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과 직거래 유통 채널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0-02-26 08: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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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농산물의 직거래는 농민과 소비자 간의 직접 거래를 뜻합니다. 물론 대면 거래는 아니고 매개를 거치게 되는데 SNS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우 단순한 유통방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간접거래가 되는 것이고, 매개되는 경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상호 간의 정보교환이 필수적입니다. 이때 교환되는 정보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전제된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품질과 가격의 합리성에 거래조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경제가치인 품질과 가격의 상관성보다는 부수적인 사항에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 일어서라, 토종 씨앗!


특히 농산물 구매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소비자의 심리요인은 가격, 신선도, 품질, 수월성, 친분, 신뢰도 등에 의해 움직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를 오랫동안 해온 농민으로서 판단해보면 위에 든 요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가격이고 가장 낮은 것이 신뢰도입니다. 물론 위의 요인들이 일방적으로 우선순위를 갖는 것은 아니고 상황과 여건에 따라 그 가중치가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순서대로 작동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비자의 이러한 구매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직거래에 관심이 있는 농민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성향을 깊이 새겨둬야 합니다. 우리 농민들이 직거래 초기 단계에서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직거래 시장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 또한 친분과 신뢰도에 경도돼 소비자로서의 이해관계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다양한 직거래 시도에서 쉽게 이탈했던 경험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체계화된 농산물 시장 구축이 실패함에 따라 로컬푸드 운동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소비자와 생산자가 소외되는 양상이고, 로컬푸드와 그 매장이 대안이 아니라 하위 유통 채널로 전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농민과 농업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직거래 운동이 다시 활성화돼야만 합니다. 기존 유통구조에 의존해서는 중소농 생산자의 소득구조를 개선할 방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유통 루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유통 채널은 청과법인에서 운영하는 농산물경매장의 가격 결정권과 품질감별 방식에 종속돼 있어 그렇습니다. 다양한 형태이지만,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유통 시스템은 오로지 유통수익에 복무할 뿐 생산자나 소비자의 권익이나 이해충족에는 무관심합니다. 많은 분이 대안 유통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거나 기존 유통 시스템의 하위구조로 편입되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개 농민이 직거래로 일정한 소득구조를 얻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어서 자라라, 고추야


우선 농산물 직거래 유통의 핵심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최근의 유통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DTC라는 것이 있습니다. Direct to Consumer의 약자인데요. 글자 그대로 풀면 직거래라는 뜻입니다. DTC는 중간 단계 없이 온라인으로 직접 고객과 연결하고, SNS를 통해 입소문을 확산시키며, 그로부터 얻게 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 전략을 세우는 기법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들고 고객 반응을 조사하고 제품 구매고객의 재구매율을 파악해 다음 제품 개발과 주문에 반영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농민이 주먹구구로 SNS를 통해 직거래를 창출하려는 노력과 똑같지 않습니까? 다만, 주로 공산품에 도입된 DTC 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데이터입니다. 직거래가 한 번 일어날 때마다 데이터가 쌓입니다. 중요한 것만 추리면, 구매한 소비자의 성별과 대략적인 나이, 거주지 등입니다. 구매과정에서 파악되는 성향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직거래가 n번 일어났을 때 n가지의 데이터가 수집되는 것이죠. 분류가 가능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분류를 통해 직거래 소비자의 유형과 성향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고객 서비스의 맥락을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농산물 품목 선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한가해 보이는, 그러나 눈코 뜰 새 없는 육묘장


다음으로는 M2C(Manufacturers to Customers) 유통 방식이 있습니다. 이 역시 직거래의 한 방식인데 일종의 주문자 생산방식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공격적입니다. 제조업에서 도입하는 방식이지만, 농산물에도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즉, 소비자의 수요 정보를 중간과정 없이 직접 얻어 맞춤 생산을 하며,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농가와 협업해 다양한 농산물 생산과정을 확보하고 다양한 농산물을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미리 생산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는 거래 당사자들 간 직접거래의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보입니다. 관건은 소비자의 수요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가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농산물 직거래에서 M2C는 DTC 다음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DTC나 M2C는 모두 ICT 기술에 기반을 둔 유통 단계 축소 형태입니다만, 비교적 규모가 작아 운영이 유연한 농산물 직거래 유통에 적용할 경우 ICT 기술에 크게 의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소비자의 농산물 구매 경로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2019년 ‘칸타 월드패널 사업부’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의 식품 온라인 구매 금액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슈퍼마켓 구매에서 온라인으로 24.2% 증가했고, 대형마트에서 40%, 일반 상점에서 9.1% 온라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식품 시장에서 아직은 일반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농수산물 상점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채널이 전년 대비 가장 높은 24.4%의 구매액 증가율을 기록하며 빠르게 금액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전년 동기간 대비 구매액 성장률이 30%에 육박한다는 점은 소비자의 뚜렷한 온라인 경향성을 말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위에 든 통계는 농산물에 국한된 조사 결과도 아니고 온라인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의 온라인 유입에서 일반 대형마트의 온라인으로의 구매액 유출이 63.4%에 달하고, 슈퍼마켓도 12.1%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농산물의 온라인 직거래 가능성은 오로지 조직화와 체계화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시장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 천혜의 거름, 억새


중소농 자영 농민에 국한해 말씀드린다면 이와 같은 추세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엇보다 일반화된 농산물 규격화가 안고 있는 전반적 품질저하나 맛의 편향성, 또는 우려되는 안전성을 극복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입니다. 대량생산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소규모 경작이어서 소비자에게 매력 있는 농산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실 있는 품질 고양을 일차 무기로 삼아 대규모 유통의 허점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생산자 사이의 연대입니다. 동지애를 나누는 동업자 의식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방식을 공유하면서 협업과 분업을 함으로써 농산물 출하의 공백기를 최소화하고 직거래 시장을 풍성하게 구성하는 연대를 말합니다. 가능하다면 생산자 간에 논의를 통해 다양한 농산물을 계절별, 종류별로 묶음형(번들)으로 출시하는 것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 소비자의 호응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농민이 생산과 유통을 겸해야 한다는 것은 질곡입니다. 많은 농민이 농업기술센터에서 마케팅을 배워야 하고, SNS를 잘 하는 방법마저도 숙달해야 한다는 현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농민의 자구책을 거든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농민은 살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농산물의 직거래 유통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좁으나마 실현 가능한 활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서두가 길어져서 농산물 직거래 유통 채널 운영에 필수적인 중재자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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