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가 지켜보는 기차역, 기장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19-09-25 09: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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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기장역 연혁


1934. 12. 16. 기장역(배치간이역)영업개시
1952. 12. 22. 공비 내습으로 역사 전소
1957. 5. 10. 역사 신축 착공
2001. 12. 23. 역사 개·보수
2016년 6월 27일 신축 역사 준공 이전(광역전철 개통 후 구역사 철거)

*기장역은 동해남부선 송정역과 일광역 사이에 있다. 1934년 12월 16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27일 광역전철 개통 후 신역사가 개장되고 구역사는 철거됐다. 지역의 교통 중심지로 광역전철 개통 후에도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운행되고 있다. 한때 기장 새벽시장이 유명했으며, 인근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철도관사가 존재한다. 인근 바닷가의 연화리해녀촌과 해동용궁사가 유명하다.

 

▲ 기장역 전경. 복선전철 준공에 맞춰 신축된 신역사


▲ 옛 기장역 전경(출처. 다음카페 행복한 산행)

 

▲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기장역 옛 철도관사. 전면 전경
▲ 기장역 옛 철도관사. 측면 전경

 

▲ 기장역으로 들어서는 무궁화호 열차. 기장역은 복선화 전철 이후에도 동해선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기장읍 당산나무

기장역에서 나와 완시교를 지나는데 큰 소나무 한그루가 언덕 위에 선 필자를 끌어당겼다. 연등이 걸린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조금 오르자 밑동이 굵은 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세월의 풍파에 가지가 많이 훼손됐지만 나무는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기장역과 인근 동네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무 아래엔 축 처진 가지를 떠받치는 듯한 제당이 자리하고 있어 한눈에 봐도 이 소나무가 이 마을의 수호신, 즉 당산나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 10여년 전 화마로 가지를 잃은 기장 당산나무


시원한 솔바람을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 앉아 땀을 식히자니 철없던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라 필자의 입꼬리를 피식 올라가게 했다. 때는 바야흐로 허벅지만 건드려도 청춘의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필자는 대입 학력고사가 코앞임에도 하라는 공부는 않고 엉뚱한 궁리 끝에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나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현상금이 붙은 당산나무 베기 작업’. 초록은 동색이라고 주변의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촌뜨기들로 용돈이 궁한 녀석들이었다. 친구 셋이 이렇게 저렇게 나무를 자르고 현상금은 똑같이 나누자는 내 말에 귀가 솔깃해져 바로 합류했다. 


우리가 도모해야 할 나무는 경산 ㅎ읍의 당산나무였다. 대구‧포항 간 산업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도로 한중간에 놓이게 된 나무였다. 문제는 이 나무에 현상금이 붙기까지의 기묘한 이야기였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나뭇가지를 찍다가 급사했다는 둥 나무 베기를 시도하던 인부들이 중상을 입었다는 둥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면서 급기야 현상금까지 붙었다는 것이다.

 

거사 당일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흡사 현상금을 쫓는 서부 영화의 건맨들처럼 비장한 얼굴로. 사전답사 격이었으나 여차하면 일을 도모하려고 집에서 쓰던 간벌용 톱 한 자루도 신문지에 싸 들고 갔다. 평소 같으면 목적지까지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하필이면 그날은 86아시안게임 성화봉송 행렬이 우리 지역을 지나가던 날이었다. 모름지기 거사는 사기충천했을 때 적토마처럼 달려가 일사천리로 도모해야 하는 법이거늘, 우리의 의기양양한 기세를 알 리 없는 버스는 세월아 네월아 거북이걸음이었다. 처음에는 필자와 친구들 모두 사기중천했다. 하지만 당산나무와 거리가 좁혀질수록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며 입술이 빠짝빠짝 말라왔다. 저 멀리 문제의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만 그런가 싶어 곁눈질로 살펴본 친구들의 안색 또한 정신이 반은 나간 사람들처럼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차창 밖 성화봉송이라는 세기의 구경거리도 안중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느티나무와 마주 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골촌뜨기 넷은 호랑이 앞의 강아지마냥 나무의 위엄 앞에 금방 제압당했다. 나무는 비록 확장공사 중인 도로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지만, 위풍당당한 풍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사람 셋이라야 겨우 안을 수 있는 밑동. 하늘을 가릴 듯 풍성한 가지, 나무는 감히 벽촌의 이름 없는 잔챙이들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꼬리를 내리기 직전, 수상해 보이는 아이들의 출현에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잠깐 들은 아저씨는 “대가리에 소똥도 안 벗어진 놈들이 어디 남의 동네 지신목을 베려고 하느냐”며 지팡이를 들고 호통을 쳤다. 우리는 아저씨의 불호령에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쳐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매표소 아주머니께 들은 바로는 나뭇가지를 베던 인부가 다친 것은 사실이지만, 현상금이 붙은 사실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당산나무는 얼마 전에 마을주민과 도로공사 측이 논의한 끝에 도로 한중간에 둔 채로 공사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시원섭섭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비로소 필자는 종일 전신을 짓누르던 당산나무의 중압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어느새 친구들도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향한 친구들의 책임 추궁이 시작됐다. 친구들이 아이스케끼를 빨다 말고 필자를 돌려세운 후 등짝을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 기장 연화리 해녀촌 모습
▲ 기장역 근처 공터 텃밭에서 김매는 할머니


