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 서시의 민낯을 보다

박종범 자유여행가 / 기사승인 : 2019-05-15 08: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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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8대 고도를 가다

“서호 풍경은 천하제일입니다. 호수 깊이는 두어 길이 넘으나 맑고 조찰(똑똑히 꿰뚫어 봄)하여 물 밑의 돌과 모래를 역력히 엿볼 수 있고, 사면의 기이한 봉우리들이 이루 형용하지 못합니다. 호수 에음(둘레)이 40리를 넘지 못하는데, 예로부터 열 가지 경치를 일컫고, 호수 가운데 10리 언덕 양쪽으로 버들과 도리(복숭아와 자두)를 섞어 심었으니 기이한 경치를 상상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 묘당이 있어 옛 어진 사람을 제사하니, 당나라 때의 이필, 백낙천과 송나라 때의 소동파, 임화정입니다. 근년에 황상이 네 번을 거동하여 폐한 정자와 무너진 누관을 차차 보수해서, 전에 비하면 더욱 장려합니다.”(홍대용 <을병연행록> 중 항주의 선비 반생이 했던 말에서) 

 

▲ 황저우 서호. 서호라는 이름은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항저우의 얼굴은 역시 서호다. 서호란 이름은 왕소군,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히는 서시의 이름에서 연유했다. 항저우에는 서호가 있어서 비로소 항저우가 된다. 그만큼 항저우 사람들의 서호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넘쳐난다. ‘맑은 날의 서호는 서시가 화장을 한 모습이요, 비 오는 날의 서호는 서시가 민얼굴을 한 모습이다’라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서호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산, 강과 호수가 잔잔히 전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서호는 조용한 때에 호수 주위를 산책하거나, 안개 낀 아침이나, 저녁노을이 질 무렵, 특히 달빛 아래 보는 경치를 최고로 친다. 이른 봄에 서호를 찾아갔지만 저녁노을 속에서 쪽배에 몸을 싣고 간장을 끊을 듯이 애잔한 비파 연주 ‘서호의 봄’을 들으며 소흥주를 마시는 호사를 아직 누려보지 못했다. 강남지방의 2월의 날씨는 한국으로 치면 3월 중순이다.


한낮의 날씨는 겨울 잠바는 물론 두터운 도꼬리를 벗어야 할 만큼 등에 땀이 뱄다. 레이펑탑(뇌봉탑)을 내려와 장교, 단교, 서령교, 추근 묘역까지 무려 다섯 시간을 걸었다. 짙은 안개에 가린 서호의 풍광은 몽환적이었고, 발아래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살은 살그머니 다가와 내 가슴을 쳤다.


서호에는 ‘빠이디’와 ‘쑤디’라는 두 개의 유명한 제방이 있다. 빠이디는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가 축성한 제방이고, 쑤디는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항저우의 지방관으로 재임 시 호수가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 쑤디는 2.8km에 이르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특히 가로수 길이 아름다운데 ‘소제춘효’다. ‘봄 안개 너머로 떠오르는 버드나무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는 뜻으로 ‘서호10경’중 하나다.


서호의 쑤디가 시작되는 곳에 소동파의 동상이 홀로 서 있다. 머리를 높이 들고 눈은 저 멀리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북송의 수도, 카이펑 ‘개봉부’에서 만난 소동파의 동상도 같은 모습이었다. 소동파의 자는 ‘자첨’이다. ‘멀리 내다본다’는 뜻이다.

 

▲ 가로수 길이 아름다운 쑤디 제방


한편, 소동파가 제방을 완성하자 이를 감사히 여긴 항저우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가져다주었는데, 그 많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소동파는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다. 똥뽀러우(동파육)는 돼지고기를 네모지게 썰어 껍질째 살짝 튀겨낸 뒤 설탕, 간장, 대파, 황주를 넣고 국물이 쫄 때까지 약한 불에 오랜 시간 고아낸다. 이렇게 쫄인 돼지고기는 물에 살짝 데친 청경채에 싸서 먹어야 제맛이다.


레이펑탑(뇌봉탑)에서 바라보는 저녁 낙조를 ‘뇌봉석조’라고 한다. ‘서호 10경’ 중 하나로 꼽는다. 뇌봉탑 위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서호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40위안(7000원)을 내고 계단을 이용해 뇌봉탑에 올랐다. 3층 전시실에는 벽을 에둘러 목재 부조상이 전시돼 있다. 모두 백사전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한 부조상인데 표정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단교’ 위에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 천년 묵은 백사(백소정)와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선비 ‘허선’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꽤 인상 깊었다. 이 부조상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연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6층에는 뇌봉석조를 예찬한 문인들의 시가 전시돼 있다. 이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청나라 건륭제가 쓴 시다. 건륭제는 철인 황제로 칭송되는 로마의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황제였다. 그가 평생 사랑했던 것은 신강위구르 출신의 젊은 여성 ‘향비’와 강남지방이었다.


