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지혜를

김태근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 기사승인 : 2019-05-01 08: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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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헌법수호, 독재타도’ 많이 외쳐보고 들어보았던 외침이다. 그런데 낯설다. 구호가 메아리치는 장소는 광장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이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들이다. 2012년 국회의 무질서를 극복하고 선진 국회로 나아가자고 ‘국회선진화법’을 앞장서 만들었던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 하나. 2016년 2월 주권자들의 인권 침해와 국정원 강화 논란의 대상이었던 ‘테러방지법’이 국회의장(정의화)에 의해 직권 상정되었을 때, 우리는 9일 동안 총 38명의 국회의원(당시 야당)들에 의한 필리버스터 상황을 지켜보면서(세계최장 192시간), 아쉽지만 더 이상 국회에서의 거친 몸싸움은 없을 것이라며 위안삼기도 했다.


선거법과 일명 공수처법 등 4개 법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며칠째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 과정에 성희롱 논란, 사보임 논란 그리고 맞고소까지 언론은 ‘동물국회, 아수라장’의 거침없는 비판의 언어, 아니 혐오의 언어를 쏟아낸다. 그리곤 ‘대화의 복원’, ‘타협의 정치’를 언급한다.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의 아주 쉬운 자리를 차지한다. ‘그놈이 그놈’이란 소리가 들려온다.


2년 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나의 일상과 생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언론이 팩트와 사실의 전달을 넘어 자사의 이해를 중심으로 또는 진영논리의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온 상황과 가짜뉴스의 범람, 그리고 1인 미디어 시대 도래 등의 상황 변화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 중 하나였다. SNS 활동이 관종(?)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인지 아니면 나의 내면에 ‘인정욕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나의 생각과 활동(주로는 시민연대 활동)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게 된다. 대다수의 댓글이 그러하듯이, 호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유난히 격한(?) 거부의 목소리와 부딪히는 사안들이 있다. 현재 진행형인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기반으로 한 #민심그대로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만은 거침없는 비판의 댓글과 직면하게 된다. 정치선진국에 비해 적은 국회의원 수,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의 사례들(뉴질랜드 등), 양당체제가 가져오는 개혁의 지체 현상 등 선거법 개정의 논리는 ‘그놈이 그놈’이란 커다란 벽을 직면한다. 그리고 이런 벽은 극복과 넘어섬이 쉽지 않음을 몇 차례의 댓글 주고받기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왜? 정치가 그리고 정치인이 민생을, 그리고 주권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지 못함에 화가 나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화는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어온 것은 아닌지, 시민단체의 활동이, 그리고 정당의 활동이 이런 화를 부추기고 거기에 기대어 일시적인 지지와 박수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문해 보아야 한다. 정치뉴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식물국회’, ‘동물국회’, ‘특혜’, ‘부정부패’ 등의 단어 속에 우리는 ‘그놈이 그놈’이란 언어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아야 한다.


정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음을 촛불정부 2년을 통해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광장에서의 터져 나왔던 주권자들의 바람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가? 민의가 우선인 정치를 꽃피우기 위해서도 현행의 선거법으로는 어렵다는 국민적 합의가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12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4개월 동안 자유한국당의 선거법 개정 협상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가 있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학의 강간사건 등을 통한 수사과정의 복기를 통해 현행의 검찰 수사로는 고위공직자들의 부패의 뿌리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결론 속에 부족하지만 ‘공수처법’에 대한 합의와 제정을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 아니다. 잘잘못에도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다. 이런 것을 구별하지 못한 채, 아니 구별하지 않은 채 ‘그놈이 그놈’이라 욕만 하고 있다면, 민의와 동떨어진 여의도 정치는 영원할 것이다.


김태근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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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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