실하게 하는 가치다. 진정성 있는 보존대책도 가치화에도 소홀했으면서 보여주기식 세계유산 도전은 문화유산 보존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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