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들지만 물티슈는 쓰고 싶어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09-25 08: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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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아이가 태어난 후 사용한 물티슈가 결혼 전 내가 평생 쓴 양보다 훨씬 많을 듯하다. 하루에도 몇 번은 사용하는 것 같다. 밥을 먹고 지저분해진 아이 입을 닦고 기저귀를 교환 후 사용하고 손을 닦는 데 또 사용하고, 예전에는 걸레나 행주로 닦던 바닥이나 식탁도 이제 물티슈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낭비가 너무 심한 것 같아 걸레나 손수건을 써보려 했으나 그마저 하루가 지나니 다시 간편하게 뽑아 쓰고 버리는 물티슈에 손이 간다.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진 몸은 다시 불편한 일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물티슈나 일회용 기저귀가 없던 시절에는 빨아서 다시 썼을 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보고 아이 똥 기저귀를 빨아서 쓰라고 한다면 차라리 군대를 다시 입대하겠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아이의 선택은 아니다. 아이는 나보고 “아빠, 내가 똥 싸고 나면 냄새가 나도 아빠 비위도 약하니 그냥 편하게 물티슈, 일회용 기저귀 사용해요”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내가 좀 편해 보자고 쓰는 것이다. 아이는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하루하루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을 소진하는 주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고작 세 식구 사는데 이렇게나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오는 걸 보며 깜짝 놀라곤 한다. 한 가정에서도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한 도시, 국가 또는 세계로 눈을 돌리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올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나의 생존과 유흥을 위해 사용한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 일회용품을 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디젤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그저 나의 욕구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소비하기도 한다. 


내가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히 인지했다. 환경파괴를 염려하고 쓸데없는 토목 사업에 분노를 하지만 정작 나의 생존은 환경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행동도 아주 반환경적이다. 생각 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불일치다.


스웨덴의 십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 그는 한동안 등교도 거부하고 어른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시위하다 유명해져서 이번에 뉴욕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온실가스의 주범 중 하나인 비행기를 거부하고 태양열 요트를 타고 2주간에 걸쳐 미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창 외모에 예민할 나이에 옷도 사 입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지구를 그만 파괴하고 당장 변화를 이끌 행동을 하자고 어른들에게 다그친다. 생각과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한 그녀의 진정성에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감동하고 그 길에 동참한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큰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중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여전히 환경보단 성장만을 외친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들이 환경과 기후변화에 관심을 조금씩 높여 간다면 그들도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분명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도 친환경적인 생산 공정과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정치는 표만 되면 뭐든지 하고 기업은 돈만 되면 뭐든지 하는 곳 아닌가.


나도 되도록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육식을 줄이고,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당장 오늘부터 시행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면 분명 육식을 좋아하고 로켓배송을 즐기는 아내에게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주위에 환경 전도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이제 아빠인 나는 아이가 컸을 때 어떤 세상을 물려줄까도 생각을 해 본다. 겨울과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뿌연 미세먼지로 아이에게 마스크 사용을 명령하고 실외활동을 자제시키며, 그저 아빠가 어릴 땐 하늘이 말 그대로 하늘색이었다고 추억 팔이나 할 것인가, 아니면 파란 하늘과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하는 세상에서 아이와 같이 마음껏 뛰어 놀 것인가.


툰베리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이미 불이 났다. 불을 끄기 위해선 불구경 그만하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야, 내가 죽을 때까지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그만 버릴 때가 되었다. 아이가 있는 나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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