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래 피는 봄날의 산책 - 청송 신성계곡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1-05-03 0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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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고택에 누워 빌려보는 풍경

수달래 핀 숲길을 온종일 걷고 며칠 머물다 갈 고택에 도착했다. 대문도 없는 담장 안으로 잠시 집을 비운 주인 대신 복사꽃이 먼저 반긴다. 열린 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늘은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편히 지내라고 마실 나간 주인분 전화가 온다. 오고 가는 낯선 관광객들이 지나다 들를 만한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너른 인심이다. 대청마루가 딸린 사랑방 문을 열고 이불 속으로 손을 넣으니 따끈따끈. 아침부터 아궁이 불을 넣는다고 했던 예약 확인 전화가 생각났다. 짐도 풀기 전에 온돌방에 누워 새소리를 듣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차경(借景)’이라고 한다. 빌려보는 경치.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누구나의 것도 되는 잠시 빌려보는 자연의 풍경에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경주의 최부잣집과 더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살았던 부호로 이름이 알려진 심호택의 송소고택이 있는 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이 며칠 묵어갈 주소다. 청송 심씨 일가가 1400여 년 전부터 세거한 집성촌. 사왈산이 감싸 안고 앞에는 신흥천이 남북으로 흐르는 명당으로 드라마 촬영장소로 알려져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덕천마을은 이름 그대로 찬소슬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99칸 대궐 같은 집 송소고택과 나란히 자리한 송정 고택, 찰방공 종택, 창실 고택 등이 10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남동향을 바라보며 크게 대문채와 안채, 별채와 크고 작은 사랑채, 그리고 사당으로 구성되며 각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솟을대문에 홍살을 갖춰 격이 높은 집을 상징했다. 품격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잠시 마을을 둘러본 봄날의 하루가 가고 밤이 온다. 무려 사월의 어느 봄밤이다. 시간을 거슬러 인적이 드문 둘레길과 숙소를 찾다가 이름 그대로 푸른 솔, 청송에 발을 디딘 것은 잘한 일 같다. 품위가 있는 유서 깊은 고택 마을에서의 밤이라니 그보다 더 우아한 봄밤이 있을까. 한지를 바른 방문 밖으로 달빛이 순하고 환하다. 소쩍새일까 검은등뻐꾸기일까, 이맘때면 그들의 울음소리는 늘 헛갈린다. 별이 손에 닿을 듯 스스륵 밤을 건넌다. 


청송 제1경 신성계곡 녹색길 탐사

청송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제주도, 무등산 일대, 한탄강과 함께 네 군데가 등재돼 있다. 청송이라 하면 주산지와 주왕산이 너무 많이 알려진 반면 지질 트래킹 코스로 손색이 없는 여러 명소의 이름이 묻혔다. 이번에 찾은 신성계곡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더 인적이 드물고 차량 통행이 없어 적막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자연을 느리게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신성계곡 녹색길 탐사는 3코스로 나뉘는데 안내 탐방소가 있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지질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이 부족하니 5일 전 예약하면 해설사와 함께 탐방도 가능하다. 세 코스 전부 여러 명소가 골고루 분포돼 있는데 다리가 불편하거나 많이 걸을 수 없는 아이들은 차로도 인접하게 둘러볼 수 있는 장소 접근성도 좋다. 계곡 초입의 바위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방호정(方壺亭:경북 민속자료 51)부터 인근 고와리의 백석탄계곡(白石灘溪谷)에 이르는 15㎞ 구간이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낙동강의 상류를 이룬다. 근처 주왕산에 비해 유명세는 없지만 청송 8경 가운데 제1경으로 지정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첫 코스로 시작하는 곳은 방호정이다. 광해군 11년 조선 중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 1576∼1665)가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무덤이 보이는 절벽 위에 지은 정자로 부모를 봉양하려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의미의 현판이 걸려있다. 방호정을 감고 돌아 흐르는 길안천을 따라 걷다 보면 징검다리를 만날 수 있는 절경이 펼쳐진다. 

 

▲ 방호정.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 조선 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가 생모를 생각하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따 이름 붙인 정자로, 푸른 바위와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벼랑 위의 절경지에 터를 잡았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들판으로 이어지고 야트막한 산을 20분 정도 오르게 되는데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한반도 지형의 숲을 강이 휘감아 흐르는 것이 보인다. 평야 지대를 자유롭게 곡류하며 흐르는 하천이 지반이 융기돼 침식이 활발해지면서 만들어지는데 감입곡류천이라 한다. 뱀처럼 흐른다고 해서 사행천이라고도 부른다. 바깥쪽은 흐름이 빨라져 침식되고 반대편은 퇴적작용이 일어나면 이런 지형을 갖게 되는데 우리나라에 여러 곳이 있다. 잎이 돋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 한반도 지형. 마치 한반도를 꼭 빼닮은 듯한 이 지형은 평야 지대를 자유롭게 곡류하며 흐르던 하천이 지반이 융기돼 침식작용이 활발해져 만들어졌다


