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고, 비우고

강현숙 시인 / 기사승인 : 2019-05-15 08: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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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사람마다 삶의 힘든 현실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나 보다. 그 현실에 대한 정답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따라 다 해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큰 고비가 찾아오는데 이삼 년은 그 문제와 맞닥뜨려 부딪치고 그 뒤로 사오 년은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으며 해법을 위한 자신만의 대답에 이르고 그 뒤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한 수양의 길에 오르게 되는 듯하다.


벼랑 끝에 다다른 자신에게 누가 나를 이 벼랑으로 오게 했는가 물으면 그 벼랑을 벗어날 방법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한다.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벼랑을 기어오르는 방법을 터득해서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무척 힘들어 지쳐가는 지인에게 이삼 년 벼랑 끝이라 생각하고 금방 끝날 싸움이 아니니 체력을 기르면서 끝까지 인내심으로 버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까지 십 년 정도 걸린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방해하는 자신의 성질을 반영하는 세상을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십 년 정도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자연 속에서 나약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은 이런 해법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늘 빌고 또 빈다. 두 번 다시 자신을 벼랑으로 데리고 가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어차피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 속에 있는 우리는 삶이 곧 죽음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니 빌어도 소용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비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5월 12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특별히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가던 대로 이참에 한 번 떠날까 싶었다. 안동에 오래된 봉정사를 찾아가고 싶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하고 벼르기만 별렀던 화순 운주사에 다녀올까 싶기도 했다. 이전에 한창 절에 다니며 여러 가지를 빌며 달래며 살아오시던 엄마가 어느 날 내게 아무 소용도 없다고 한탄을 하셨던 적이 있다. 그렇게 소원을 빌고 빌었는데도 들어주시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사 남매를 키우며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엄마는 무엇을 그렇게 간곡히 빌면서 살아오셨던 것일까.


언젠가 빌어도 소용없더라는 이에게 한마디 하기를 그건 비는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비느냐고 하기에 오래오래 그것이 성취될 때까지 원망하지 않고 기다리며 간절하게 빌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던 적이 있다. 아침에 뒷산으로 산책을 갈 때면 내려오기 전 절을 향해 소원을 늘 빌었다. 때로는 들어주고 때로는 어긋나고 소원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성취되면 감사하다고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치가 그러려니 다시 끝도 없이 빌고 비는 것이다.


그렇게 빌면서 완전하지는 못 하지만 자신을 삼가고 근신하며 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무언가를 이루고 해내겠다는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곤 한다. 앞으로 해 낼 일에 대한 마음을 소망하기보다 지금 할 일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전에 동해안 바닷가에서 우연히 동해안 별신굿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사람이 무언가를 빌며 살아간다는 일은 어쩌면 원초적인 본능에 가깝다. 발 딛고 살아가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좀 더 숨 쉴 만한 곳으로 옮겨가기 위한, 망자를 천도하려는 씻김굿에 가깝다. 과거의 자신의 죄를 씻어내며 발 딛은 이곳에 대한 평안을 빌고 또 비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쌓인 형체 모를 원한과 분노를 씻어내는 빎인 것이다. 어쩌면 진정으로 빈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비워내는 길일 것이다. 텅 비어 형체도 사라질 아슬아슬한 그 지점에 자신을 놓아야 하는 길일 것이다.


요즘은 자꾸 자신이 텅 비어지는 순간을 얼핏 보는 일이 느껴지면서 그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아직 한없이 부족한 내게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멀리 떠나서 빌고 와야 될 듯하다. 비워야 할 듯하다. 빌고 비우고 다시 비는 것이 사는 것이지 싶다. 잠시 그 빈틈으로 새소리도 차오르고 또 그 빈틈으로 환영인 줄 알았던 초록새 한 마리도 어느덧 날아와 새로 사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강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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