솔바람 속에 앉아 옛 추억을 더듬다 당산나무 바로 옆 원광사라는 작은 암자에 들어섰다. 당산나무의 내력에 관해서 물어볼 참으로 들어선 암자는 특이하게도 2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절집을 지키는 작은 강아지가 야무지게 밥값을 하느라 짖는 통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마침 출타했다 들어서는 주지승 서각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합장으로 예를 표하고 스님에게 양옥 암자가 특이하다고 하자 절집의 내력을 일러주었다. 


13년 전, 원광사는 보신탕집이었다. 서각 스님은 평소 당산나무 옆에 보신탕집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보신탕집이 그만둘 때를 기다려 건물을 바로 인수하고는 부처님을 모셨다. 예전에는 보신탕집에서 개를 직접 잡았기 때문에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견공들의 유골을 많이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그나마 비명횡사한 견공들이 스님의 염불 속에 저승으로 가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자 스님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 기장역과 읍내를 내려다보는 당산나무와 원광사 서각 스님


스님이 당산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 기묘한 이야기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십여 년 전에 당산나무에 불이 붙었다. 화재 원인은 당산 바로 아래 텃밭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불이 당산나무로 옮겨붙은 것이다. 그나마 조기에 진화가 돼 당산나무 전체의 소실은 막았지만, 나무는 예전의 웅장한 자태를 잃어버렸다. 마을의 수호신이 불에 탔으니 기장읍민들이 난리가 났다. 하루는 군청 직원이 나뭇가지를 베기 전에 어떤 의식을 치르고 나무를 베야 하는지를 스님에게 물어왔다. 스님은 당산나무에 예를 갖춰 가지를 베게 된 연유를 여차여차 고하고 막걸릿잔이라도 올리고 작업했으면 한다고 일렀다. 하지만 정작 작업 당일 날 인부들은 스님의 충고를 까맣게 잊고 작업을 개시했다. 그런데 그날 그만 큰 사고가 났다. 나뭇가지에 오른 작업자가 위에서 톱질한 나뭇가지에 맞아 바닥에 떨어져 중상을 입은 것이다. 기묘한 것은 밑에서 작업하던 사람도 위에서 작업하던 사람도 그날은 뭐에 씌었는지 서로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당산나무와 얽힌 필자의 추억 한 토막을 꺼내며 스님에게 “전국 곳곳에 당산나무를 베다 다친 이야기, 급사한 이야기가 산재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쭈었다. 스님이 “신목이자 신주나무라고도 불리는 당산나무는 그 자체가 한 마을의 수호신”이라며 답을 이어갔다. 


관념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기도는 초자연적인 현상,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 현대 과학으로는 예측이나 설명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예를 들면, 염력으로 주사위를 자유자재로 만든다든지, 교통사고가 난 자식을 멀리서 직감하는 엄마라든지. 로또 번호를 가르쳐주는 조상 꿈 같은 것이다. 


당산나무는 수많은 사람의 염원이 응축된 곳이다. 기도란 시공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가진다. 나무에 신령스러운 힘이 작용하든 않든 수백 년 동안 한마을의 수호신으로 믿던 나무를 벤다는 것은 작업자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안겨준다. 이럴 때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의식이 필요하다. 장례나 제사가 산자를 위한 의식인 것처럼. 지나간 일에는 만약이란 단어가 필요 없지만, 그날 당산나무에 막걸리 한잔 붓고 나무를 베었다면 작업자는 아마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톱질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었다. 


스님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중에 마을 한중간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이 당산나무는 할배 나무고 저 나무는 할매 나무다”라고 일러 주었다. 할매당산나무로 가는 길에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세상 모든 풍파를 견뎌내며 이 마을 사람의 생로병사를 지켜봤을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침 기장역을 빠져나오는 무궁화호 기차를 배웅하고 있었다. 

 

▲ 기장 할매 당산나무

 

▲ 기장 연화리 해녀촌 조개 모듬. 이곳 해녀촌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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