마지막 3코스를 걷다 보면 물이 흐르는 낮은 계곡을 만난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백석탄이다. 희고 반짝이는 퇴적암들이 수억 년 동안 흐르는 물에 의해 마모되고 침식된 포트홀 및 생란작용, 이암편, 사층리 등 다양한 퇴적구조들을 생성해내 만들어진 곳이다. 풍광이 신비스러워 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인데 흐르는 물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한참을 앉아 쉬며 신성계곡 탐방을 마무리한다. 중간중간 꽃돌로 만들어진 징검다리며 어느 교장 선생님이 발견한 용각류 수각류 공룡 발자국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는 보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 만안자암 단애. 길안천 신성계곡 오른쪽 기슭에 형성된 하식애(河蝕崖)로, 적벽(赤壁)이라고도 불린다. 만안자암 단애는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분지 퇴적암으로 일직층 상부에 속한다.

수십억 년 시간이 다져진 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청송


며칠이든 머문 곳을 떠날 때 우리는 말한다. “담에 꼭 와야지”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게 되는 곳은 잘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기억 속에서 멀어져 처음처럼 다시 만나게 되는 것 말고는. 하여 글을 쓸 때 그 장소에 대해 미화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다. 소소한 것에도 어떤 공감이 일어 다른 시간 같은 곳을 걷는 벗들이 있을 테니까. 


이번 청송은 좀 알려지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낯선 우주에 불시착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주 정류장에서 생활하다가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에 프랑스 변두리 마을 옥상에 불시착했던 우주비행사가 나왔던 영화 <마카담스토리>가 생각난다.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하겠지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은 밟고 다니는 돌과 흙이 모두 수억, 수십억 년 시간이 다져진 길이어서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을에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꼭 이 길을 다시 걸었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여정의 여운을 기억하게 될까. 영화에서 불시착한 우주비행사는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쿠스쿠스를 먹으며 감동스러워 했다. 인생의 불시착은 우연을 만들고 그 우연은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 며칠 묵었던 숙소의 여주인이 떠나는 날 아침에 보이차와 다과를 내왔다. 한옥이 좋아 집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3년 동안 찾아다니다 이곳에 머무르게 됐다고 한다. 너른 마당은 일어나면 정갈하게 비로 쓴 흔적이 있었고 화단의 흙들은 촉촉했다. 눈뜨면 할 일이 기다리는 분주한 시골살이지만 무척 만족스러워 보인다.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라 혼자 묵을 수 있는 좀 더 작은방도 둘러보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내내 새 신부 한복 치맛자락 같은 이불 색이 눈에 어른거린다.

 

▲ 백석탄 계곡. 백석탄은 안덕면 고와리 길안천 신성계곡에 하얀빛의 눈부신 바위들과 계곡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포트홀이 형성됐다. 포트홀은 하천의 침식작용 중 마식 작용에 의해 하상 기반암에 형성된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다.

‘우리는 인생의 도리로 살아갈 것이다’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세운 마을터돌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시간을 거슬러 역사 위에 흐르는 오래된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떠나오는 날 마을을 다시 둘러보다가 비에 새겨진 글을 만났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세운 마을터돌이다. 수억 년의 돌과 수천 년의 강물과 수백 년의 나무가 이르는 말을 받아 적은 사람들의 말인 듯 미사여구가 부끄러워지게 하는 글을 옮겨보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태백산맥의 한줄기 아래 여기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의 마을터돌을 세운다”라고 시작한다. 


“서문 생략…우리 마을은 서기 1400여 년경부터 살아온 기록이 있으며 1950년경에 이르러 인구가 약 900여 명 정도가 되어 파천면에서도 제일 큰 마을이었다. 1960~70년대에 산업의 발달로 젊은 세대들이 약 200여 명 이상 서울, 대구, 부산 기타 등지로 직업을 찾아 떠났다. 우리 마을에는 예전에는 행세하는 성씨의 반촌으로 문중을 이루어 예의 바르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으며 청송 심부자 집을 위시하여 대농가 집이 많고 거슬들과 반밭들을 거의 차지하여 경작하였다. 지금은 많이 변하여 인구도 약 2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도리로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여 작은 실수나 오해는 언제나 있을 수 있으니 반성하여 용서를 구하고 이해하며 양보하여 서로 간에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서로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므로 여기 마을 터 돌을 세워 후손 만대에 이 뜻을 길이 이어 살아가길 바란다. 아무쪼록 나약한 후손들의 장래에 영광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숭배하는 선조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 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 덕천마을은 청송군의 서북쪽 파천면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조선 고종 시절 만석꾼 송소 심호택이 세운 송소고택을 중심으로 여러 고택이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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