그러나 향비는 젊은 황제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건륭제가 조금이라도 다가서면 칼을 빼 접근을 거부했다고 한다. 향비에 대한 연모의 정을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황제의 모습을 보다 못한 황태후는 건륭제가 궁전에 없는 틈을 타 환관을 시켜 향비의 목을 졸라 죽였다.


이때부터 건륭제의 극진한 향비 사랑은 그가 평소 끔찍이 여기고 좋아했던 ‘강남앓이’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6차례에 걸쳐 강남순행을 강행한다. 그는 강남의 산과 나무, 호수와 강을 가슴속에 품었고 항상 그리워했다고 한다.


서호에는 ‘백사전’의 전설이 전해진다. 서호에서 천 년을 보낸 백사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 하는데, 이 절세가인의 이름은 ‘백소정’이었다. 비 오는 어느 날, 서호를 찾아온 선비 ‘허선’은 백소정을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요괴 퇴치사 법해선사가 허선에게 “당신의 아내는 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끝내는 허선을 진산사로 납치해 승려로 만든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 허선을 찾으러 온 백소정은 법해선사와의 무공 대결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인정머리 없는 법해선사는 백소정을 서호에 있는 뇌봉탑(레이핑탑) 아래 가두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참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법해선사의 처신을 두고두고 미워했다. 또한 백소정과 허선의 첫 만남에서 허선이 백소정에게 우산을 빌려주었던 일을 기념해 연인 사이에는 우산을 사주거나 빌려주지 않는 풍습이 남게 되었다. 우산은 이별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서호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한다. 뇌봉탑의 벽돌이 영험하다는 민간신앙이 전승돼 오랜 세월 사람들이 벽돌을 빼내 가다 보니 마침내 1920년대에 이르러 탑이 무너졌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탑은 2002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다시 세워진 뇌봉탑은 동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뇌봉탑은 무너지는 일 없이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서호 동남쪽에 있는 ‘단교’는 백사전 전설에서 백소정과 허선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다. ‘단교잔설’은, 아치형 다리에 눈이 내리면 다리 가운데 부분의 눈이 먼저 녹아서 멀리서 보면 마치 다리가 끊어진 듯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교는 ‘서호 10경’ 중 하나다.

 

▲ 소동파 동상


법해선사의 박해로 허선과 헤어지게 된 백소정은 이렇게 말을 한다. “단교는 끊어지지 않지만 내 애간장이 끊어지는구나.” 단교는 왠지 이별의 아픔이 짙게 배어있는 이름 같다. 백사전 이야기는 사랑으로 표상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도덕과 종교, 권위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서호 동남쪽에 있는 장교공원 안에 있는 ‘장교’는 백사전 못지않은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다. 이 전설을 두고 중국의 여러 곳에서 서로 자기 고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연고권을 다투고 있다. 서호에 있는 장교는 양산백과 축영대가 작별하던 다리로 이름과 달리 9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짧다. 항저우의 만송서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축영대는 결혼하라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훗날을 기약하며 양산백과 헤어지게 되는데, 이곳 장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거듭 배웅하며 18번이나 오갔다고 한다. 사실 양산백은 가난한 선비였고 축영대는 남장 여인이었다.


단교에서 서호 강변을 따라 서남쪽으로 한참 걷다 보면 ‘서령교’가 나온다. 다리 옆 ‘모재정’이라는 정자 안에 무덤이 있다. 남북조 시대의 기생 소소소에 얽힌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녀는 어느 명문가의 자제와 사랑에 빠지는데 두 사람이 사랑을 맹세한 장소가 이곳 서령교였다. 하지만 신분의 장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결국 연인을 떠나 보내고 이별의 아픔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소소소에게 운명처럼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헤어진 사내와 빼다 박은 듯 닮은 가난한 선비였다. 그녀는 이 선비가 과거시험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선비가 급제를 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소소소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선비는 소소소를 서령교 옆에 안장하고 모재정을 세워 주었다. “서호의 서령교 옆에 묻어 달라”는 그녀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 서시 초상화


서령교를 건너 중산공원이 시작되는 곳에, 또 한 여인의 석상이 서 있다. 청나라 말기에 혁명을 위해 몸을 바친 유명한 여성 혁명가 ‘추근’을 기념하는 석상이다. 그녀는 절강성 샤오싱(소흥)에서 처형됐는데, 목을 자르는 참형이었다.


이렇듯 서호에는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슬프고, 때로는 비장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자연과 사람, 자연과 역사가 만날 때 인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명승지가 된다. 중국의 모든 자연에는 사람의 숨결이 닿아있다. ‘인문자연’이라 할 수 있다.

동파 / 소동파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폐한 보루터
무너진 담엔 쑥대만 가득하구나
누가 힘을 쏟을 수 있으랴
세밑에도 그 수고를 보상받을 수 없을 텐데
곧바로 달려와 자갈을 주워내지만
시절이 가물어 땅도 기름지지 않구나
고생스럽게 가시덤불 속에 있는
키 작은 곡식이나마 거두려 함이랴
쟁기 놓고 후유 탄식함은
내 창고 어느 때 쌓일까 해서네


박종범 자유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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