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남은 것

조숙향 시인 / 기사승인 : 2019-10-02 08: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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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친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스페인에서 나는 알함브라가 보고 싶었고 여행을 하면서 보았는데 너는 무엇이 보고 싶니?” 친구의 질문에 어떤 확신도 없이 엉겁결에 ‘신’이 보고 싶다고 말해 버렸다. 사실 7박 9일 스페인 일주를 계획하면서 가우디를 만나고 싶었다. 그의 예술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를 바랐다.


말이 씨가 되었던지 친구에게 무심히 했던 말에 가우디의 예술혼보다는 ‘신’이 자꾸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구엘공원에서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모자이크 도마뱀 조각을 만지면서 행운은 신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서 느꼈던 은은한 숲 같은 색감에 소름이 돋으면서 불현듯 ‘용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특별한 ‘신’을 믿지 않는다. 또 ‘신’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친구의 물음에 ‘신’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한 데에는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기억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할머니의 신주단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는 줄줄이 손녀들이 태어나자 그 단지를 장독대에 모셔두고 아침저녁으로 튼실한 손자를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여섯째 여동생을 낳자마자 할머니는 쌀이 가득 담긴 신주단지를 마당에 힘껏 집어던져 버렸다. 신주단지가 와장창 깨지면서 쌀이 마당을 가득 메웠다. 어릴 때 내가 막연히 믿었던 ‘신’은 그날 할머니의 분노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후에도 할머니는 삼신을 용서하지 않았다.


청소년기 때는 교회에 다니면서 타의에 의해 ‘신’을 탐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단짝이었던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시절에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교회에 가면 과자를 얻어먹는 재미나 전도사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성서 이야기에 솔깃했다.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서 내 의지와는 달리 꿈이 좌절되고 굴절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느끼면서 ‘신’과 더불어 용서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신’이 나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존재라면, ‘용서’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일 것이다. ‘용서’를 어학사전에서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줌’이라고 정의를 내렸고, 백과사전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통한 의도적이며 자발적인 과정이며 쌓여가는 공격적인 마음을 가지고 복수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버리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즉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위해 쓰이는 용기라는 것이다. 


‘용서’, 내게는 삶의 화두 같은 말이다. 한평생 친정어머니를 울리고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많은 날들을 방황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부모가 되고 난 후에야 자식이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이 자가당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용서는 신만이 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감히 내가 신을 보고 싶어 하고, 용서를 운운하는 것은 언감생심이 아닐런지.


구름 속을 달렸다. 구름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게 사람의 형태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었다. 누워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앉아있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여럿이 함께 어깨동무를 한 것 같은 형상 등등. ‘신’이 우주 만물을 있게 했다면 용서는 저 흘러가는 인간의 형상을 한 구름의 모습이리라. 


때로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힘겨워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 칩거하는 내게 구름은 말한다. 세상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지만 스스로 용기를 내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라고.


조숙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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