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시간을 돌려주자

김미진 울산형마을교육공동체 TF팀장 / 기사승인 : 2019-05-15 08: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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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보드게임 세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모들도 어린이날은 어쩌면 특별히(?) 선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이들과 놀이공원을 가기라도 했을까? 어버이날과 가까이 있어서 가족들이 다 모이다 보면 용돈으로 대체하는 집들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 놀 시간이 없다. 오후 2~3시까지는 학교 수업, 마치고 나면 방과후학교 수업을 한다. 그 다음엔 학원에 간다. 부모가 가라고 해서 억지로 가기도 하지만 학원을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거나 어릴 때부터 몸에 밴 학원 생활이 이미 내면화가 돼버려 아이들 스스로 원해서 간다고들 한다. 시험 기간이라도 다가오면 그나마도 없는 시간이 더 없다. 방학도 방학 같지가 않다. 이런 와중에 ‘교육’을 말하며 4차 산업혁명이니 미래 교육이니 창의력 있는 아이들, 꿈꾸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편해문 놀이운동가는 ‘놀이밥’이라는 말을 썼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과 같은 것이라 했다. 다른 건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밥은 우리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밥을 제때 못 먹으면 허기가 진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밥이란다. 제때에 놀지 못하면 그 허기가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나타난다는 것이다. 친구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고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는 게 어쩌면 제때 충분히 놀이밥을 못 먹어 그런 거라 한다.


내가 여지껏 살면서 그래도 잘한 일 중에 하나, 아이들에게 잘 해준 것 중의 하나가 ‘시골’에서 아이를 키운 것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수 있는 시간과 자연이라는 공간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심해~”하는 말은 도시 아이들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시골 아이들의 심심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계속 이어지는 프로그램들에 자신을 빼앗기고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에 비하면 시골의 심심함은 그냥 ‘심심함’이다. 키즈 파크도 없고, 피시방도 없고, 학원도 없고, 그 흔한 문방구마저 없으니 아이들은 그냥 심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네 형들이랑 언니들이랑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쏘다닐 수밖에 없다. 하릴없이 학교에서 집까지, 동네 형네 집으로 왔다리갔다리하며 걸어 다니는 게 시골 아이들의 일상이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노는 궁리들을 하게 된다. 아직 5월인데도 햇살 좋은 오늘 같은 날엔 어김없이 아이들이 계곡을 찾아 논다. 비 오는 날엔 마당에 팬 웅덩이가 놀이터가 되어 비를 쫄딱 맞고 놀기도 하고, 밤이 되면 머리 위로 수없이 쏟아지는 별들을 무심히 쳐다보며 평상에서 다리를 흔들며 누워 논다. 그러다 그러다 정말 더 할 게 없으면 책을 스윽 꺼내 읽기도 한다. 정말 정말 심심하면 책도 읽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클 때만 해도 그런 모습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시골 아이들도 바쁘고 시간이 없더라. 온갖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아이들을 기다린다. 놀이도 프로그램으로 줄 서 있다. 도대체 심심할 시간이 없다.

 
심심함의 시간들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의 주인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해 주는 시작이 아닐까. 심심함을 못 견디고 집을 나선 아이들이 해가 빠지도록 놀다가 와서 엄마한테 혼도 나고, 친구들과 요런 저런 놀이를 하며 갈등하고, 풀고, 배려를 배우고, 친구와 함께 하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삶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삶을 경험하게 되는 데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그 심심함을 거세하고 나니 아이들은 계속해서 묻는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이제 뭐해요?”, 쉬는 시간이 되어도 “이제 놀아도 돼요?”...


아이들에게 시간을 돌려주자. 노는 시간을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들의 것을 돌려주자. 아이들은 내일을 준비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과 함께 오늘을 사는 동시대의 사람,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니 우리가 허락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거세의 권한은 더더욱 없다.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김미진 울산형마을교육공동체 TF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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